들어가며
부동산개발 시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미분양 물량은 2020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며 2021년 9월에는 2000년 이후 최저점을 기록하였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로부터 1년 여의 시간이 지난 현재 미분양 물건은 작년 대비 두 배 남짓 증가하였습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자재비 인상과 금리 상승까지 악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부동산개발사업의 실적 악화는 결국 각종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동산개발사업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인이 참여하고, 구조도 다양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참여한 부동산개발사업의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개발사업은 대부분 부동산신탁을 통해 진행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구조의 파악은 부동산신탁의 유형별 권리관계를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부동산신탁과 관련된 구체적인 권리관계는 개별 계약에 따라 달라지지만, 기본적인 권리관계는 유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부동산신탁 중 담보신탁을 활용한 부동산개발사업의 구조 및 권리관계를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담보신탁을 활용한 부동산개발사업의 구조
부동산개발사업에 활용되는 부동산신탁의 대표적인 유형 중 하나는 담보신탁입니다. 담보신탁은 수익자(우선수익자)의 채권을 담보하기 위하여 담보물의 보전 및 환가를 목적으로 하는 신탁입니다. 담보신탁의 수탁자는 채권의 기한이 도래할 때까지 신탁재산을 담보물로서 유지ㆍ관리하고 기한 내에 채권이 변제되면 담보물인 신탁재산을 채무자에게 반환합니다. 다만 채권이 기한 내에 상환되지 못하거나 기한 전에 채무자가 기한의 이익을 상실할 경우 신탁재산을 환가하여 채권에 충당하게 됩니다. 부동산개발사업에서 담보신탁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활용됩니다. 부동산개발사업을 위한 대출, 이른 바 부동산프로젝트 파이낸싱(이하 ‘부동산PF’)의 대주는 부동산개발이 완료될 때까지 사업부지를 담보물로 안전하게 보전하는 한편, 사업이 실패하거나 사업성이 좋지 않아 차주로부터의 상환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 사업부지 및 신축건물을 환가하여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 담보신탁을 이용합니다. 이러한 담보신탁의 수탁자는 담보물을 보전하는 것을 주된 사무로 하기 때문에 사업부지를 개발하는 사업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습니다. 부동산 개발사업은 수탁자로부터 사업부지 사용에 대한 허가를 받은 시행사가 수행합니다. 시행사가 사업주체가 되어 자신의 명의로 인허가를 받고, 공사도급계약 등 부동산개발을 위해 체결하는 계약의 주체는 물론 신축건물의 분양주체 역시 시행사가 됩니다. 즉, 사업과 관련하여 발생한 권리와 의무는 모두 시행사에 귀속됩니다.
이와 같이 사업과 관련된 계약상 책임이 모두 시행사에 귀속됨에도 불구하고, 사업비 집행 및 분양수입의 수납을 신탁회사가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담보신탁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담보신탁계약과 별도로 체결된 자금관리 대리사무계약에 따른 것입니다. 부동산PF의 대주는 PF 자금이 사업과 무관하게 사용되거나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사업자금의 집행 및 분양수입을 관리할 별도의 자금관리기관을 둘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자금관리기관은 담보신탁의 수탁자 역할을 하는 신탁회사가 함께 수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담보신탁의 수탁자가 신탁계약에 따라 사업 자금을 직접 집행하는 것으로 오인하곤 합니다. 그러나 신탁회사가 사업자금을 집행하고 분양수입을 수납하는 것은 자금관리 대리사무계약에 따라 시행사로부터 위임받은 사무를 처리하는 것일 뿐 담보신탁과는 무관합니다. 앞서 살펴본 구조를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담보신탁 및 자금관리 대리사무계약에 따른 법률관계의 구분
하나의 부동산개발사업에 존재하는 담보신탁계약과 자금관리 대리사무계약은 독립된 법률관계를 구성하는 별개의 계약이기 때문에, 두 계약에 따른 법률관계는 엄격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먼저 신탁회사가 자금관리기관으로서 수납한 분양대금은 담보신탁의 신탁재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담보신탁계약의 우선수익자는 자금관리계좌로 들어온 분양대금에 대하여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 우선수익자는 담보신탁계약이 정한 처분사유, 예를 들어 차주의 채무불이행 등으로 인하여 수탁자가 직접 신탁재산을 처분하여 발생한 처분대금에 대하여만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공사가 자금관리 대리사무계약의 당사자로 참여하여 자금관리계좌로부터 공사대금을 지급받기로 한 경우, 건물이 시행사가 체결한 분양계약이 아닌 신탁계약에 따라 처분된 경우 시공사는 그 처분대금에서 공사비의 집행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선수익자가 자금관리 대리사무계약상 당사자의 지위를 겸유한다면, 각 계약에 따라 분양대금이나 처분대금에 대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가능할 수는 있습니다. 실제로 담보신탁의 최선순위 우선수익자가 되는 PF 대주는 자금관리 대리사무계약의 당사자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시공사 역시 후순위 우선수익자이자 자금관리 대리사무계약의 당사자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이러한 경우에도 각 계약에 따른 권한 행사의 요건과 내용이 다르므로, 상황에 따라 어떠한 계약에 따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한편, 자금관리계좌를 관리하는 신탁회사는 시행사로부터 자금관리 업무를 위탁 받은 수임인일 뿐 시행사가 체결한 각종 계약의 상대방에 대하여 직접 지급의무를 부담하지 않습니다. 자금관리 대리사무계약상 자금관리계좌에서 집행되는 비용에 시행사가 제3자와 체결한 계약에 따른 채무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위 조항만으로 제3자가 자금관리기관을 상대로 직접 비용의 지급을 청구하거나 자금관리 계좌를 집행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신탁계약이 신탁재산의 처분대금에서 어떠한 비용을 어떠한 순서로 집행할 것인지를 정하면서 분양계약 해제에 따른 분양대금 반환금을 포함시켰다고 하더라도, 위 조항만으로 수분양자가 수탁자에 대하여 분양대금의 반환을 구할 권리를 직접 취득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2018. 7. 12. 선고 2018다 204992 판결). 법리상 계약 당사자가 제3자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가능한데, 대법원은 위와 같은 조항만으로 신탁계약이 수분양자를 위한 제3자를 위한 계약이 된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위와 같은 경우 해당 채권자는 일반적인 시행사의 채권자가 그러하듯 시행사가 자금관리 대리사무계약상 신탁회사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을 집행의 대상으로 삼아 채권의 회수를 꾀할 수 있을 뿐 신탁회사를 상대로 직접 청구권을 행사하거나 자금집행계좌를 집행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수탁자에 의한 분양목적물 이전의 특수성
담보신탁은 분양계약과 독립된 계약이고, 수분양자는 수탁자와 직접적인 법률관계를 형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구조의 사업에서 수분양자가 담보신탁의 수탁자로부터 직접 목적물을 이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신탁계약상 수분양자가 잔금을 지급한 사실 확인되면 우선수익자의 요청에 따라 수탁자가 수분양자에게 직접 신탁재산을 이전할 수 있다는 조항이 존재하는 경우가 그러한 경우입니다. 이러한 이전을 위해서는 등기의 원인 서류로서 수탁자와 수분양자가 매매계약을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수탁자와 수분양자 사이에 새로운 법률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닌지 나아가 수분양자가 수탁자에 대하여 직접 소유권이전등기 청구권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위와 같은 조항에 따른 목적물의 이전은 수탁자와 수분양자 사이의 새로운 법률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사업부지가 담보신탁되어 있는 상태에서 시행사가 수분양자와 체결한 분양계약을 이행하려면, 먼저 분양목적물에 대한 담보신탁을 해지하여 목적물의 소유권을 시행사의 명의로 회복한 후, 이를 다시 수분양자에게 이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담보신탁의 해지에는 우선수익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이는 담보권의 해지에 해당하기 때문에 담보권자의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구조의 부동산개발사업에서 우선수익자인 PF 대주는 시행사가 분양대금을 받아 대출금을 변제할 것을 기대하고 자금을 대여한 것이기 때문에, 수분양자가 자금관리계좌로 잔금을 지급한 것이 확인되면 신탁해지에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절차의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수분양자가 잔금을 지급한 사실을 확인한 우선수익자가 수탁자에게 요청하면 수탁자가 수분양자에게 직접 소유권을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위와 같은 조항은 수탁자와 수분양자 사이에 새로운 법률관계를 형성하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위와 같은 조항이 수탁자로 하여금 분양목적물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위탁자에게 하는 대신 매수인에게 직접 하게 하는 것도 허용하는 취지일 뿐 매수인에게 수탁자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직접 취득하게 하기 위한 규정으로 볼 수는 없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18. 12. 27. 선고 2018다237329 판결). 통상의 경우 수탁자가 위와 같은 조항에 따라 신탁재산을 이전할 때 수탁자가 매도인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한편, 잔금 역시 수탁자가 수령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 고려된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더 나아가 대법원은 위탁자가 수익자로서 갖는 급부청구권이 가압류되어 있는 경우 그 효력은 신탁해지에 따른 원본반환청구권에도 미치기 때문에, 위와 같은 가압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수탁자가 위 조항에 따라 수분양자에게 신탁재산을 이전하는 행위는 위탁자에 대한 원물반환을 이행하는 것과 같아 가압류의 효력에 반한다는 판단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수탁자로부터 직접 분양목적물이 이전되는 경우의 권리관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되는 신탁계약상의 조항은 물론 수탁자와 수분양자 사이에 실질적 법률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는지 면밀히 살펴야 하며, 이러한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위와 같은 이전은 담보신탁의 해지와 동일하게 취급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나가며
앞서 살펴본 내용은 가장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권리관계에 따른 것으로, 구체적인 사업별로 담보신탁계약이나 자금관리 대리사무계약의 내용에 따라 얼마든지 권리관계가 달리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담보신탁을 통해 추진되는 부동산개발사업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자금관리를 위한 계약이 체결되기 때문에, 두 계약에 따른 권리관계를 엄격하게 구분된다는 점은 숙지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기초로 하되 세부적인 계약 내용을 살펴 권리관계를 확실히 분석해 두어야 불안한 시장 상황 속에서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분쟁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