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하여 IMF 이후 급증했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이하 ‘부동산 PF’) 사업이 대거 좌초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부동산 PF에 관한 소송이 급증하였고, 그 과정에서 법원의 부동산 PF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부동산 PF 사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판단이 많이 나왔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부동산 PF에 관련된 신탁계약에 대한 사해신탁 취소소송입니다.
부동산 PF 초기에는 PF 담보수단으로 사업부지 및 신축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방식이 활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행사가 담보물을 소유한 상태에서 설정되는 근저당권의 경우, 시행사의 채권자들이 대상 부동산을 집행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사업부지나 신축 부동산에 대하여 보전처분이 이루어지거나 집행이 개시되면, 사업진행에 차질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후 대부분의 부동산 PF는 사업부지 혹은 신축 부동산을 신탁하는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사업부지나 신축 부동산이 신탁되면, 시행사의 채권자들은 신탁 전에 해당 부동산을 가압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 둔 경우가 아닌 한 해당 부동산의 집행 대상으로 삼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탁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사업부지나 신탁 부동산에 대하여 보전조치를 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분쟁이 사해신탁 취소소송이었습니다. 사해신탁 취소소송을 제기하면 신탁계약의 취소와 함께 신탁 부동산의 원상회복을 구하게 되므로, 신탁 부동산의 원상회복을 보전하기 위한 처분금지 가처분이 허용되기 때문입니다.
신탁법은 2012년 개정되기 전부터 사해신탁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었으나, 수탁자가 선의일 경우에도 신탁계약의 취소와 원상회복이 가능하다는 점 외에는 민법 제406조 제1항이 규정하고 있는 채권자취소권과 그 요건이나 효과가 동일했습니다. 그래서 부동산 PF와 관련된 신탁계약의 취소를 구하는 초기 소송 중에는 신탁법 제8조가 아니라 민법 제406조에 근거하여 청구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에 따라 사건 역시 부동산 PF 사업의 특수성 보다는 기존의 사해행위 취소소송에서 확립된 법리에 따라 판단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반적인 사해행위의 경우 처분행위로 인하여 채무자의 총재산이 감소하여 채권의 공동담보에 부족이 생기거나 이미 부족상태에 있는 공동담보가 한층 더 부족하게 되면 대부분 성립합니다. 주관적 요건으로 위와 같은 사정에 대한 채무자의 인식이 필요하지만, 주관적 요건은 거의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실상 자력이 없는 시행사가 유일한 재산으로 보유하고 있던 사업부지 혹은 신축 부동산을 신탁하면 사해행위의 요건은 갖추게 됩니다. 그래서 부동산 PF 관련신탁에 대한 사해신탁 소송에서는 주로 신탁계약의 사해성을 부정할 특단의 사정에 대한 판단이 주된 쟁점이 되었습니다.
부동산 PF와 관련된 신탁계약에 대한 사해신탁 취소소송이 대두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까지 사해성을 부정하는 논리로 주되게 채용된 판단기준은 ‘실질적인 책임재산의 변동여부’ 였습니다.
대법원은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못한 아파트 공사 수급인이 신축 아파트에 대한 유치권을 포기하는 대신 수분양자들로부터 미납입 분양대금을 직접 지급받기로 하고, 이를 담보하기 위하여 수급인을 수익자로 하여 해당 아파트를 신탁한 사안에서, 수급인이 유치권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어 수급인이 유치권을 행사할 경우 도급인의 일반채권자들은 유치권에 우선할 수 없었다는 점을 들어 위와 같은 신탁의 사해성을 부정하였습니다(대법원 2001. 7. 27. 선고 2001다13709 판결).
이후 대법원은 “신탁법상의 신탁으로서 신탁재산을 소비하기 쉽게 현금화하는 것이 아니고, 부동산등기부의 일부인 신탁원부에 위탁자, 수탁자, 수익자 등과 신탁의 목적, 신탁재산의 관리방법, 신탁종료 사유, 기타 신탁의 조항을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는 신탁의 특성을 언급하면서 신탁계약이 사해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건물의 신축 공사가 45.5%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의 집행 가능한 책임재산으로서의 사업부지 및 미완공 건축물의 가치와 채무자가 신탁을 통하여 사업부지 위에 건물을 완공 및 분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재산적 가치를 비교ㆍ형량하였어야 한다고 판단하기도 하였습니다(대법원 2003. 12. 12. 선고 2001다57884 판결).
그러다가 2000년 초반에 들어 대법원은 “채무자가 채무변제 자력을 회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서 재산을 처분한 경우에는 사해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리를 확립하였습니다.
신탁계약의 취소가 문제된 사안은 아니었으나, 대법원은 부동산 신축 공사 중에 자금난이 발생하여 신규자금을 대출 받으면서 채무자의 유일한 재산이던 해당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한 사안에 대하여 “채무초과상태에 있는 채무자가 그 소유의 부동산을 채권자 중의 어느 한 사람에게 채권담보로 제공하는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른 채권자들에 대한 관계에서 사해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나, 자금난으로 사업을 계속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채무자가 자금을 융통하여 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것이 채무 변제력을 갖게 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자금을 융통하기 위하여 부득이 부동산을 특정 채권자에게 담보로 제공하고 그로부터 신규자금을 추가로 융통 받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채무자의 담보권 설정행위는 사해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00. 12. 8. 선고 99다31940 판결)”라고 판시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사해행위와 관련하여 채무자가 변제력 회복을 위하여 부득이하게 취한 조치는 사해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리가 확립된 것입니다. 대법원은 이와 같은 법리를 부동산 PF와 관련된 신탁계약의 사해성 판단에도 적용하였습니다.
즉, 대법원은 공정률이 45.8%인 상태에서 자금난에 빠진 시행사가 사업부지와 건축주 명의를 신탁회사에게 이전하는 개발신탁계약을 체결한 후, 신탁회사로부터 신규자금을 조달하여 건물을 완공하고자 한 경우에 대하여, 대법원은 위 신탁계약이 채무자로서 최대한의 변제력을 확보하기 위한 위한 최선의 방법이자 공사를 완공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로 판단된다고 하면서 위 신탁이 사해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2003. 12. 12. 선고 2001다57884 판결). 이후 위와 같은 법리는 현재까지도 부동산 PF와 관련된 신탁계약의 사해성을 부정하는 주된 논거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가 축적되면서 법원의 부동산 PF에 관한 이해가 증가하자, 최근 법원은 위와 같은 법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하기 보다 부동산 PF의 특성을 고려하여 사해성이 부인되는 이유에 관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위 판례가 정립한 법리에 따르면 최초의 사업약정에 따라 사업부지를 신탁한 후, 공사가 완공된 부동산을 추가로 신탁하는 행위는 채무변제력을 회복하기 위한 행위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PF 대출이 일어난 후 부동산이 완공되는 시점에는 신규대출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신축 부동산을 추가로 신탁하는 행위는 기존의 특정 채권자에게 추가 담보를 제공하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신축 부동산에 대한 추가 신탁계약은 사해신탁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업부지에 대한 신탁이 사업부지를 구입하여 그 위에 부동산을 신축하고 분양하는 사업을 위한 자금융통을 위한 것이며, 신축 부동산에 대한 신탁이 전제되지 않았더라면 처음부터 자금융통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인 한편 애초에 자금융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사해신탁 취소를 통한 원상회복의 대상인 부동산 자체를 취득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점등을 고려하면, 신축 부동산에 대한 신탁은 애초에 사업 자금융통을 위한 일련의 과정으로 보일 뿐 별도의 사해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2012. 10. 11.자 2010마 2066 결정). 이와 같이 부동산 PF 사업의 특성을 고려하여 부동산 PF와 관련된 신탁계약의 사해성을 부정한 판례는 하급심 판례에도 반영되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부동산 침체로 인하여 부동산 PF 시장은 급격히 위축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분양경기가 회복되면서 부동산 PF 사업이 재개되는 곳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부동산 PF에 관한 분쟁, 특히 신탁계약의 사해성을 다투는 소송도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바, 위 소송의 쟁점 중 사해성 판단에 관한 판례의 동향을 살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