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부동산 신탁은 부동산의 소유권을 위탁자에서 수탁자에게 이전하면서도, 그 재산을 수탁자의 다른 재산과 구분하여 취급하는 독특한 법률관계입니다. 신탁된 부동산의 소유권은 수탁자에게 법적으로 완전히 귀속되지만, 신탁 부동산은 수탁자의 고유재산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신탁사무 처리와 관련된 법률행위의 상대방이 아닌 한 수탁자의 일반 채권자들은 신탁재산을 집행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부동산 신탁의 공시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글에서는 부동산 신탁의 공시 방법을 살펴보고, 최근 대법원이 밝힌 신탁등기의 대항력 및 이에 따른 실무적 유의점을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동산 신탁의 공시 방법 : 등기 과정 및 신탁원부의 역할
신탁을 설정할 때 신탁등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신탁등기의 구체적 의미는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동산 신탁을 설정할 때 신탁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 이전등기가 이루어지는데, 이 등기를 신탁등기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등기는 매매나 증여에 따라 권리변동이 있을 때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권리 이전의 등기로 신탁등기가 아닙니다. 신탁등기는 위와 같은 권리이전의 등기 하단에 신탁원부의 번호를 기재한 부분을 말합니다. 부동산등기법상 신탁등기는 신탁원부를 작성한 후 등기기록에 그 신탁원부의 번호를 기재하는 방식으로 등재됩니다(다만 최근 부동산등기법이 개정되면서 등기기록에 신탁원부의 번호 외에 신탁재산에 속하는 부동산 거래에 관한 주의사항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신탁등기는 권리이전 등기와 함께 신청하기 때문에,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같은 순위 번호에 기재됩니다. 등기목적상 ‘소유권 이전’이라고 기재된 부분이 권리이전의 등기이고, ‘신탁’이라고 기재된 부분이 신탁등기입니다.
2024년 9월 20일 부동산등기법이 개정되면서 함께 기재하게 되어 있는 신탁재산에 속하는 부동산의 거래에 관한 주의사항은 아래와 같이 기재되고 있습니다.
등기부만으로는 해당 부동산이 신탁재산이라는 것 외에 신탁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신탁원부를 통하면 신탁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부동산등기법은 신탁원부에 위탁자, 수탁자 및 수익자의 성명 및 주소, 수익자를 지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자의 성명 및 주소, 수익자 지정 및 변경의 방법, 수익권의 발생 또는 소멸에 관한 조건, 신탁관리자의 성명 및 주소, 신탁의 목적 유무, 각종 신탁의 종류(유언대용신탁, 수익자연속신탁, 수익증권발행신탁, 공익신탁, 유한책임신탁 등), 신탁의 목적, 신탁재산의 관리ㆍ처분ㆍ운용ㆍ개발 등 신탁 목적의 달성에 필요한 방법, 신탁종료의 사유 등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부동산등기법 제81조 제1항). 이 때문에 신탁원부에는 신탁계약서가 그대로 첨부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탁원부는 등기부등본과 달리 온라인을 통한 열람이나 발급은 안되지만 등기기록의 일부이기 때문에 등기소를 방문하면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부동산등기법 제81조, 제19조). 즉 제3자도 신탁원부를 통해 신탁계약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탁등기의 대항력 : 최근 대법원 판례와 그 의미
신탁등기를 통해 신탁의 공시는 신탁법 제정 당시부터 존재하던 내용으로, 부동산등기법 역시 일관되게 신탁원부를 등기부의 일부로 규정해 왔습니다. 이를 근거로 대법원은 과거 신탁원부에 기재된 사항 모두에 대하여 대항력을 인정하는 판단을 하였고, 이는 최근까지도 중요한 법적 기준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이 신탁등기의 대항력을 신탁재산의 독립성에 한정하는 판단을 내놓았습니다.
과거 대법원은 신탁원부에 포함된 신탁조항에 대하여도 대항력을 인정하였습니다(대법원 1975. 12. 23. 선고74다736 판결). 신탁 조항은 위탁자와 수탁자 간의 계약으로서 원칙적으로 제3자의 권리에 영향을 줄 수 없지만, 구 신탁법(2011. 7. 25. 법률 제1092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이 신탁은 등기 또는 등록을 함으로써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구 부동산등기법이 신탁원부를 등기부의 일부로 보고 있으니, 신탁원부에 기재되어 있는 신탁조항도 제3자에게 대항력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판단은 최근까지도 유지되었습니다(대법원 2022. 2. 17. 선고 2019다300095(본소), 2019다300101(반소) 판결 등). 위 법리가 적용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집합건물의 관리비 사건입니다. 대법원은 집합건물이 신탁재산인 경우 신탁원부에 관리비를 위탁자가 부담한다는 조항이 있으면 수탁자에 대한 관리비 청구가 불가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2012. 5. 9. 선고 2012다13590 판결). 이에 따라 많은 하급심 법원이 최근까지도 신탁원부에 위탁자가 관리비를 부담한다는 조항이 포함된 경우 동일한 판단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동일한 관리비 사건에서 현행 신탁법에 따른 신탁 등기의 대항력은 해당 재산이 신탁재산이라는 사실에 한정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은 현행 신탁법 제4조가 ‘신탁은 등기함으로써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규정한 구신탁법 제3조와 달리 신탁은 등기를 함으로써 “그 재산이 신탁재산에 속한 것임을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 점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대법원은 현행 신탁법에 따른 신탁등기는 그 재산이 수탁자의 다른 재산과 독립하여 신탁재산을 구성한다는 것으로 제3자에게 대항하는 효력이 있을 뿐이어서 신탁계약의 내용이 신탁원부에 기재되어 부동산등기법 제81조 제3항에 따라 등기기록의 일부로 보게 되더라도 신탁재산의 구성에 관한 사항 외에는 이로써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습니다(대법원 2025. 2. 13. 선고 2022다233164). 신탁조항은 사적 계약의 산물로 대항력을 갖지 않는 것이 원칙이며, 신탁원부를 별도로 발급받지 않는 한 등기부만으로 그 내용을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신탁법 개정의 취지를 대항력을 축소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한편 대법원은 기존 판결이 구 신탁법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현행 신탁법에 적용될 수 없다고 하였을 뿐 기존 판결을 변경하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구 신탁법이 적용되는 사건에는 기존의 판결이, 현행 신탁법이 적용되는 사건에는 이번 판결이 적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실무적 유의점 : 담보신탁과 관리비 문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신탁등기의 대항력을 한정하는 것으로, 실무적으로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특히, 수탁자의 입장에서는 담보신탁된 집합건물의 관리비를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담보신탁은 위탁자가 채권을 변제하기까지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보전하고, 채무불이행에 발생한 경우 이를 환가하여 채권에 충당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위 신탁의 주된 목적은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안전하게 보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탁계약으로 신탁부동산의 사용권한이나 관리책임을 위탁자에게 부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따라 관련 비용 일체도 위탁자가 부담한다고 정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기존의 판결 하에서는 신탁원부에 위 내용이 포함되면 수탁자는 대항력을 근거로 관리비 부담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이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따라서 수탁자로서는 담보신탁의 경우에도 대상 부동산의 관리비를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담보신탁의 대상이 집합건물인 경우 신탁설정에 앞서 공유부분의 관리비가 체납되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집합건물의 공용부분 관리비는 전 소유자가 체납한 경우에도 새로운 소유자(특별승계인)에게 승계되기 때문입니다. 담보신탁 기간 중에는 위탁자가 관리비를 제대로 납부하는지 확인해야 하며, 연체 시에는 신탁재산으로 처리하거나 수탁자가 대신 납부한 후 신탁재산에서 회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신탁 정산 시 최선순위로 집행되는 신탁사무처리비용에 관리비 등이 포함된다는 점을 명시하고, 회수가능성에 따라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통해 손실이 커지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탁자가 집합건물의 소유자로서 부담하게 되는 관리비 채무는 수탁자의 실질적인 재정부담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최근 대법원의 판결은 신탁등기의 대항력을 한정함으로써 실무적으로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담보신탁과 관련된 관리비 문제에서는 실무자들이 주의 깊게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운영방안이 수립되면 신탁의 법적 안정성 또한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