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을 수임하는 과정에서 가끔 황당한 일을 겪는 때가 있습니다. 찾아온 의뢰인과 상담하고 수임 계약을 했는데 며칠 후 찾아와서 선임을 취소하겠다고 하는 경우입니다.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관이나 검찰 수사관이 이런 사건에는 변호사를 살(?) 필요가 없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알아서 잘 처리해줄 것이니 괜히 아까운 돈 낭비하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선임계를 제출한 다음 날 사임계를 제출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의뢰인이 이런 부탁을 할 때에는 두말없이 사임을 합니다. 이미 신뢰관계에 금이 갔기 때문에 무리해서 위임 관계를 유지하더라도 불신을 받을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사 사건의 결과가 좋다고 하더라도 의뢰인은 애초에 변호인이 없어도 잘 해결될 수 있었을 텐데 괜히 비용을 들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혹시라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면 괜히 담당 수사관의 비위를 거슬러서 일을 그르치게 된 것 아니냐는 원망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건 진행 과정에서 담당 수사관으로부터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책망을 받고 돌아오는 의뢰인을 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변호사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입니다.
사임 이후의 경과가 반드시 의뢰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물론 사건이 쉽게 종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의 사건에서 의뢰인들은 한참 후에 낭패한 얼굴로 찾아와 다시 선임을 부탁합니다. 애초의 약속과는 달리 수사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고 결과도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때로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 사임을 했는데 검찰에서 다시 조사를 받거나, 혹은 일단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재기수사명령을 받아서 더 불리한 처지에 놓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처음부터 신중하게 대처했으면 어렵지 않게 해명이 될 수도 있던 사건이 잘못된 대응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상대방과 무리한 조건으로 합의할 것을 종용당하기도 합니다.
변호인의 선임을 말리는 수사관의 의도가 반드시 악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형사사건 피의자 중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도 많습니다. 적지 않은 보수를 지급하고 변호인을 선임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합의가 중요한 사건에서는 선임료를 아껴서 차라리 피해자와 합의를 보거나 공탁을 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명백히 잘못된 것입니다. 변호인과 의뢰인의 신뢰관계를 깨뜨리는 것으로서 법조윤리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입니다. 설사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변호인과 의뢰인 사이의 신뢰는 위임 관계의 기초를 이루는 것으로서 고도의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대한변협의 「변호사윤리장전」 제22조가 "수임사건의 상대방에 변호사가 선임되어 있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상대방 본인과 직접 접촉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은 변호사를 배제하고 상대방 본인과 직접 만나게 되면 신뢰관계를 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변호사 직무규정 제25조도 "변호사는 상대방에게 법령상의 자격을 갖는 대리인이 선임된 때는 정당한 이유 없이 그 대리인의 승낙을 얻지 않고 직접 상대방과 교섭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미국의 표준규칙이나 유럽의 행위규범도 상대방 대리인의 승낙 없이 본인을 접촉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변호인이 동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본인을 만나는 행위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데, 하물며 선임을 철회하라고 권유하는 행위가 부당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특히 수사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은 상당한 재량권을 가지고 당사자의 운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피의자와 변호인 사이의 신뢰를 해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은 극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는 검사가 변호인의 동의 없이 피의자와 직접 접촉하였다는 이유로 윤리규정을 위반했다고 징계를 받은 일도 있습니다.주1) 우리나라의 검찰이나 경찰은 변호인이 있는 피의자라고 하더라도 소환 통보 등을 피의자 본인에게 직접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외국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적절한 관행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설사 아직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은 피의자라도 하더라도 검사나 수사관은 마치 자신이 중립적인 입장에 있거나 공정하다는 암시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수사 자체는 직권적인 것이지만, 기소되면 대립당사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는 점에서 소추기관에 소속된 사람이 중립적인 입장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심리적으로 약자의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는 피의자는 변호인보다는 수사 담당자의 말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행동은 변호인에 대한 신뢰를 결정적으로 해치는 것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인을 선임할 필요가 없다고 권유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형사 변호인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우리 변호사들의 책임이 크지만, 아직도 변호인이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변호인의 역할은 피의자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게 한 다음 선처를 구하는 것이라고 보는 일부 수사기관 종사자들의 그릇된 인식에도 원인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끔 검찰이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정당한 권리의 행사를 권유하는 변호인의 행동을 비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러한 생각에 기인한 것입니다.
변호인과 피의자의 신뢰관계를 해치는 행동은 개별 사건에 있어서는 수사를 쉽게 해줄 수 있을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변호인의 역할에 대한 일반의 믿음을 잃게 만들어서 형사 정의의 실현을 어렵게 하고 법조 전체에 대한 신뢰도 추락시키게 됩니다. ‘알아서 잘 해주겠다’는 말에 현혹된 피의자가 지나치게 ‘협조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실체적 진실과 먼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경험에 비추어볼 때 피의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불이익을 초래할 위험이 높습니다. 부적절하거나 법조 윤리에 위반될 소지가 있는 행태에 대해서는 변호사들도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고, 수사기관에서도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변협에서도 검찰에 이러한 관행의 시정을 강력하게 촉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형사절차는 당사자 사이의 신뢰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상호 견제와 균형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것입니다. 수사관이 피의자에게 변호인 선임 문제에 대해서까지 충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형사적 정의의 기본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이며, 이러한 인식은 결국 전관예우의 관행으로 연결될 우려도 있습니다. 검사나 경찰관과 날카롭게 대립하는 변호인의 영역을 인정하지 않는 한 실력만으로 무장한 형사변호사가 설 곳은 극히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법조에서 이러한 잘못된 풍토가 하루빨리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주1) Matter of Howes 123 N. M. 311, 940 P. 2d 159(19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