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부는 2025학년부터 전국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 증원하는 조치를 내렸습니다. 의대 입학정원 증원 처분에 반발한 의대생 등은 집행정지를 신청하였습니다.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던 이 사건에서 법원은 결론적으로 집행정지를 허용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원심법원과 대법원은 일부 다른 판단 구조와 판단 근거를 채택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담당 대법원 재판연구관이 작성한 대법원판례해설(제139호, 913~957쪽)을 함께 검토하며, 집행정지 제도의 여러 쟁점에 대한 고민을 살펴봅니다.
1. 사안의 개요 및 쟁점의 정리
피신청인① 보건복지부장관은 2024. 2. 6. 2025학년도 의대정원을 2,000명 증원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이하 ‘
이 사건 증원발표’). 이어서 피신청인② 교육부장관은 2024. 3. 20. 2025학년도 전체 의대정원 2,000명 증원하여 대학별로 배정하였습니다(이하 ‘
이 사건 증원배정’). 관련 법령의 내용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증원배정은 피신청인② 교육부장관이 고등교육법 제32조, 동법 시행령 제28조 제3항 제2호 가목에 따라 각 의대별 입학정원을 정한 행정행위이고, 이 사건 증원발표는 그에 앞서 이루어져야 하는 피신청인① 보건복지부장관과의 협의 내용에 관한 발표로 보입니다.
고등교육법 제32조(학생의 정원) 대학(산업대학ㆍ교육대학ㆍ전문대학ㆍ원격대학ㆍ기술대학 및 각종학교를 포함한다)의 학생 정원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범위에서 학칙으로 정한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8조(학생의 정원) ③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학칙으로 모집단위별 입학정원을 정함에 있어서 교육부장관이 정하는 다음 각호의 사항에 관하여는 이에 따라야 한다.
2. 다음 각목에 해당하는 인력의 양성과 관련되는 모집단위별 정원
가. 「의료법」 제2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의료인
④ 제3항의 규정에 의하여 교육부장관이 제2호 내지 제4호에 관한 사항을 정하는 때에는 관계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야 하며, …
한편, 의대정원 증원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자 국무총리는 각 대학이 증원된 인원의 50~100% 범위에서 탄력적으로 모집인원을 결정할 수 있다고 발표하였고, 피신청인② 교육부장관은 2024. 4. 22. 위 국무총리의 발표 내용이 담긴 공문을 각 대학에 송부하였습니다.
의대 교수들, 의대 병원 전공의들, 의대 재학 중인 의대생들, 의대 입학을 희망하는 수험생들은 이 사건 증원발표와 증원배정의 각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면서(현재 본안소송 사건 계속 중), 그 집행정지를 함께 신청하였습니다. 집행정지 사건에서는 하급심 법원과 대법원이 일부 다른 판단 구조와 판단 근거를 취하였으나 모두 결론적으로는 집행정지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원심과 대법원 결정을 대조해 보면 집행정지 사건에서 유의해야 하는 여러 쟁점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이 사건 증원배정과 이 사건 증원발표 각각의 처분성 문제입니다. 이때 집행정지 사건에서 적법요건의 지위와 심리 방식의 문제를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둘째, 신청인적격의 문제입니다. 원심과 대법원은 재학 중인 의대생인 신청인들에 대하여만 신청인적격을 인정하였는데, 그 근거에 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셋째,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실체적 판단 문제입니다. 적극적 요건(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 소극적 요건(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 그리고 ‘본안의 승소가능성’ 요건의 존부를 판단하는 방식과 구조는 어떠해야 하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 이 사건 증원배정과 이 사건 증원발표의 처분성 [쟁점 ①]
가. 원심결정: 집행정지 단계에서 증원배정과 증원발표를 통틀어 전체로서 처분성 인정
원심은 “적법요건은 … 본안 승소가능성 요건과 마찬가지로 ‘적법요건을 충족하지 못함이 명백한 경우에는 집행정지를 할 수 없다’는 차원의 문제로 파악하여야 한다”면서, 집행정지 단계에서 완화된 심리의 필요성을 지적하였습니다. 즉, “처분성 내지 신청인적격 등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본안소송에서와 같이 엄밀한 증명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 처분성이 부정되거나 신청인적격이 없음이 명백하지 않은 이상 적법요건은 일응 충족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원심은 “향후 본안소송에서 보다 상세한 심리와 검토를 통하여 그 처분성이 부정될 가능성이 있더라도, 이 사건 증원발표와 이 사건 증원배정은 이 사건 증원조치를 완성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인 바,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양자를 엄밀히 구분할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 그 처분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정부의 입장이나 신청인의 태도를 고려하면, 사실상 피신청인① 보건복지부장관의 증원발표 행위가 더 중요한 것으로서 핵심적인 공권력의 행사로 보인다는 점(피신청인② 교육부장관은 이를 그대로 수용하여 정원을 배정함)을 근거로 제시하였습니다.
나. 대법원 결정: 증원배정의 처분성 긍정 + 증원발표의 처분성 부정
원심은 집행정지 사건의 적법요건을 본안의 승소가능성 요건과 연결해서 이해하였습니다. 그런데 [비록 대법원이 결정문에서 집행정지 사건의 적법요건 판단 기준을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결정 내용, 맥락과 아울러 대법원판례해설(제139호, 930~934쪽)을 보면] 대법원은 원심의 논리에 의문을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집행정지 사건에서 처분성 등 적법요건을 요구하는 것이 반드시 본안의 승소가능성이라는 요건에서만 파생되는 것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행정소송법상 집행정지 또한 넓은 의미의 항고소송의 틀 안에서 인정되는 소송 유형이므로,
집행정지 사건에서 독자적인 적법요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처분에서 집행정지 대상 처분과 본안의 취소 대상 처분이 서로 다르거나(예. 대집행계고처분 집행정지 신청 + 철거명령 취소 청구), 집행정지 사건 신청의 이익과 본안의 소의 이익이 다를 수 있으므로(예. 집행이 이미 완료되어 집행정지 이익 없으나 예외적으로 본안 소의 이익 인정), 집행정지의 적법요건은 본안과 연결되지 않는 고유한 지위를 갖습니다. 그렇지만 물론 심리 시간이 촉박한 집행정지 사건에서 처분성 등 적법요건에 대해 본안과 동등한 수준의 심리가 요구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원심의 설시와 같이
각하할 사안임이 명백하지 않은 이상 본안판단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 자체는 수긍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원심과 달리 피신청인① 보건복지부장관의 이 사건 증원발표는 행정처분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교육부장관이 의대정원을 정하면 의대는 이를 따르도록 정하고(제28조 제3항 제2호 가목), 이때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를 거치도록 하였습니다(제28조 제4항). “이 사건 증원발표는 피신청인 교육부장관이 의과대학의 모집정원을 정하면서, 관계중앙행정기관의 장인 피신청인 보건복지부장관과 거쳐야 하는 협의의 내용을 피신청인 보건복지부장관이 발표한 것에 불과”합니다. 최소한 법령상으로는 피신청인 교육부장관②이 이 사건 증원발표에 구속되어 의대정원을 증원해야 하는 근거가 없습니다. “각 의과대학별 정원 증원이라는 구체적인 법적 효과는 피신청인 교육부장관의 이 사건 증원배정에 따라 비로소 발생”하였고, “이 사건 증원발표는
행정청의 내부적인 의사결정을 대외적으로 공표한 것에 그칠 뿐”입니다.
그런데 원심이 지적한 것처럼 보건복지부장관의 발표가 사실상의 구속력이 있다고 볼 수 있고 상대방 입장에서도 보건복지부장관을 분쟁의 실질적 당사자로 여기는 등 이 사건 증원발표를 쟁송법상 처분으로 인정할 여지가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처분 개념의 확대 목적은 국민 권리구제 확대에 충실히 하고자 하는 데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이 사건의 경우 “의대정원 증원의 이해관계인으로서는 이 사건 증원배정을 다툼으로써 권리구제를 충분히 도모할 수 있으므로, 국민의 권리구제 차원에서 이 사건 증원발표를 이 사건 증원배정과 별도로 항고소송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보건복지부장관이 실질적 당사자라고 하여도 보건복지부장관이 소송에 참가를 하면 될 것이므로, 국민의 권리ㆍ의무에 실질적 영향이 없는 이 사건 증원발표의 처분성을 인정할 실익이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대법원은 “이 사건 증원발표의 효력정지를 구하는 신청은 부적법하여 각하되어야” 하고 “원심결정이 이 사건 증원발표의 효력정지를 구하는 일부 신청인들의 신청을 기각한 것은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피신청인② 교육부장관은 이 사건 증원배정 후 2024. 4. 22. 이를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처분을 하였습니다(각 대학이 기존 증원 인원의 50~100% 내 결정 가능하도록 변경). 이처럼 후속처분으로 인해 종정처분이 변경된 경우 집행정지 신청 대상을 무엇으로 삼아야 하는지도 문제됩니다. 대법원 판례는 “후속처분이 종전처분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거나 그 주요 부분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내용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종전처분은 그 효력을 상실하고 후속처분만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지만, 후속처분의 내용이 종전처분의 유효를 전제로 그 내용 중 일부만을 추가ㆍ철회ㆍ변경하는 것이고 그 추가ㆍ철회ㆍ변경된 부분이 그 내용과 성질상 나머지 부분과 불가분적인 것이 아닌 경우에는 후속처분에도 불구하고 종전처분이 여전히 항고소송의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대법원 2015. 11. 19. 선고 2015두295 전원합의체 판결 등). 이 사건에서 2024. 4. 22.자 공문은 이 사건 증원배정의 유효를 전제로 단지 각 대학에게 실제 증원 수의 재량을 부여한 것에 불과하고, 이렇게 재량을 부여한 부분은 기존의 증원배정 부분과 가분적입니다. 그렇다면 기존 판례 법리에 따라 이 사건 증원배정은 여전히 집행정지 신청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3. 의대생인 신청인들의 신청인적격 [쟁점②]
가. 원심결정: 헌법상 기본권으로부터 신청인적격 인정
의과대학 정원을 증원하는 이 사건 처분의 상대방은 의과대학을 보유한 각 대학의 장이고, 이 사건의 신청인들은 처분의 직접 상대방이 아니라 제3자의 지위에 있습니다. 하지만 행정처분의 직접 상대방이 아닌 제3자도 당해 처분으로 인하여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을 침해당한 경우 처분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습니다.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란 처분의 근거 법규 및 관련 법규에 의하여 보호되는 개별적ㆍ직접적ㆍ구체적 이익이고, 공익보호의 결과로 국민 일반이 공통으로 가지는 일반적ㆍ간접적ㆍ추상적 이익만으로는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대법원 2006. 3. 16. 선고 2006두330 전원합의체 판결 등).
먼저 원심은 경제적 관점에서 의사 수 증가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 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의사의 면허는 기본적으로 강학상 허가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허가가 질서유지의 목적상 설정된 법률상의 금지를 해제하여 자연적 자유를 회복시키는 강학상 허가에 불과하고 법령상 경쟁제한 규정이 없는 경우, 신규 허가로 기존업자의 이익이 감소하더라도 그러한 이익은 사실상의 이익에 불과하고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대법원 1990. 11. 13. 선고 89누756 판결 등).
그러나 원심은 의대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헌법이 정한 교육받을 권리를 근거로 의대 재학 중인 신청인들의 법률상 이익은 인정하였습니다. 헌법 제31조 제1항에 의한 교육을 받을 권리란, 자신의 교육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해질 수 있음을 이유로 타인의 교육시설 참여 기회를 제한할 것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는 아니지만, 만일 교육환경이 기존에 비해 열악해질 우려가 있고 기존 교육시설에 대한 참여 기회가 실질적으로 봉쇄되어 동등하게 교육시설에 참여할 기회를 제한받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단순한 사실상 불이익이 아니라 교육을 받을 권리가 제한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헌법재판소 2019. 2. 28. 선고 2018헌마37, 38(병합) 결정 등). 의대정원의 증원이 의학교육에 미치는 여러 영향을 고려하면 의대 재학생에게는 ‘기존 교육시설에 대한 참여 기회가 실질적으로 봉쇄되어 동등하게 교육시설에 참여할 기회를 제한받는 정도’가 인정될 여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원심은 의대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될 가능성을 이유로 의대생인 신청인들의 신청인적격을 인정하고, 나머지 신청인들의 신청인적격은 부정하였습니다.
나. 대법원 결정: 처분의 근거 법규 및 관련 법규를 통해 신청인적격 인정
대법원은 원심이 의대 재학 중인 신청인들의 신청인적격을 인정하고, 의과대학 교수, 전공의 또는 수험생 지위에 있는 나머지 신청인들의 신청인적격을 부정한 결론은 정당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이 오로지 헌법규정만을 근거로 일부 신청인들의 신청인 적격을 인정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대법원은 법률상 이익을 확장하면서 근거 법규는 물론 법규의 취지에서부터 법률상 이익을 도출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나, 이를 넘어 오로지 헌법상 기본권으로부터 법률상 이익을 도출할 수 있다고 설시한 예는 없습니다. 대법원판례해설(제139호, 940쪽)에서는 헌법상 기본권을 근거로 법률상 이익을 인정하게 되면 기존 판례 법리와 달리 일반적ㆍ간접적ㆍ추상적 이익과 같은 사실적ㆍ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에도 원고적격이 확대될 여지가 있으므로,
헌법상 기본권 조항을 근거로 삼기 이전에 처분의 근거 법규 및 관련 법규를 통해 법률상 이익을 도출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검토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의대정원의 결정에 관한 구체적인 절차를 규정한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8조 등 관련 규정에 주목하였습니다. 즉,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8조 제1, 3항에 의하면 교육부장관이 의대정원을 정할 때 「대학설립ㆍ운영 규정」에 따른 교사, 교지, 교원 및 수익용 기본재산에 따라 정해지는 학생 수를 고려해야 하고, 「대학설립ㆍ운영 규정」 제2조의3, 제4조, 제6조는 학생정원을 기초로 교사, 교원 확보 요건을 정하면서 학생정원 증원 시 그 증원분에 맞춰 교사 및 교원을 미리 확보하도록 정합니다. 이처럼 고등교육법 시행령, 「대학설립ㆍ운영 규정」의 해석상 증원 대상 학사과정에 재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그들의
개별적ㆍ직접적ㆍ구체적 이익을 보호하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 사건에서 재학 중인 의대생들의 경우 정원 증원을 다툴 법률상 이익이, 처분의 근거 법규 및 관계 법규로부터 도출될 수 있으므로, 헌법상 기본권으로부터 법률상 이익을 직접 도출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4. 집행정지 사건 실체적 요건의 심리구조 [쟁점③]
가. 원심결정: 적극적 요건, 소극적 요건 및 ‘본안의 승소가능성’ 요건의 별도 검토
원심은 집행정지의 실체적 요건과 관련하여, 적극적 요건으로 (1)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와 함께 (2) 본안에서 패소할 것이 명백하지 않을 것을 검토하였고, 소극적 요건으로는 (1)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와 (2) 본안에서 승소할 것이 명백한지 여부를 검토하였습니다. 이처럼 원심은 적극적 요건과 소극적 요건을 각각 분리해서 판단하고, ‘본안의 승소가능성’ 역시 명백성을 판단 기준으로 하는 별도의 요건으로 보아 이를 적극적 요건과 소극적 요건에서 모두 검토를 하는 심리구조를 취하였습니다.
즉, 원심은 적극적 요건에 관한 판단에서 (1) 의대생인 신청인들에게 의대교육의 관점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고, (2) 의대정원 증원처분의 실체적ㆍ절차적 적법성이 명백하다고 보기 어려워(실체적으로 2,000명이라는 수치의 직접적 근거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고 절차적으로 2,000명이라는 수치가 증원 발표 직전에 사실상 처음 제시된 것으로 보임) 신청인들 패소가 명백하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적극적 요건은 소명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소극적 요건에 관한 판단에서는 (1) 처분의 집행정지가 필수의료ㆍ지역의료 회복 등의 필수적 전제인 의대정원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보이고, 의대교육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우려 또한 있더라도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의대증원을 통한 의료개혁이라는 공공복리를 보다 옹호할 필요가 있으며 (2) 처분의 실체적ㆍ절차적 하자가 명백하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실체적으로 2,000명 수치 자체에 관한 근거는 미흡해 보여도 의사인력 부족 현상에 관하여는 근거가 있고, 절차적으로 2,000명 수치는 직전 제시되었어도 의사인력 확충 문제는 꾸준히 논의되었음) 소극적 요건이 소명되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결국 원심은 집행정지의 실체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보아 의대생들의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였습니다.
나. 대법원 결정: 적극적 요건, 소극적 요건 및 ‘본안의 승소가능성’ 요건의 종합적 이익형량
본안의 승소가능성 요건에 관하여, 대법원 판례상 이것이 이익형량의 요소인지 아니면 승소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소극적 요건으로 하는지 확립되지 않았고, 이론적 논의도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령, 본안 승소가능성을 고려하되 이는 예외적으로 본안 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하지 않아야 한다는 소극적 요건으로만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고, 본안 승소가능성 정도에 따라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의 인정 여부가 달라진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적극적 요건과 소극적 요건의 존부를 독자적으로 판단하기보다 양자를 비교형량한 뒤에 신청인들의 집행정지를 기각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을 취하였습니다. 참고로, 대법원판례해설(제139호, 954쪽)에서는 원심이 집행정지 실체적 요건을 충실하게 심리하였다고 하면서도, 원심의 판단 구조에 대해 “‘적극적 요건’과 ‘소극적 요건’을 별도로 분리하여 심리함으로써 마치 두 요건의 존부를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인상이 남을 수 있고, ‘본안의 승소가능성’을 이익형량의 요소라기보다 명백성 기준을 통한 존부의 요건으로 접근한 점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평가합니다. 기존 대법원 판례에 의하더라도 적극적 요건인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긴급한 필요’ 여부는 처분의 성질과 태양 및 내용, 상대방이 입는 손해의 성질ㆍ내용 및 정도, 원상회복ㆍ금전배상의 방법 및 난이 등과 아울러 본안의 승소가능성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고(대법원 2011. 4. 21. 자 2010무111 전원합의체 결정), 소극적 요건인 ‘공공복리에 미칠 영향이 중대한지’ 여부는 절대적 기준에 의하여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신청인의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와 ‘공공복리’ 양자를 비교ㆍ교량하여 상대적ㆍ개별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고 합니다(대법원 2010. 5. 14. 자 2010무48 결정 등).
즉,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이 사건 증원배정 처분이 집행됨으로 인해 의대 재학 중 신청인들이 입을 수 있는 손해에 비하여 이 사건 증원배정의 집행이 정지됨으로써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는 이유에서 집행정지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재학생 전체 정원 대비 신입생 입학정원 증가 비율 등을 고려할 때 재학 중인 신청인들이 받게 될 교육의 질이 크게 저하될 것이라고 보기는 부족하지만, 복수 기관에서 장래의 의사 부족 현상을 전망하는 상황에서 증원배정의 집행이 정지될 경우 국민 보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의대정원 증원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이익형량의 과정에서 본안의 승소가능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예컨대 본안 승소가능성이 높은 경우 신청인 측이 처분 집행을 연기할 이익이 낮더라도 집행정지가 인용될 수 있고, 본안 승소가능성이 낮은 경우 그 연기이익이 아주 강한 때에만 집행정지가 인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5. 결정의 의미
이 사건에는 행정소송법상 집행정지 제도에 관하여 그동안 활발히 논의가 진행되어 온 법리적 문제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향후 집행정지 사건의 준비나 진행에 여러 시사점을 제공하는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습니다.
첫째, 대법원은 집행정지 사건에서도 처분성 등 독자적인 적법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행정청의 내부 의사결정을 대외적으로 공표한 것에 불과할 뿐 구체적 법적 효과를 발생시킨다고 보기 곤란한 행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은 부적법하다고 보았습니다.
둘째, 대법원은 항고소송의 당사자적격 인정 근거인 법률상 이익이 처분의 근거 법규 또는 관련 법규에 의해 도출될 수 있다면 우선 이를 통해 법률상 이익을 도출하고, 곧바로 헌법상 기본권 규정으로부터 법률상 이익을 도출하고자 하는 경향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셋째, 대법원은 집행정지 사건의 실체적 요건과 관련하여 적극적 요건, 소극적 요건, 본안의 승소가능성을 별개의 요건으로 보고 각각 존부를 판단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위의 요건들을 집행정지 결정에 이르는 이익형량 요소로 보았습니다. 집행정지의 실체적 요건과 관련한 이러한 판단 구조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서 법원이 충돌하는 공익과 사익을 보다 유연하고 심도 있게 형량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