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 한국항공우주산업(주) 사보】- 2004년 2월호 법률문제하면 머리가 먼저 아파오고, 변호사들이나 검사, 판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지요. 민사(悶死)가 어떻고, 형사(刑事)가 어떻고, 또 어떨 때는 이미 벌금을 냈는데도 또 다시 무슨 영업정지니 영업허가 취소니 하는 일도 당합니다. 그래서 이번 달에는 먼저 교통사고 사례를 가지고 우리 생활을 둘러싸고 있는 민사, 형사, 행정 등 다양한 법률관계에 관한 기초적인 내용을 확인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A는 지난 연말 직장 동료들과 함께 송년회를 겸한 간단한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B씨의 승용차를 추돌하였습니다. 이 사고로 B씨의 승용차에 타고 있던 B의 아내 C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다행히 그 부상의 정도가 심하지 않아 A와 B는 원만하게 사고수습을 하기로 하였지만, B의 아내 C의 상태가 어떻게 될지 몰라 서로 난감해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경우, A에게는 어떤 책임이 있을까요? 먼저 사고가 났으니, 혹시 징역형을 선고받거나 벌금을 많이 내게 되지는 않는지가 가장 걱정되겠지요. 이것이 바로 형사(刑事)문제입니다. A의 경우도 B와 합의가 되지 않아 경찰관이 정식으로 입건한다면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종합보험이나 공제에 가입되어 있다면, C가 사망하지 않은 이상 합의를 하지 않더라도 형사처벌을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운전자가 종합보험이나 공제에 가입한 경우에는 교통사고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3조 제2항에서 정한 10가지 사유(예컨대, 신호위반, 중앙선침범, 제한속도를 20Km이상 초과한 과속 등)에 해당하지 않는 한 아예 검찰이 공소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4조). 따라서 A가 종합보험에 가입해 있다면, A는 징역형을 선고받지 않는 것은 물론 벌금조차도 낼 필요가 없습니다. 즉, 형사책임은 없는 것입니다. 다행히 A는 종합보험에 가입한 상태여서 형사처벌은 받지 않게 되었답니다. 그러면 모두 해결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형사처벌과는 별도로 운전면허가 정지 또는 취소될 수 있습니다. 즉, 행정처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행정처분의 기준이 되는 벌점제도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볼까요. 벌점이 가장 높은 것 중 하나는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경우입니다. 이때는 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음주운전 기준치인 혈중알콜농도 0.05%를 넘으면 벌점 100점을 부과 받게 됩니다. 중앙선침범의 경우에는 벌점 30점을, 제한속도를 20Km 이상 초과하여 과속한 경우에는 15점의 벌점을 받습니다. 한편, 교통사고로 사람이 사망한 경우에는 사망 1명마다 벌점 90점, 중상(3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경우) 1명마다 벌점 15점, 경상(3주 이하의 치료)인 경우에는 1명마다 5점의 벌점을 받게 되니, 음주와 과속에 대한 처벌이 얼마나 엄한 것인지 알 수 있겠지요? 누적된 벌점이 일정기준을 넘는 경우에도 면허가 취소될 수 있습니다. 누적 벌점이 1년간 121점, 또는 2년간 201점, 3년간 271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운전면허가 취소됩니다. 그리고 누적 벌점이 40점을 초과하게 되면 1점당 1일씩 면허가 정지됩니다. 위 사례의 경우, A의 잘못으로 사람이 1명 다쳤으니, A는 최소한 5점 내지 15점의 벌점을 받게 되겠지요. 음주나 신호위반이 있었다면 그에 따라 벌점이 추가될 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각종 규제나 제한을 위반하여 불이익을 받게 되고, 행정청으로부터 행정처분을 당하게 되는 것이 바로 행정(行政) 법률관계입니다. 사업하시는 분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각종 영업정지나 영업허가취소 등도 바로 행정 법률문제입니다. 행정 법률관계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 한 가지. 행정처분을 받게 되면 늦어도 90일 이내에 행정소송을 제기하거나 행정심판을 제기하여 처분의 취소를 구해야 합니다(행정소송법 제20조, 행정심판법 제18조). 만일 위 기간이 지나도록 행정소송 등을 제기하지 않으며, 아무리 억울해도 행정처분의 취소를 구할 수 없게 됩니다. 90일. 우리의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 꼭 기억해 두실 숫자 중에 하나입니다(조세관련 법률에서는 이보다 짧은 60일 이내에 심판을 구하도록 규정한 것도 있다는 사실도 꼭 알아 두셔야 합니다). 자, 보험에 가입되었다는 이유로 벌금도 안 내고, 단지 벌점을 받게 되는 것으로 A의 책임은 이제 더 이상 없는 것일까요? 한 가지 더. 손해배상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바로 민사(民事) 법률관계입니다. 다행히 A가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므로, 보험회사에서 B와 그의 처 C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금해 줄 것이지만, 만일 A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라면, A는 B의 차량수리에 소요된 비용은 물론, C의 치료비와 위자료, 그리고 B가 차량을 운행하지 못함으로써 입게 되는 손해까지도 배상해야 합니다. 만일 A가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B와 C는 A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것입니다. 이러한 민사 법률관계가 우리 생활에서 가장 흔하게 접하는 것입니다. 민사(民事)문제는 형사나 행정 문제와는 전혀 별개의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 벌금을 내거나 징역형을 살고 나왔다고 하여도(형사 법률관계), 손해배상 문제(민사 법률관계)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몸으로 때운다고 해서 민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사건, 사고에 대하여 민사, 형사, 행정 등의 여러 가지 분야에서 동시에 문제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이를 담당하는 기관도 전혀 다릅니다. 따라서 무슨 일이 터졌을 때 과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는 한 관점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관련된 모든 분야의 법률관계를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박영주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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