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似而非)'라는 말은 가장 심한 욕설 중 하나입니다. '진짜가 아닌 가짜', '질 나쁜 거짓말쟁이', '천하의 사기꾼'들에게 붙여주는 호칭으로 쓰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의 본뜻은 그렇게 나쁜 뜻은 아니라고 합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지 않은 것', '외양은 비슷해 보이지만, 속내는 서로 다른 두 사물의 차이'를 지칭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사시이비(似是而非)'라고도 한다는데 이를 보면 본래의 뜻을 좀더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사법제도를 비롯한 여러 문물들은 너무 오래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고, 또 너무 가까워서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용어로 쓰여 있는 법 규정의 뜻이 전혀 다른 것을 보면, 어쩌면 '사이비(似而非)'라는 표현이야말로 외양이 비슷해도 실제로는 우리의 제도와 문물과는 전혀 다른 중국의 제도, 문물과의 관계를 제일 잘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것과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중국 사법제도의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양심종심제(兩審終審制) '삼세판'. 가위, 바위, 보도 세 번은 해야 하고, 천하장사 씨름도 '3판 양승'으로 승부를 결정하는 우리에게 3번 재판을 받을 수 있는 '3심제(3審制)'는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선진국 또는 후진국 구별 없이 대부분의 국가들은 3심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2심제(兩審終審制)'를 채택하고 있습니다(법원조직법 제12조 ). 즉, 민사사건도 제2심이 종심적 판결이고(민사소송법 제158조), 형사사건도 제2심이 마지막 재판입니다(형사소송법 제197조). 어떤 소송이든 2번 재판을 하였으면, 당사자는 더 이상 '상소(上訴)'할 수 없습니다. 최하급 인민법원으로 현, 자치현, 시, 대도시의 구 등 전국에 약 3,000여 곳에 설치된 기층()인민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하여는 중급인민법원의 제2심 판결이, 중급인민법원이 제1심으로 판결한 사건에 대하여는 고급인민법원의 2심 판결이 마지막이고, 최종적인 판결이 됩니다. 따라서 제1심에서 원고가 승소한 사건에 대해 제2심 법원에서 판결을 번복하여 청구를 기각한 경우에도, 더 이상 다툴 수 없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형사, 민사사건은 고급인민법원의 판결로 종결됩니다. 고급인민법원은 각 성(省), 자치구, 직할시에 1개씩 전국적으로 31개가 설치되어 있는데, 고급인민법원은 성, 자치구, 직할시 전체에 의의를 갖는 중대 형사사건이나 관할 구역 내 영향이 큰 중요 민사사건, 경제사건만을 1심으로 판결하므로 우리나라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인민법원에 상소할 수 있는 사건은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중국이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2심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학자들은 신중국 건국 이후 수십 년간의 경험에 비추어 2심제가 사건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데 유리하고, 광대한 면적의 국토와 교통불편에 따른 효율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연방제를 채택하여 각 주마다 3심제의 사법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단일제(單一制) 국가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13억이 훨씬 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소송사건들을 모두 최고인민법원에 상소하여 제3심으로 결판내야 한다면 이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재판감독절차() 2심제와 관련하여 중국만의 독특한 제도인 '재판감독절차()'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재판감독절차란 '이미 확정된 판결 및 결정에 오류가 있는 것이 확실한 경우 각 인민법원에 설치된 재판위원회의 결정 또는 상급 인민법원이나 인민검찰원의 요구에 의해 다시 재판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합니다(민사소송법 제178조, 형사소송법 제204조). 이에 따라 각급 인민법원에 설치된 재판위원회나 상급 인민검찰원이 이미 확정된 판결에 오류가 있다는 이유로 다시 재판할 것을 요구하면, 다른 재심사유가 없어도 재판절차에 따라 다시 재판하여 판결을 번복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고급인민법원은 관할 내 중급인민법원의 판결에 확실한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이미 판결이 확정되었다고 하더라도 다시 재판절차에 따라 스스로 심리하거나 해당 하급 인민법원에 대하여 재심할 것을 명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중국은 비록 2심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언제든지 판결 결과를 번복하여 구제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판결이 영구히 확정되지 않는 셈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검찰에 해당하는 인민검찰원에 법률감독권한을 부여하여, 최고인민검찰원은 각급 인민법원에 대하여, 상급 인민검찰원은 하급 인민법원에 대하여 형사사건은 물론이고 민사사건에 대하여도 다시 재판할 것을 요구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데(민사소송법 제187조; 이를 '재심항소(再審抗訴)'라고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법원과 검찰의 관계를 고려할 때 매우 특이한 점입니다. 이와 같은 재판감독절차에 대하여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고친다'는 중국 소송제도의 원칙에 터 잡은 것이라 설명하기도 하지만, 연혁적으로는 중국 법관들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국의 법관은 2002년 통일사법고시가 실시되기 전까지는 변호사자격을 요건으로 하지 않았고, 각 성, 자치구, 직할시의 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회에서 법원장의 추천을 받아 임면하기 때문에 그 출신이 매우 다양했습니다. 법관에 대한 처우도 각 지방의 재정사정에 따라 다릅니다. 그 결과 과거 중국의 법관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법학교육을 받지 않았거나 심지어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고, 1990년대 중반까지는 퇴역군인이나 당 관료 출신 법관들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재판절차 진행의 수준이나 판결 내용에 대하여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비록 판결이 확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사후에 판결의 적법 여부를 심사, 감독하여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컸고, 나아가 사회주의원칙에 위배되거나 국가정책에 반하는 판결에 대하여는 국가에서 간섭할 필요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재판감독절차가 종래 중국의 현실에 비추어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사법부의 독립과 공정한 재판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2002년 통일사법고시 실시 이후 일정 수준 이상의 법학교육을 받고 자격을 갖춘 변호사와 법관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재판감독절차에 따른 판결 정정의 필요성은 점차 줄어들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3. 다양한 명칭의 법령들 우리나라에서는, 재판의 전제가 되는 법률(法律)은 모두 국회에서 제정합니다. 법률에 정한 것을 보다 구체화하거나 집행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행정부에서 시행령(대통령령)과 시행규칙(각 부의 부령)을 정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와 유사하지만, 훨씬 복잡한 법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법(法)' 사이에도 '기본법률'과 '기타법률'로 구별하여 그 효력에 차이가 있습니다. 형법, 민법통칙, 계약법(合同法), 상속법 등과 같은 중요 법률은 우리나라의 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제정하고 개정하는데, 이를 '기본법률'이라고 하고, 기본법률 이외의 것으로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회가 제정하고 개정하는 법은 '기타법률'이라 구별하고 있습니다. '기타법률'에는 회사법, 노동법, 특허법, 상표법 등이 있습니다. 상무위원회에서 정한 '기타법률' 중에는 '법(法)'이라 칭하지 않고 각종 '規定', '決定', '條例' 등의 명칭을 가진 것들도 있지만, 그 효력은 기타법률과 동일합니다. 우리나라의 행정부에 해당하는 국무원에서 정한 규정(規定), 결정(決定), 조례(條例), 판법(辦法), 잠행조례(暫行條例), 통지(通知), 해석(解釋) 등(이를 '행정법규'라 합니다)이나, 각 성(省), 자치구, 직할시의 지방국가기관에서 정한 규정(規定)이나 결정(決定), 조례(條例) 등(이들을 '지방성 법규'라 합니다)도 재판의 전제가 되는 규범들입니다. 또 국무원에 속한 각 부, 각 위원회에서 정한 실시세칙(實施細則), 잠행규정(暫行規定), 통지(通知), 설명(說明), 의견(意見) 등(이들 규범을 '部門規章'이라 합니다)도 구속력이 있는 법령에 속합니다. 이들 각 규범들은 헌법 → 기본법률 → 기타법률 → 국무원 행정법규 → 지방성 법규/부문규장의 순으로 효력을 가지게 됩니다. 만일 일반법과 특별법이 충돌하여 적용법률을 확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회에서 적용할 법률을 결정합니다. 이처럼 각종 규범들의 명칭이 통일되어 있지 않고 매우 다양하고 심지어 설명(說明), 의견(意見) 같이 법령으로 보이지 않는 명칭을 가진 것들도 엄연히 국가의 법령으로서의 효력을 가진 것이라는 점은 주의해야 합니다. 실생활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각 성이나 자치구, 직할시에서 제정하는 지방성법규입니다. 광활한 국토만큼이나 생활환경이 다른 중국에서는 동일한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각 성(省), 자치구의 사정에 따라 서로 다른 내용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규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하급 인민법원의 '지방보호주의' 경향을 고려하면, 해당 지역의 지방성법규는 물론이고 해당 지역 인민법원의 판결성향에 대하여도 세밀한 검토가 필수적입니다. 4. 상소/항소, 판결/재정/결정, 自訴 마지막으로 우리와 같은 한자(단어)를 사용하지만, 그 뜻은 다른 중국 사법용어들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경우, 하급심의 판결에 대하여 불복하여 상급심에 다시 재판할 것을 청구하는 것을 상소(上訴)라고 하고, 그 중 1심에 불복하여 2심 재판을 청구하는 것을 항소(抗訴), 다시 2심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3심을 청구하는 것을 상고(上告)라고 구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 대법원에 3심을 청구하는 상고(上告)라는 용어는 없습니다. 또한 중국의 민사소송법이나 형사소송법에서는 상소(上訴)와 항소(抗訴)를 엄격하게 구별하고 있습니다. 중국 소송법상 상소(上訴)는 형사사건의 피고인이나 자소인(自訴人), 그 법정대리인, 또는 민사사건의 당사자가 아직 확정되지 아니한 인민법원의 제1심 판결이나 재정에 불복하여 상급 인민법원에 2심을 제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항소(抗訴)는 각급 인민검찰원이 아직 법률적 효력이 발생하지 아니한 제1심 판결이나 재정에 대하여 상급 인민법원에 2심을 제기하거나(이를 '일반항소'라고 합니다). 또 이미 확정된 판결이나 재정에 명백한 오류가 있는 경우, 인민검찰원이 재심판을 요청하는 것을 말합니다(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를 '재심항소'라고 합니다). 한편, 중국 법원에서 내리는 판단도 여러 가지 형식이 있습니다. 먼저 인민법원이 사건에 대하여 내리는 최종적인 판단을 판결(判決)이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와 같습니다. 이에 대해 불복하는 경우, 당사자는 15일 이내에 상소(上訴)할 수 있습니다. 재정(裁定)은 인민법원이 심리과정 중에 발생하는 절차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소송기간에만 유효하며 소송이 종결되면 재정은 그 효력을 상실합니다. 재정에 불복하는 경우에는 10일 이내에 상소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결정(決定)은 인민법원이 소송의 원활한 진행을 위하여, 소송상 발생하는 특정절차에 대하여 내리는 판단으로, 당사자 또는 외부인이 이에 불복하여 상소할 수 없고, 다만 결정을 내린 법원에 대해 다시 결정해 줄 것을 신청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한편, 형사절차상 특유한 중국의 제도로는 자소(自訴)제도가 있습니다. 자소(自訴)는 검찰이 형사사건에 대하여 제기하는 공소(公訴)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 근친족이 피고인의 형사책임을 추궁하기 위하여 직접 형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중국 형사소송법은 수사기관이 수사하지 아니하거나 검찰이 기소하지 아니한 때라도 범죄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있는 때에는 스스로 인민법원에 형사사건을 기소할 수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170조). 이 경우 공안기관이나 인민검찰원은 그 사건에 관한 자료 등을 인민법원에 제출하여야 합니다. 자소(自訴)제도는 우리나라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중국의 독특한 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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