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판결의 취지
농업경제사업뿐만 아니라 신용사업을 영위하는 특수법인이 농약 제조업체들과 농약 완제품 구매계약을 체결하면서 가격차손장려금을 부담시키거나 농약제품을 반품한 것은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거래조건을 설정하고 거래상대방에게 불이익을 준 것으로 공정거래법 제23조제1항제4호에서 금지한 '자기의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2. 사실관계
농약 완제품의 유통은 크게 2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농협중앙회를 통한 유통과 일반 시중 판매상(도ㆍ소매상)을 통한 유통이 그것입니다. 이 중 농협중앙회를 통한 유통은 전체 농약완제품 유통물량의 약 30~4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농협중앙회를 통한 농약 완제품의 유통경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농협중앙회는 매년 12월 경 농약 제조업체들로부터 다음해 구매품목으로 선정되기를 원하는 제품목록과 단가, 장려금 등이 포함된 지원서를 제출 받아 이를 바탕으로 농약 제조업체들과 구체적인 협상을 거쳐 농약 완제품 구매 계약을 체결합니다(이하 '계통구매계약'). 그런 다음 농협중앙회 산하 회원조합(지역조합, 품목조합)은 다음 해 1월 말까지 계통구매계약에 따라 구체적인 농약(이하 '계통구매 농약제품) 물량을 신청하면, 농약 제조업체들이 2월부터 6,7월경까지 신청물량의 80%를 당해 회원조합들에게 직접공급하고, 나머지 물량은 가을용으로 추후 공급하게 됩니다. 그 대금은 농협중앙회가 매년 12월 15일경 농약 제조업체들에게 일괄적으로 정산해 줍니다.
그런데 농협중앙회가 아닌 시중 농약판매상이 계통구매 농약제품을 계통구매계약에서 정한 가격(이하 '계통구매 가격') 이하로 최종소비자인 농민에게 판매하여 농협중앙회의 회원조합도 해당 제품을 구매가격 이하로 판매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했습니다. 농협중앙회는 이러한 경우 회원조합에게 당해 회원조합이 실제로 구매한 가격과 판매한 가격과의 차액('가격차손금')을 보전하여 주는 이른바 '가격차손보전제도'를 시행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자 농협중앙회는 2005년 1월 이후 농약 제조업체와 계통구매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가격차손장려금 조항'과 '반품 조항'을 새로이 삽입하였습니다. '가격차손장려금 조항'은 시중 농약 판매상들이 계통구매 농약제품을 계통구매 가격 이하로 판매하여 당해 제품에서 발생한 가격차손금 총액이 당해 제품의 구매총액의 일정비율을 초과하면 해당 농약 제조업체에게 일정금액을 '가격차손금장려금' 명목으로 부담시키는 규정이었습니다. '반품 조항'은 계통구매 농약제품이 시중에서 저가로 유통 판매되어 농협중앙회의 회원조합이 당해 제품을 정상적으로 판매하지 못해 재고가 발생하는 경우 당해 농약제품의 제조업체에게 미판매 재고를 반품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었습니다. 농협중앙회는 이들 조항을 통해 2005년부터 20008년까지 농약 제조업체들로부터 가격차손장려금으로 약 12억원을 지급받았고, 2006년 약 2,600만원 상당이 농약제품을 반품하였습니다.
공정위는 농협중앙회가 이처럼 농약 제조업체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가격차손장려금을 부담시키고 농약제품을 반품받도록 한 것은 공정거래법 제23조제1항제4호에서 금지하는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원고에 대하여 시정명령 및 과징금 약 45억원을 부과하였습니다.
농협중앙회는 농약 제조업체와의 관계에서 공정거래법 제23조제1항제4호에서 정한 '거래상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농약 제조업체와의 협상을 통해 가격차손장려금 및 반품 조항을 거래조건으로 설정했으며 농약 제조업체들이 문제된 조항으로 부담한 금액이 원고와 전체 거래규모에 비추어 보면 극히 미미하므로 농약 제조업체들이 입은 실질적 불이익이 없다는 점을 들어 공정위의 처분을 다투었습니다. 그러나, 농협중앙회의 주장을 검토한 서울고등법원은 공정위의 손을 들어 주었고, 대법원 또한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불복한 농협중앙회의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함으로써, 농협중앙회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대법원 2012. 1. 12. 선고 2011두23054 판결).
3. 판결의 의의
최근 들어 거래상지위 남용이 문제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데, 이번 판결 또한 거래상지위 남용이 현실에서 어떻게 문제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태도는 어떠한지를 살펴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거래상 지위'와 관련해서는 법원은 ① 농약판매시장에서 농협중앙회의 계통구매의 비중이 전체의 약 30~40%에 달해 농약제조업체들의 농협중앙회에 대한 거래의존도가 매우 높고, 농협중앙회를 제외한 나머지 농약 판매상들이 비교적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어 농약 제조업체들로서는 농협중앙회와의 거래가 차단되는 경우 이를 대체할 만한 안정적인 거래선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② 농협중앙회의 2008년 한 해 매출액이 40조가 넘는 등 농협중앙회와 농약제조업체들 간 사업능력에 현저한 차이가 있으며, ③ 농협중앙회가 농약의 최종소비자인 농민을 회원으로 하여 조직된 지역조합과 품목조합을 회원으로 하고 있으므로 농협중앙회가 농약 제조업체들의 거래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아 농협중앙회의 농약제조업체들에 대한 거래상 지위를 인정하였습니다.
'거래상지위 남용에 따른 불이익제공'과 관련해서는, 법원은 ① 농협중앙회는 회원조합에 보전해주는 가격차손금을 일부 만회하고 가격경쟁을 방지하여 농약의 시중 판매가격을 계통구매가격 이하로 형성되지 못하게 할 의도나 목적으로 가격차손장려금 및 반품 조항을 거래조건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이고, ② 가격차손장려금 및 반품 조항이 농약 제조업체들의 귀책사유를 불문하고 있고 가격차손장려금의 범위 또한 점차 확대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그 금액 확정을 위한 협의절차에 관한 조항도 없어 농약 제조업체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며, 농약 제조업체들은 농협중앙회의 거래상 지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격차손장려금 및 반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정이 보이고, ③ 가격차손장려금 및 반품 조항은 농약 제조업체들로 하여금 농협중앙회의 계통구매가격 인하로 시중 농약 판매상이 재판매할 수 없도록 사실상 판매가격을 강제함으로써 농약 유통경로(농협중앙회를 통한 계통구매와 시중 농약판매상) 간 가격경쟁을 제한하여 최종소비자인 농민들이 계통구매 가격보다 저가로 농약제품을 구입할 수 없도록 하여 소비자후생을 저해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농협중앙회가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농약 제조업체들에게 불이익을 제공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번 판결은 거래상지위 남용과 관련된 이전 판례들과 마찬가지로 거래관계에서 일방 당사자가 우월한 지위에 놓인 경우 당사자간 합의 하에 거래를 했다고 하더라도 해당 거래가 정상적인 거래관행을 벗어나서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면 공정거래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4. 다운로드 :
서울고등법원 2011. 8. 18. 선고 2010누34707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