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업집단이 그 영역이나 규모를 계속 확장해 나가게 되면 그 기업집단이 속한 특정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시장집중 현상이 나타나게 되고, 국민경제 전체에서의 비중이 높아져 불균형적인 부의 집중과 소유집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력 집중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며 첨단기술분야에 대한 투자로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기여하는 것은 긍정적 측면입니다. 반면 계열기업의 과도한 확장으로 전문성과 효율성이 떨어지고 영세한 중소기업은 설 자리를 잃게 되며 한계 계열회사의 부실로 인한 기업집단 전체 재무구조의 동반 악화를 초래하여 국민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가할 수도 있습니다. 공정거래법은 1987년 법 개정을 통하여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집단을 대규모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소속 계열회사에 대해서 상호출자를 금지하는 한편 출자총액 한도를 정함으로써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정책을 강화하였습니다.
최근에는 다양한 계층간 불평등 문제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잠재적 갈등이 더욱 표면화되고 있습니다. 일찍이 정부에서는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 등을 도입해서 대기업의 과다한 사업영역 확장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책을 마련하기도 하였으나 규제개혁 차원에서 동 제도는 2005년경 폐지되었습니다. 최근 민간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과 품목을 선정하여 대기업이 중소기업 적합 업종에서의 사업 영위 및 확장을 자제하여 줄 것을 권고하기도 하였으나, 이미 표면화된 갈등 국면을 잠재우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올해 예정되어 있는 대통령 선거전에서도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대책들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을 포함한 각종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힘의 불균형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을 바로 잡기 위한 시책들을 계속 발표하면서 적극적인 역할을 자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대기업집단의 계열회사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관행을 개선하여 중소기업에게 더 많은 사업기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목적 하에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회사의 거래상대방 선정에 관한 모범기준」(이하 '모범기준')을 제정하기도 하였습니다.
2. 계열회사간 내부거래에 대한 규제
기업집단에 속한 계열회사들 사이에서 서로 거래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계열회사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경쟁사업자와 차별적인 대우를 할 경우에는 공정한 시장경쟁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공정거래법은 어떠한 계열회사가 특정 계열회사를 경제적으로 지원하거나 비계열회사를 차별 취급하는 등 경쟁제한의 목적이나 경쟁제한의 효과를 가지는 거래에 대해서는 불공정거래행위로서 규제하고 있습니다. 특히 부당내부거래는 계열회사에게 자금ㆍ자산ㆍ인력이나 상품ㆍ용역 등을 정상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에 제공함으로써 지원객체가 속한 시장에서 경쟁이 저해되거나 경제력 집중이 야기되는 등으로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성립합니다(법 제23조제1항제7호).
이러한 불공정거래행위 외에도 공정거래법은 경제력 집중 억제 시책 중 하나로서 특수관계인을 상대방으로 하거나 특수관계인을 위하여 거래하는 행위로서 그 거래금액이 일정 규모 이상인 거래를 '대규모 내부거래'라고 하여 별도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내부거래에 대해서는 사전에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이를 공시하여야 합니다(법 제11조의2). 이를 통해 계열회사간 부당한 내부거래를 사전에 억제하고 대규모 내부거래에 관한 정보를 시장에 제공함으로써 거래를 보다 투명하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규모 내부거래에 관한 규제는 1999년 12월 법개정을 통하여 처음 도입되었는데, 당초에는 대규모 내부거래의 대상을 대여금 등 자금거래, 주식과 같은 유가증권거래 및 부동산 또는 무체재산권 등 자산거래에 한정하다가, 2007년 4월 법개정에서 계열회사를 상대방으로 하거나 동 계열회사를 위하여 상품 또는 용역을 거래하는 행위도 포함시켰습니다. 나아가 공정거래법은 이러한 계열회사간 상품이나 용역거래의 현황 등을 매년 공시하도록 함으로써 사후 시장에서의 감시와 점검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법 제11조의4).
3. 계열회사간 내부거래 현황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집단 현황공시 등을 통하여 파악한 바에 의하면 2010년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47개 민간 기업집단의 광고ㆍSIㆍ물류ㆍ건설 분야에서의 내부거래 규모는 약 27조 원에 이르고, 그 중 10대 그룹의 내부거래 규모가 약 17.5조 원으로서 전체의 약 65%를 차지합니다. 또한 20대 기업집단 소속 광고ㆍSIㆍ물류업체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 계열회사간 내부거래 중에서 약 88%가 수의계약 방식으로 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비계열회사와 거래하면서 수의계약을 체결한 비중이 약 41%임을 감안하면 특히 계열회사와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대부분 수의계약 방식을 활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기업집단 계열회사 간의 수의계약 체결로 인하여 기업집단에 소속되지 않은 중소사업자는 대기업집단의 일감을 따올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봉쇄되어 역량 있는 중소기업의 성장기회가 제한되는 문제가 있고, 대기업집단에 소속된 수주기업으로서는 계열회사와의 안정된 거래관계를 확보해 둠으로써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기업집단 수주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정한 룰에 따라 시장에서 경쟁할 때 각자 고유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발주사 입장에서도 가장 적합한 거래상대방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다만 대기업집단 입장에서도 계열회사들 간 수직계열화를 통하여 효율성을 확보하거나 안정적인 거래관계를 형성할 필요를 부정하기 어렵고, 기업집단의 장기적인 사업계획이나 영업비밀 등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보면 계열회사간 내부거래를 무조건 금지시하기 보다는 합리적인 기준에서 개선점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4.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회사의 거래상대방 선정에 관한 모범기준
지난 2012년 4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규모 기업집단 계열회사의 일감몰아주기 관행을 개선하고 경쟁입찰을 확대하여 독립 중소기업에게 사업기회가 개방되도록 하기 위해서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 회사의 거래상대방 선정에 관한 모범기준」을 제정하여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해 그 채택을 권고하기로 하였습니다.
모범기준은 거래상대방 선정의 3대 기본원칙으로 ① 계열회사 등에 대한 부당지원행위 금지, ② 비계열 독립기업에 대한 사업기회 개방, ③ 거래상대방 선정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세부기준으로서 ① 경쟁입찰의 활성화, ② 비계열 독립기업에 대한 직접 발주 확대, ③ 내부거래위원회 등의 구성 및 운영, ④ 관련자료의 보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최근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통하여 대규모 내부거래의 이사회 의결 및 공시 대상인 '대규모 내부거래'를 거래금액이 그 회사의 자본총계 또는 자본금 중 큰 금액의 5% 이상이거나 50억 원 이상인 거래로 하여 그 범위를 대폭 확대하였습니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인 「대규모 내부거래에 대한 이사회 의결 및 공시에 관한 규정」도 최근 개정되어 계열회사와의 상품 또는 용역 거래가 경쟁입찰에 의한 것인지, 수의계약에 의한 것인지도 공시해야 합니다. 이러한 이사회 의결 및 공시의무 강화는 주주 등 이해관계인에 의한 사회적 감시를 강화하여 계열회사 사이에서도 가장 합리적인 방식과 내용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모범기준에서 기준의 성격에 대해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모범기준은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 회사의 거래상대방 선정 및 계약과 관련된 모범적인 행위 및 거래기준을 정하여 권고하는 것이어서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 회사가 제시된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가 바로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 등의 위법행위를 구성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법령 개정 및 모범기준 제시 등을 통하여 계열회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고, 여론 또한 계열회사들 사이의 내부거래에 대하여 호의적이지 않은 만큼 향후 계열회사와의 수의계약 비중이 높은 기업집단에 대해서는 당국의 감시가 강화되고 직권 조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법무법인 지평 박형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