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부동산전문가들이 선정한 “올해의 부동산 관련 키워드” 중 하나가 매몰비용이었습니다. “매몰비용”은 경제학상으로는 통상 “이미 사라져서 회수할 수 없는 모든 비용”을 의미하지만, 전반적인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 부동산 및 건설업계에서는 그 의미가 더욱 무겁고 크게 다가옵니다. 새해 벽두부터 희망보다는 절망과 공포를 실감하게 합니다.
2조원 가까이 투자된 아라뱃길은 당초 목적했던 관광과 물류사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연간 100억 원의 유지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합니다. 추가 비용을 아끼려면 뱃길을 폐쇄하는 게 상책이라고 하지만, 그동안 들인 매몰비용이 아까워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더욱 가슴 답답한 것은 22조 원이 넘는, 그야말로 단군 이래 최대의 사업이라는 4대강 사업의 성과(?)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입니다. 당초 목적했던 치수, 관광, 물류 등의 거창한 목표 달성은 이미 저편에 던져졌고, 앞으로 발생할 수질오염과 생태계파괴를 방지하고 설치된 보의 안전성확보를 위한 대책을 찾기에 급급해야 할 형편입니다.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당국자의 발표가 실린 신문 한 켠에는 추가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보의 전면 철거를 검토해야 할 것이라는 또다른 전문가의 의견이 실려 있습니다. 이들 보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연간 수천억 원의 비용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굳이 멀리 가지 않고도 서울시내 옛 도심지 곳곳에 내걸린 재개발, 재건축 추진위원회 간판과 “축 안전진단 통과”라는 플래카드를 지나치면서, 앞으로 바뀔 새로운 삶의 터전에 대한 기대와 희망보다 는 혹시나 벌어질 지 모르는 분쟁과 다툼, 그로 인한 아픔에 걱정이 앞섭니다. 그나마 사업이 계속되는 곳은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사업을 계속 진행하지 못하게 된 정비(예정)구역은 정말 빼지도 박지도 못하는 지경입니다.
그나마 당국자들이 추진위원회나 조합 등이 종전에 사업추진을 위해 사용한 매몰비용을 보전하겠다는 지원의사를 밝히고, 새로 들어설 정부의 책임자도 3천억 원 상당의 부담을 나누겠다는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이미 사라져 되찾을 수 없는 조합원들의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과연 뜻한 대로 원만하게 출구를 찾을 수 있을지 불안한 것도 사실입니다.
굳이 도시정비사업이 공공사업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거듭된 결정들(헌재 1997. 4. 24.자 96헌가3 결정; 2012. 11. 29.자 2011헌바224 결정 등)을 핑계대지 않더라도, 공공사업이라며 이들 사업들을 밀어붙이던 당국이 사업중단으로 인해 고통받는 수많은 토지소유자들을 돕는데 주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토지소유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 비용이니, 당사자들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거나 “투자에 따른 손실은 감내해야 하고, 이를 공적 자금으로 보전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것”이라 걱정하는 의견들이 한가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들 사업들이 어떻게 추진되고, 진행되는지, 그 이익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각종 시설들을 조합이나 시행사, 시공사들의 부담으로 떠 넘기며 정비사업을 조장하던 정책당국이 매몰비용을 보전하기 위한 방책을 마련하는 데 주저하는 것은 정책당국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소시민들에게는 너무나 매정하고 무책임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라뱃길도, 4대강도, 그리고 아직 갈 길이 먼 재개발, 재건축 등 각종 정비사업들도 모두,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미래 세대의 희망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홍보하고 설득하고, 심지어 물리력을 동원하며 강행했던 것이지만, 그러나 지금 그 결과는 처음 바라던 것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그러나 마음을 더 무겁게 하는 것은 이미 투자한 시간과 노력과 매몰비용에 집착해서, 이미 쏟아져 버려 다시 담을 수 없는 물이 아까워, 앞으로의 합리적인 선택과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게 될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중단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을 먼저 하라”는 지극히 단순한 삶의 이치를 부여잡고, 진정 무엇이 우리들의 삶에 중요한 것인지를 고민하며 다시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매몰비용의 함정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