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계속된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건설회사의 도산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워크아웃절차나 회생절차에 들어간 건설회사의 계약관계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복잡한 법률문제들이 야기됩니다. 그 중 하나가 도산절차에 들어간 건설회사가 PF사업과 관련하여 체결한 신용보강 약정에 대해 도산법상 부인권 행사가 가능한지의 문제입니다. 위와 같은 신용보강 약정은 PF 사업자금 조달을 위한 유력한 수단으로, 거래계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해당 사업자금에 대한 대출채권은 자산유동화 등의 수단을 통해 증권화되어 일반 투자자들에게 판매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용보강 약정에 대한 부인권 행사가 허용될 경우 이로 인한 파급효과는 해당 PF사업 참여기업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회생절차에 들어간 PF사업 시공사 관리인의 무상부인권 행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결정을 내렸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4. 6. 30.자 2014회확791 결정 등, 이하 ‘대상 결정’). 이 글에서는 대상 결정의 요지와 그 의미를 간략히 살펴봄으로써, 신용보강 약정의 부인 대상성에 관해 보다 깊이 있는 논의의 기초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2. 대상 결정의 요지 가. 사안의 개요 A사는 국ㆍ내외에서 신재생에너지 관련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시행사 선정, 사업자금 조달 주관 등 PF사업의 전 과정에 주도적으로 관여하였습니다. 위 PF사업의 사업자금은 대주(貸主)인 SPC가 기업어음 등을 발행하고 해당 증권을 유동화하여 판매하는 방법으로 조달되었으며, A사는 차주(借主)가 대출금 상환의무를 불이행할 경우 해당 채무를 인수하거나(채무인수 약정) 상환부족 자금 보충을 약정하는 방법(자금보충 약정)으로 차주의 신용을 보강해 주었습니다. A사에 대해 회생절차가 개시되고 대주가 위 신용보강 약정에 따른 채권을 회생채권으로 신고하자, A사의 관리인은 위 약정 체결 행위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00조 제1항 제4호가 정한 ‘무상행위’에 해당함을 이유로, 부인권을 행사하였습니다. 이에 대주는 회생법원에 회생채권조사확정재판을 신청하였습니다. 나. 법원의 판단 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A사 관리인의 무상부인권 행사를 배척하였습니다. (1) 무상행위성 부정 A사가 신재생에너지 관련 사업의 일환으로 설치공사를 진행하기 위하여 관련 사업을 실시할 시행사를 발굴하고 자금조달을 주선하는 금융기관에 사업에 관한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며 신용을 보강하는 등의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자금을 유치하여 공사를 진행해 온 점, A사의 신용보강 약정이 대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A사는 신용보강을 통한 대출금으로 특별한 자금 여력이 없는 시행사들로부터 공사대금을 지급받아 공사를 진행하고 공사수익을 창출하였던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A사는 이 사건 신용보강 약정으로 인하여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2) 상당성 인정 가사 이 사건 신용보강 약정이 무상행위라 하더라도, (i) A사는 위와 같은 사업으로 인하여 상당한 규모의 영업이익을 시현하여 왔고 이 사건 신용보강 약정도 그와 같은 사업의 자금조달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행위였던 점, (ii) 이 사건 신용보강 약정 체결 당시 A사의 사업은 정상적으로 운영되어 오고 있었고 A사의 영업상황이나 재무상태에 비추어 가까운 시일 내에 회생절차 개시의 원인이 발생하리라는 점을 예상할 수 없었던 점, (iii) 조사위원의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회생절차 개시 이후 이와 같은 PF사업으로 인한 우발채무의 현실화 예상액이 총 PF사업의 신용공여액 대비 약 30%가량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고, 시행사의 정상적인 사업 진행이 이루어진다면 A사는 공사수익을 창출하고 대주도 시행사로부터 장래 정상적인 채무의 변제를 받을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 사건 신용보강 약정 체결 행위는 사회적 상당성과 필요성을 갖춘 행위로서 부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3. 대상 결정의 의미 대법원 판례는 무상부인의 대상이 되는 무상행위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즉, 무상행위란 “채무자가 대가를 받지 않고 재산을 감소시키거나 채무를 증가시키는 일체의 행위로서 그 행위의 대가로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경제적 이익을 받지 않는 경우”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회생회사가 주채무자를 위하여 보증을 제공한 것이 채권자의 주채무자에 대한 출연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경우에도 회생회사의 보증행위와 이로써 이익을 얻은 채권자의 출연 사이에는 ‘사실상의 관계’가 있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 보증행위를 원칙적으로 무상행위로 보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보증의 유상성 인정요건인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경제적 이익’도 매우 좁게 해석하여, 100% 자회사가 수행하는 사업의 자금조달을 돕기 위해 모회사가 보증을 제공한 경우에도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경제적 이익’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2008. 11. 27. 선고 2006다50444 판결). 이러한 판례 하에서는 ‘보증행위’가 무상부인권 행사를 면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PF사업 관련 신용보강 약정을 위와 같은 ‘보증행위’의 한 유형으로 평가하여 무상부인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큰 의문이 있습니다. PF사업 관련 신용보강 약정은 “어떠한 경제주체가 제3자의 채무에 관하여 대가 없이 같은 내용의 채무부담을 약속한다”는 전형적인 보증과는 성격이 같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통상 신용보강을 약정하는 주체는 해당 PF사업의 성공에 관하여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거나 그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키(key)를 쥐고 있습니다. 따라서 형식적인 사업 주체(통상 시행자)를 차주로 삼아 사업자금을 조달함에 있어 실질적 자력이 있거나 사업의 성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체가 신용보강을 약속하는 것은, 그 PF사업의 개시 및 진행을 위한 핵심적인 기초가 됩니다. 이러한 신용보강의 주체는 그와 같은 약정을 통해 PF 사업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다른 사업주체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며, 비로소 해당 사업에 참여하여 사업활동을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용보강 약정의 무상행위 여부 판단 기준이 되는 ‘대가’는 단순히 자금보충 또는 채무인수라는 전체 약정의 일부분만을 잘라내어 평가되어서는 안 되며, “사업 전체, 사업 관련 약정 일체에 대한 총체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상 결정은 위와 같은 사정을 고려하여 A사가 신용보강 약정의 대가로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고 판단하였다는 점에서, PF사업의 경제적 의미를 충분히 고려하여 정당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됩니다. 설사 무상행위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PF사업과 이를 위한 신용보강 약정이 관련 거래계에서 일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정상적 거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상당성’ 요건을 갖춘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대상 결정은 이러한 점에서도 의미 있는 선례로 남게 될 것입니다. 다만, 이 사건에서는 A사가 시행사 선정, PF사업 자금조달을 전체적으로 주관하였다는 점, PF 자금의 상당 부분이 공사비 형태로 A사에 직접 귀속되었다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대상 결정의 결론이 위와 같은 특수성이 현저하지 않은 PF사업의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으리라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만, 필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PF사업 진행의 기초가 되는 신용보강 약정을 무상행위로 보거나 그 상당성을 부정하는 것은 부인권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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