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A회사와 보험사인 피고는 2007년 3월 21일 A회사를 보험계약자 겸 피보험회사, A회사의 임원을 피보험자, 보험금 한도액을 100억 원으로 하는 내용의 임원배상책임보험 계약(이하 ‘이 사건 보험계약’)을 체결함. 이후 이 사건 보험계약은 5차례에 걸쳐 1년마다 갱신됨. 원고는 A회사의 대표이사이자 회장으로 재직하는 자임.
나. 이 사건 보험계약 약관(이하 ‘이 사건 약관’) 내용 중 배상청구에 대한 통지의무 및 방어비용에 관한 서면 동의 내용은 다음과 같음.
[제11조]
피보험자들은 이 증권에 규정된 그들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부당행위에 기인하여 그들에게 제기된 모든 손해에 대하여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회사에 서면으로 이를 통지하여야 합니다.
[제12조]
피보험자는 회사의 서면동의 없이는 어떠한 배상청구에 대하여서도 이를 지급하거나, 방어비용을 발생시키거나, 계약상의 의무를 받아들이거나 또는 그 책임을 인정하지 않을 것에 동의합니다. 회사는 회사가 동의하지 않은 어떠한 손해배상금 지급, 방어비용, 의무의 인수 또는 승인에 대하여도 책임을 지지 아니합니다.
다. A회사는 B회사, C회사, D회사, E회사에 자금을 지원했고, 검찰은 A회사가 위 회사들에 자금을 지원한 것이 경영진의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2007년 12월 11일 자금 지원 당시 대표이사였던 원고에 대해 공소를 제기함. 원고에 대한 총 약 1,683억 원 규모의 공소사실 중 1,447억 원에 대하여는 무죄가 확정되었고, 약 236억 원 부분에 대해서는 업무상 배임죄의 성립이 인정됨.
라. 원고는 위 형사소송의 방어를 위해 639,000,000원을 지출했고, A회사를 통해 피고에게 위 방어비용 지출을 근거로 보험금을 청구함.
마. 원심은 피보험자에 대한 배상청구 제기 사실에 관한 통지의무가 약관의 명시ㆍ설명의무의 대상임에도 피고가 A회사의 담당 직원에게 위 통지의무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위 약관 조항이 이 사건 보험계약에 유효하게 편입되지 않았다고 판단. 또한 원고는 자신에 대한 무죄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보험금 청구를 할 수 있으므로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 역시 그때부터 진행한다고 판단. 원고 청구 인용.
2. 대법원 판결의 요지
가. 배상청구 제기 사실에 관한 통지의무의 약관의 명시ㆍ설명의무 대상 여부
“이 사건 약관 제11조에는 ‘피보험자는 이 증권에 규정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부당행위에 기인하여 그들에게 제기된 모든 배상청구에 대하여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보험자에게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제12조에는 ‘피보험자는 보험자의 서면 동의 없이는 방어비용을 발생시키지 않아야 하고 보험자가 동의하지 않은 어떠한 방어비용에 대하여도 보험자는 책임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① 위 약관 제11조, 제12조는 상법 제657조, 제720조 제1항과 다르게 보험금 청구의 요건을 피보험자에게 불리하게 강화한 내용이므로 보험자가 구체적이고 상세한 명시ㆍ설명의무를 지는 보험계약의 중요한 내용이고, ② 그 내용이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별도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거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없으며, ③ 피고가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에게 위 약관 제11조, 제12조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ㆍ설명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위 약관 조항은 이 사건 보험계약에 유효하게 편입되지 않았으므로 피고가 원고의 위 약관 규정에 따른 의무 위반을 이유로 원고의 보험금 청구를 거절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명시ㆍ설명의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오인한 잘못이 없다.”
나. 이전행위 면책 특별약관(Prior Acts Exclusions) 관련 판단
“원심은, 원고가 무죄판결을 받은 부분에 대한 피해자 A회사의 손해액이 50억 원을 초과하고 이는 2002. 3. 20. 이전에 있었던 원고의 부당행위로 인한 것이어서 피고는 이전행위 면책 특별약관에 따라 보험금 지급책임이 없다’는 피고의 주장에 대하여, 이 사건 약관 중 이전행위 면책 특별약관에는 ‘관련 손해가 50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2002. 3. 20. 이전에 그 전체 또는 일부가 행해진 부당행위로 인하여 초래된 배상 청구에 대하여 피고가 보상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① 위 특별약관에서의 ‘손해’는 약관 제29조에서 정한 손해의 의미와 동일하게 ‘피보험개인이 지급하게 된 방어비용을 포함한 손해액’으로 해석하는 것이 약관 문언에 부합하고, ② 임원배상책임보험은 그 보상책임의 규모가 피해자의 손해가 아니라 피보험자인 임원이 지급하게 된 손해를 기준으로 정해지므로, 보상책임의 범위에 포함되는 시간적 범위도 보상책임과 직접 관련되는 피보험자의 손해를 기준으로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유로, 피고의 위 주장을 배척하였다.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특별약관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다. 소멸시효 관련 판단
“상법 제720조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방어비용’은 보험의 목적에 포함되지만, 보험자에게 보상책임이 없는 사고에 대하여는 피보험자가 지출한 방어비용을 보험자에게 청구할 수 없다(대법원 2002. 6. 28. 선고 2002다22106 판결 참조). 따라서 피보험자가 보험자에게 방어비용에 대한 보험금 청구권을 행사하려면 적어도 그 방어비용이 보험자에게 보상책임 있는 보험사고를 방어하기 위하여 지출된 비용인지 여부가 확정되어야 한다.”
“책임보험의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피보험자의 제3자에 대한 법률상의 손해배상책임이 상법 제723조 제1항에 규정되어 있는 변제, 승인, 화해 또는 재판으로 인하여 확정됨으로써 그 보험금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때부터 진행한다(대법원 2002. 9. 6. 선고 2002다30206 판결 참조). 그런데 유독 방어비용에 관한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보험금 청구권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방어비용을 지출한 때부터 진행된다고 보면, 방어비용에 해당하는 변호사 보수의 지출시기 등 우연한 사정에 의해 피보험자가 보험금 청구권의 일부를 행사할 수 없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결과는 방어비용을 보험목적에 포함시키고 그 선급청구권까지 인정하는 상법 제720조 제1항의 취지에 반한다.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면, 원고는 자신에 대한 무죄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방어비용에 대한 보험금 청구를 할 수 있으므로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 역시 그때부터 진행된다.”
3. 판결의 의의 및 한계
가. 임원배상책임보험에서 배상청구 제기 사실에 관한 통지의무의 효과 인정
임원배상책임보험은 배상청구기준(claims-made policy)을 택하고 있습니다. 배상청구기준을 택하고 있는 보험에서는 보험기간 중에 최초로 피보험자에게 청구된 사고를 기준으로 보상절차를 진행하게 됩니다. 어느 시점에 배상청구가 제기되었는지가 보상 여부를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가 되기 때문에, 피보험자에게 배상청구가 제기된 사실을 보험자에게 통지하는 것을 보험금 청구의 기본 전제 조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보험 약관 제11조도 배상청구 통지가 보험금 청구의 전제 조건이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임원배상책임보험에서 피보험자에게 배상청구 제기 사실에 관한 통지가 보험금 청구의 조건이 된다고 전제하고 통지의무에 관해서는 보험자가 약관의 명시ㆍ설명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보험자가 배상청구 제기 사실에 관한 약관의 명시ㆍ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을 유지하였는데, 임원배상책임보험에서 배상청구 제기 사실에 관한 통지의무는 일반 기업의 보험계약 체결 부서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므로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는 점 등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나. 이전 행위 면책약관의 손해의 의미 및 발생시기에 관한 약관 해석 명확화
임원배상책임보험계약 체결 시 이전 행위 면책 특별약관에 구체적인 시기 및 금액에 따라 면책 내용을 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면책약관에 규정된 ‘손해’의 의미가 방어비용을 포함하는 것인지, 그 발생시기를 방어비용 지급시점으로 보아야 하는지 실무에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① 이전 행위 면책 특별약관의 ‘손해’에 ‘피보험개인이 지급하게 된 방어비용을 포함한 손해액’도 포함되고, ② 보상책임을 결정하는 시간적 범위도 보상책임과 직접 관련되는 피보험자의 손해를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고 판시하여 이전 행위 면책약관의 ‘손해’의 의미 및 발생시기에 관한 약관의 해석을 분명히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