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서울행정법원 2025. 11. 13. 선고 2024구합67146 판결]
1. 사안의 개요
원고는 전국의 백화점과 면세점 등 온ㆍ오프라인 유통매장에서 판매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조직 대상으로 하여 설립된 산업별 노동조합입니다. 피고보조참가인(이하 ‘
참가인’)은 U공항 국내선 출발장 1개소와 U항만 매장 2개소에 지정면세점을 운영 중입니다.
참가인은 해외 유명 화장품 업체 등과 체결한 상품 매입거래계약에 따라 공급받은 화장품 등을 참가인 면세점에서 판매하는데, 실제 판매 영업업무는 해당 업체 또는 이들과 공급ㆍ판매대행계약을 맺은 업체(이하 통틀어 ‘
이 사건 입점업체’) 소속 판매사원들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원고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습니다.
원고는 2023. 1. 30.(1차), 2023. 2. 7.(2차), 2023. 3. 23.(3차), 2023. 6. 29.(4차), 2023. 7. 28.(5차), 2023. 8. 10.(6차) 참가인들을 상대로 ① 함께 쉬는 휴일ㆍ휴식, ② 고객응대노동자 보호매뉴얼 일원화 및 노사공동 제정ㆍ시행, ③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시설물 확충ㆍ보강 및 실질적 이용 보장이라는 3가지 의제(이하 각각 ‘
제1의제’, ‘
제2의제’, ‘
제3의제’라 하고, 통틀어 ‘
이 사건 각 의제’)가 포함된 단체교섭을 요구하였으나(이하 ‘
이 사건 단체교섭 요구’), 참가인은 이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 각 의제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1의제 : ① 참가인 면세점이 영업시간 변경 시 원고와 합의, ② 설, 추석 명절 당일 휴무일을 지정, ③ 월 1회 정기 휴점을 시행할 것
제2의제 : 고객응대근로자 보호매뉴얼 일원화 노사합의
제3의제 : 노동환경 개선(락카, 화장실, 휴게실, 창고, 의무실, 수유실 등 근로조건의 기본적 시설에 대한 이용 보장)
원고는 2023. 10. 10. 참가인이 이 사건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이 단체교섭 거부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신청을 하였으나, 제주지방노동위원회는 2023. 12. 21. 이를 기각하는 판정을 하였습니다(제주2023부노10). 중앙노동위원회도 2024. 3. 26. ‘참가인은 원고의 조합원들의 기본적 근로조건 등에 관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고에 대한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고의 재심신청을 기각하는 판정을 하였습니다(중앙2024부노18, 이하 ‘
이 사건 재심판정’).
2.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이 사건 재심판정을 취소하고, 참가인이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고, 이를 거부한 데에 합리적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 노동조합법 제81조제1항제3호의 ‘사용자’의 의미
- 헌법 제33조 제1항은 근로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규정하여 노동3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데, 이는 법률이 없더라도 헌법의 규정만으로 직접 법규범으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 권리이다(대법원 2020. 9. 3. 선고 2016두32992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 단체교섭권을 비롯한 노동3권의 헌법적 의미는 사용자와 대등한 세력을 이루어 근로조건의 형성ㆍ개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하여 근로자들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 향상을 기하기 위한 것이므로 사회적 보호기능을 하는 자유권 또는 사회권적 성격을 띤 자유권이라고 할 수 있고[헌법재판소 1998. 2. 27. 선고 94헌바13, 26, 95헌바44(병합)등 결정 참조], 이는 노동생활영역에서 사회국가원리를 구체화하여 실질적 평등과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 된다.
-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다는 의미에는 생존권적 성격도 가지고 있어 노동3권 가운데에서도 단체교섭권이 가장 중핵적 권리(대법원 1990. 5. 15. 선고 90도357 판결 참조)이다.
- 근로계약의 체결이라는 법률행위에 따라 단일한 사용자에 종속되어 노무제공을 하는 근로자를 전제로 한 전통적인 이면적 노무제공관계에서의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사용자’ 개념은 다면적 노무제공관계가 등장ㆍ확장되었다는 점에서도 헌법합치적으로 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나. 참가인들이 이 사건 각 의제에 관하여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
참가인들이 이 사건 각 의제와 연관된 원고 조합원 근로자들의 일부 근로조건에 관한 실질적 지배력을 직접 가지거나, 일부 근로조건에 관하여는 최소한 원사업주인 이 사건 입점업체와 중첩적으로 가진다고 봄이 타당하다.
1) 제1의제 - 영업시간, 영업일 등 관련
- 원고 조합원들이 이 사건 입점업체와 체결한 근로계약은 근로시간에 관하여 참가인 면세점의 근무시간에 준한다고 정하고 있다. 참가인 면세점의 영업일, 영업시간 지정ㆍ변경이 원고 조합원들의 근무일과 근무시간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 자체를 부인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 참가인 면세점의 영업일, 영업시간을 지정ㆍ변경하는 것은 원고 조합원들의 근무일, 근무시간 관련 근로조건에 적어도 일정한 수준의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이 사건 입점업체가 아니라 근로계약관계 외부에 있는 참가인이 전적으로 결정하고 있는 사항이므로, 결국 이 부분에 관하여는 이 사건 입점업체가 아닌 참가인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 참가인은, 참가인 면세점의 영업일, 영업시간은 한국공항공사와 체결한 임대차계약에 따라 정해진 것이고, 지정면세점이라는 공공적 성격을 고려할 때 영업일 등을 조정할 수 없으므로 참가인이 원고 조합원들의 근무일, 근무시간 관련 근로조건에 관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 그러나 (i) 위와 같은 영업일, 영업시간에 관한 내용은 참가인이 당사자로서 합의하여 체결한 계약상 내용일 뿐이므로 참가인에게 영업일과 영업시간에 관한 결정권한이 전혀 없다고 볼 수 없는 점, (ii) U국제공항의 최종 항공기 운항은 22:00인데 참가인은 21:30까지만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바, 위 영업일, 영업시간에 관한 내용에 관하여 참가인과 한국공항공사가 조율할 영역이 전혀 없다고 보이지 않는 점, (iii) 참가인 면세점이 지정면세점으로 일정한 공공성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지정면세점 영업일, 영업시간을 공항 운영시간과 동일하게 정하여야 할 법령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그와 같이 보아야 할 특별한 사정도 없는 점, (iv) 참가인은 면세점을 임의로 휴업할 경우 면세점 방문객이 가지는 조세특례제한법 제121조의13에 따른 면세물품 구매 기회를 부당하게 박탈하게 된다고 주장하나, 위 규정은 U여행객 면세점에 대한 간접세 등의 특례를 정한 것으로, 연중무휴 면세점 이용이 보장되어야 하는 면세점 방문객의 권리를 정하고 있다고 볼 근거는 없다.
2) 제2의제 - 고객응대근로자 보호매뉴얼 일원화 관련
- 제2의제는 근무환경, 복지후생, 안전과 보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근로자의 대우와 직접 관계된 것이고, 나아가 단체적 노사관계의 측면에서 참가인이 집단적으로 적용되는 매뉴얼을 마련하여 이를 개선할 수 있다.
- 판매사원들이 고객 응대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위험은 단순히 상품에 관한 불만 등의 유형으로만 한정되지 않고, 폭언, 폭행 등의 위협으로 물리적인 보호 조치가 필요한 경우나, 개별 매장과 관계된 불만이 아니어서 참가인 면세점 측의 직접적인 대응이 필요한 경우 등을 얼마든지 상정할 수 있다. 참가인이 원고 조합원들에 대한 구체적인 업무 지시권 행사가 전제되어야만 그러한 고객응대 보호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볼 근거는 없다.
- 참가인이 각 매장에서 실제 판매업무를 담당하는 원고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고객응대 커뮤니케이션교육 등 서비스 교육뿐 아니라 매장별 서비스 점검 결과를 게시하거나, 전반적인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하여 매장 이용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고객경험 진단 및 코칭 교육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 참가인은 원고 조합원들이 수행하는 고객응대 업무 체계에 관한 일정한 규율과 지침을 부과하고, 그 이행을 사실상 감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에 대응하여 원고 조합원들에게 적용되는 고객응대 보호 매뉴얼을 마련하여 이들의 근로환경을 개선할 근로조건에 관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위치에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3) 제3의제 - 노동환경 개선 관련
- 참가인이 영위하는 사업이 이루어지는 참가인 면세점은 참가인과는 근로계약관계에 따른 지휘ㆍ감독 하에 있지는 않지만, 참가인 면세점에서 실제 상품판매라는 노무를 제공하는 원고 조합원들에게는 근로 제공의 현장이자 삶의 터전이 되는 곳으로서 또 다른 기본권인 근로의 권리를 향유하는 기본적인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 참가인 면세점 ‘내’의 시설 관리에 관한 사항은 이 사건 입점업체가 아닌 참가인이 지배ㆍ결정하는 영역에 있다.
- 원고가 요구하는 제3의제는 단순한 간식, 비품 등의 제공을 넘어서 참가인 면세점 내 독립적인 휴게공간 설치 등을 포괄하는 노동환경 개선에 관한 것이므로 이는 참가인이 지배ㆍ결정하고 있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 한국공항공사가 전체 공항 시설의 관리자로서 기능하는 것과는 별개로, 참가인 면세점이 그 시설 일부를 임차하여 면세점 매장으로 활용하는 범위 내에서는 독립적인 휴게 공간 마련 등 시설 관리와 개선을 독자적으로 실행할 여지가 있고, 실제로 참가인 면세점은 설문조사를 거쳐 시설물 개선 조치를 취한 적도 있다.
다. 단체교섭 거부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여부
- 원고는 참가인에게 이 사건 입점업체와 동일한 근로조건에 관한 단체교섭을 중복적으로 요구한 것이 아니라, 다면적 노무제공관계를 통해 제공된 원고 조합원의 노동력에 기초하여 사업을 영위하는 참가인이 실질적 지배력을 가지는 근로조건에 한하여 단체교섭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노동조합법에 배치된다거나, 이로 인하여 하나의 근로조건에 관한 수개의 단체협약 사이의 충돌이 발생하여 노사관계 안정성을 해한다고 볼 수는 없다.
- 참가인은 이미 참가인 소속 근로자로 구성된 Q 노동조합과 사이에 단체협약을 체결하였으므로 원고는 단체협약 유효기간 만료일 3개월 전부터 교섭요구가 가능하고, 원고는 2021년은 물론 2024년에도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Q 노동조합과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친 바 없는 원고가 위 단체협약의 유효기간 만료일 3개월 전부터 교섭요구가 가능하다고 보기 어렵고, 참가인이 교섭요구 사실의 공고 등 교섭창구 단일화를 위한 절차를 진행하였다고 볼 증거가 없으며, 오히려 참가인은 그동안 원고를 참가인의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원고가 참가인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한 절차에 어떠한 위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3. 의의 및 시사점
개정 노동조합법 시행일인 2026. 3. 10. 이전이라도, 근로조건에 관한 실질적 지배력 있는 제3자가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해당하여 단체교섭의무를 질 수 있다고 본 5번째 판결입니다.
종래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판결들은 대규모 제조업 사내하도급이나 택배업 등 이른바 ‘갑을관계’가 형성된 사안에 관한 것입니다. 반면, 대상판결은 ‘노무제공관계에서의 우월적 지위 유무가 실질적 지배력 판단에 결정적 기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면서, ‘참가인이 이 사건 각 의제와 연관된 원고 조합원들의 일부 근로조건에 관한 실질적 지배력을 직접 가지거나, 일부 근로조건에 관하여는 최소한 원사업주인 이 사건 입점업체와 중첩적으로 가진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보아 ‘참가인이 이 사건 각 의제에 관하여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서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대상판결은 실질적 지배력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반드시 원청의 우월적 지위를 요하지 않는다는 점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고, 향후 상급심 판결을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