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채용과정 실무상 지원자에게 합격 통보를 한 이후 불가피하게 합격을 취소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합격자 통보 이후 촉박한 일정으로 인해 지원자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구두로 합격 취소 통보를 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그러나 최근 취업난 속에서 어렵게 합격한 회사의 합격자 지위를 유지하고자 소송을 통해 권리구제를 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2. 합격 취소와 부당해고 문제
가. 관련 법리
통설 및 판례는 합격 통보(채용내정 통지)로 근로계약이 체결됐다고 보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17조에 의거해 근로계약서를 정식으로 체결한 것은 아니지만, 회사가 합격 통보를 하는 시점에 근로계약이 성립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다만, 합격 통보 단계에서는 근로자의 구체적인 근로제공이 없으므로 합격 취소 내지 해고 사유는 통상적인 해고사유와는 다르게 볼 수밖에 없다. 판례는 채용내정 시부터 정식발령일까지 사이에는 사용자에게 근로계약의 해약권이 유보돼 있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00.11.28. 선고 2000다51476 판결 등 참조).
요컨대, 합격 통보 시점에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합격을 취소할 때에는 근로기준법에 따른 해고제한규정을 적용받는다. 사용자가 유보된 해약권을 행사해 합격취소를 하기 위해서는 합격의 경위, 근로자가 담당할 업무의 내용과 성질 등에 비춰 볼 때 채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볼만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해야 하며, 사회통념상 상당한 이유가 인정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부당해고가 문제 될 수 있다.
나. 정당한 해고사유 내지 유보된 해약권 행사 사례의 구체적 검토
(1) 근로조건이 단순 변경된 경우
연봉 등 근로조건 협의 과정에서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거나, 근로조건 변동으로 인해 채용을 취소한 경우 해고 내지 합격취소의 정당한 이유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하급심 판결들이 확인된다.
서울행정법원은 회사가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합격통보를 한 후, 입사 전 근로조건을 일방적으로 변경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지원자에게 합격취소 통보를 한 사안에 대해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서울행정법원 2020.5.8. 선고 2019구합64167 판결). 이 판결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합격자통보 시점에 근로계약이 체결됐다고 봤다. 또한, 회사가 변경된 근로조건을 제시한 것도 일방적이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일방적으로 채용을 취소하며 해고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위와 유사하게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채용을 진행했던 사례에 대해 합격취소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은 사건은 사용자의 합격통보 사실 자체가 부정된 경우였다(서울고등법원 2017.6.16. 선고 2016나2076948 판결).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지원자가 요구하는 연봉 수준이 회사에 전달되기는 했으나, 구체적인 사정에 비추어 볼 때 회사가 지원자에게 최종 합격통보를 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채용내정계약 관계가 성립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2) 지원자가 채용에 적합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경우
지원자가 채용결격자에 해당하거나, 지원 자격을 갖추지 못했거나, 채용 여부 판단의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경력 사항을 허위기재했거나, 채용 비리를 통해 채용됐음이 밝혀진 경우 등 지원자가 채용에 적합한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 유보된 해약권 행사 내지 해고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한 하급심 판결들이 확인된다.
대전지방법원은 합격통보 후 지원자가 경력기간 증명을 위한 서류를 제출하지 못함으로써 허위기재 문제로 9일 만에 합격이 취소된 사례에서, 사용자가 지원자에 대한 합격을 취소한 것이 부당해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합격통보로 해약권을 유보한 근로계약이 성립됐으나, 회사가 허위기재 사실을 알았더라면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한, 합격을 취소하고 본채용을 거부한 것이 사회통념상 정당한 인사권 범위를 일탈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봤다(대전지방법원 2016.10.20. 선고 2016구합101234 판결). 유사한 취지의 판결로, 채용에 요구되는 선행 경력이 사실이 아니라는 의심이 있었던 사례에서 제1심판결은 합격취소 통보가 부당해고라고 판단했으나, 항소심은 결론을 바꿔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서울고등법원 2020.4.22. 선고 2019누58034 판결). 참고 사례로, 법원은 지원자가 채용비리를 통해 채용된 것이 추후 밝혀져 사용자가 직권면직한 사례에서 직권면직은 근로기준법상 해고에 해당하나, 해고사유가 존재하며 해고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서울고등법원 2020.5.7. 선고 2019누60358 판결).
(3) 근로계약의 중요한 부분을 착오한 경우
지원자 합격취소 사유가 취업규칙상 직권면직 사유, 징계(해고) 사유 등으로 명시돼 있는 회사도 있지만, 이와 같은 취업규칙상 규정이 없을 경우, 사용자가 중요한 부분의 착오(민법 제109조)를 이유로 합격을 취소할 수 있을지 문제 된다.
대전고등법원은 회사의 블라인드 채용방식으로 인해 지원자가 응시자격 제한자에 해당하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게 돼 합격취소 통보를 한 사례에서 ①응시자격 제한자가 허위 사실을 기재한 입사지원서를 제출한 행위가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다른 지원자들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높은 점, ②허위기재 행위는 공개채용제도 자체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인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서, 회사는 해당 지원자가 응시자격 제한자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미리 파악했다면 지원자에게 합격통보를 하는 등 근로자로 고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이러한 회사의 착오는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 부분에 관한 것이라고 봤다. 따라서 법원은 회사가 지원자와의 근로계약을 중요한 부분의 착오를 이유로 취소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지원자의 근로자지위 확인 청구를 기각했다(대전고등법원 2019.9.5. 선고 2019나11546 판결).
이 판결을 참고하면, 회사는 근로계약의 중요한 부분에 착오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해약권을 유보한 근로계약 해소의 한 방법으로 민법 제109조에 의거한 착오 취소를 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는 사용자가 민법에 따른 취소권을 행사한다는 의사표시를 지원자에게 서면 등으로 명확히 고지할 필요가 있다.
3. 기타 회사가 대비해야 할 사항
가. 지원자의 임시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 신청
지원자가 본안 소송을 제기함과 동시에, 법원에 임시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을 신청하는 경우가 있다(민사집행법 제300조 제2항). 최초의 합격통보로 지원자와 회사 사이에는 근로계약이 성립했으므로, 지원자에게 합격자 지위 내지 근로자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취지의 임시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을 신청하는 것이다.
위 가처분은 사용자에게 본안판결에서 명하는 것과 같은 내용의 권리관계를 잠정적으로 형성하는 만족적 가처분이어서, 그 피보전권리와 보전의 필요성에 대한 고도의 소명이 요구된다. 따라서 회사는 합격이 취소된 경위와 그 타당성을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피보전권리의 부존재를 강조함과 동시에, 보전의 필요성이 흠결됐다는 점을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관련 결정으로,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은 본안판결 전에 지원자에게 당장 신입사원 지위를 잠정적으로 형성시켜 줘야 할 정도로, 금전배상만으로는 회복하기 어려운 현저한 손해나 급박한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채권자인 지원자의 신청을 기각했다(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2018.11.21.자 2018카합5077 결정).
나. 지원자의 손해배상청구
지원자는 회사가 근로계약 체결에 대한 신뢰를 부여했음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채용을 취소한 것은 근로자의 기대이익을 침해하는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며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도 있다. 또 회사를 상대로 피고용자인 인사업무담당자가 그 사무집행에 관해 제3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사용자책임을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민법 제756조).
대법원은 채용내정 취소 시 근로자가 최종 합격자 통지와 계속된 발령 약속을 신뢰해 직원으로 채용되기를 기대하면서 다른 취직 기회를 포기함으로써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회사에 있다고 판단했다(대법원 1993.9.10. 선고 92다42897 판결). 과거 하급심 판결 중에서는 근로자의 과실 비율을 50%로 보고, 임금액의 50%에 대해 책임을 인정한 사례도 있다(서울지방법원 2003.8.27. 선고 2002나40400 판결).
그러나 지원자들이 회사의 불법행위 내지 사용자책임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회사에서 지원자의 출근을 일방적으로 거부한 사실은 인정했으나 입사 절차 지연에 대한 관련자의 고의-과실을 부정해 불법행위 책임을 부정한 사례(서울남부지방법원 2018.1.26. 선고 2017가합107484 판결), 세월호 참사라는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해 지원자에게 즉시 임용될 것이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발생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최종 임용을 하지 않은 데에도 상당한 이유가 있어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사례가 확인된다(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2015.8.21. 선고 2015가합101565 판결). 또 다른 사례로 헤드헌팅업체를 통해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채용에 관한 의사가 원활하게 전달되지 않은 문제를 들어 지원자가 회사 및 헤드헌팅업체를 상대로 불법행위책임-사용자책임을 물었으나 이 역시 인정되지 않았다(서울고등법원 2017.6.16. 선고 2016나2076948 판결).
4. 마치며
신규채용자들의 신체검사, 교육과정 일정 등 합격자 발표 이후의 일정이 촉박한 나머지 면밀한 법적 검토 없이 실무자 선에서 문자-이메일-전화 등으로 합격취소 통보를 하는 사례가 있다. 그러나 법적 성격을 미리 검토하지 않은 합격취소는 추후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따라서 회사는 ①채용과정의 어느 단계에서 합격취소 사유가 확인됐는지, ②합격 취소 사유가 취업규칙상 해고사유-직권면직사유, 유보된 해약권의 행사 사유, 민법상 취소사유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 ③합격취소의 법적 성질은 무엇인지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문서로 지원자에게 합격취소 내지 해고-면직 사실을 통보할 필요가 있다. 이때, 합격취소의 원인을 면밀히 살펴 취소(해고) 사유가 중복되는 경우 각 사유별로 별개의 문서로 회사의 조치를 통보하는 것이 보다 리스크를 줄이는 길이다.
※ 본 칼럼은 월간노동법률 2020년 6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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