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며
최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
노조법’)의 개정으로 제2조 제2호의 ‘사용자’ 개념이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ㆍ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되었고, 개정 법률은 내년 3월 10일부터 시행될 예정입니다. 그런데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노조법 제29조의3 제2항이 규정하고 있는 ‘교섭단위 분리’ 제도와 긴장 관계에 있습니다. 교섭단위 분리는 근로자 간 이해관계의 현저한 차이를 이유로 하나의 교섭단위를 분리하여 교섭하도록 허용하는 제도인데, 사용자 범위가 확대될수록 교섭단위의 설정 기준과 분리 판단과 관련하여 새로운 쟁점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현재 입법예고 절차가 진행 중인 노동조합법 시행령 개정안은 제14조의11 제3항을 신설하여 교섭단위 분리ㆍ통합의 결정기준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노조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교섭단위 분리를 둘러싼 갈등도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바, 교섭단위 분리에 관한 최근 판결례들의 동향을 정리하여 살펴보겠습니다.
Ⅱ. 노조법 제29조의3 제2항 ‘교섭단위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의 의미
대법원은 ‘교섭단위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란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별도로 분리된 교섭단위에 의해 단체교섭을 진행하는 것을 정당화할 만한 (i)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ii) 고용형태, (iii) 교섭 관행 등의 사정이 있고, 이로 인해 (iv) 교섭대표노동조합을 통해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는 것이 오히려 근로조건의 통일적 형성을 통해 안정적인 교섭체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를 의미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5두39361 판결, 대법원 2022. 12. 16. 선고 2022두53631 판결 등 참조).
1)
최근 하급심 판결례들은 위 대법원 법리를 바탕으로, 직군 간 (i) 근로조건의 현격한 차이, (ii) 고용형태의 본질적 차이, (iii) 독립된 교섭 관행, (iv)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 유지보다 분리의 이익이 더 큰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심리하여 분리 필요성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Ⅲ. 교섭단위 분리를 인정한 사례
교섭단위 분리의 필요성을 인정한 사례들에서는 주로 채용방식ㆍ절차에서부터 적용되는 취업규칙 및 단체협약에 차이가 있고, 근로자들 간 수행하는 업무의 본질이 다르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되었습니다. 또한 분리의 대상이 되는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근로조건에 관하여 별도 교섭이 이루어진 적이 있거나, 교섭대표 노동조합에 분리의 대상이 되는 근로자 가입이 제한되거나 조합원으로 가입한 근로자 수가 현저히 적다는 점이 분리의 필요성을 긍정하는 근거로 제시되었습니다.
1. 서울행정법원 2024. 11. 1 선고 2023구합82902 판결2)
건설업을 영위하는 법인에서 근무하는 ‘사무ㆍ관리직 근로자’와 ‘현장에서 현업에 종사하는 일용직 근로자’ 간 교섭단위 분리의 필요성이 있는지가 문제되었습니다. 사용자는 일용직 근로자에 대한 교섭단위 필요성이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아래 표와 같이 현격한 근로조건과 고용형태상 차이가 존재한다고 보아, 교섭단위를 분리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과거 현장 일용직 근로자들이 별도의 단체교섭을 진행한 사실이 있었던 점, 교섭대표노동조합이 현장 일용직 근로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어려운 구조임이 고려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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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ㆍ관리직 근로자 |
현장에서 현업에 종사하는 일용직 근로자 |
| 근로조건 차이 |
급여산정 방식 |
‘연봉근로계약’에 따른 월급제를 적용 |
‘현장 근무일수 × 시중 노임단가(시세)’로 급여가 산정 |
| 직책 및 직급 |
‘사원, 대리, 과장’ 등 직책이 부여됨 |
별도의 직책이나 직급 없음 |
| 계약해지 사유 |
일반 취업규칙 적용 |
‘안전수칙 불이행’, ‘음주 적발’ 등 현장 노무 제공을 전제로 한 별도의 계약해지사유 적용 |
| 고용형태 차이 |
채용절차 |
‘대졸 이상’, ‘특정 자격증 소지’ 등 자격을 요구 |
별도의 학력이나 자격 요건 없이 채용 |
| 고용형태 |
정규직 |
일용직 |
| 업무내용 |
사무직 |
고전압 전기설비를 다루는 육체노동 |
| 교섭관행 |
과거 현장 일용직 근로자들이 별도의 단체교섭을 진행한 사실이 있음 |
| 분리의 이익 |
교섭대표노동조합의 조합원 대부분이 사무ㆍ관리직으로 구성되어 현장 일용직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하기 어려운 구조 |
2. 서울고등법원 2019. 7. 12. 선고 2018누67604 판결3)
법원은 국립대학법인 소속 법인직원과 자체직원 사이에 아래 표와 같은 현격한 근로조건과 고용형태상 차이가 존재한다고 보아, 교섭단위를 분리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법인직원과 자체직원의 근무시간이 동일하더라도, 근로시간은 사실상 근로기준법에 따라 결정되므로 그 동일성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교섭대표 노동조합이 최근까지 자체직원의 가입을 허용하지 않았고, 규약 개정 후에도 자체직원의 구성 비율이 미미하여 자체직원의 입장을 충실히 대표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리 필요성의 근거로 제시하였습니다. 이는 사실상 교섭대표노동조합을 통해 자체직원의 의사를 피력하기 어려운 구조로 판단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또한 원고는 과거 교섭대표 노동조합과 자체직원에 대한 임금협약을 체결하면서 실무교섭은 다른 노동조합과 진행했으므로, 실질적으로 분리교섭의 관행이 존재하였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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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직원 |
자체직원 |
| 근로조건 차이 |
적용되는 규정 |
법인 인사규정, 법인직원 임금협약, 단체협약 적용 |
각 기관별 인사규정, 취업규칙, 자체직원 임금협약 적용
단체협약의 적용 받지 않음 |
| 직급 및 승진 |
1급~8급의 직급 존재
승진제도 적용 |
승진제도 없음 |
| 급여체계 |
1~3급: 연봉제
4급~8급: 호봉제 |
통일적으로 규율되지 않고, 연봉제와 호봉제 병존 |
| 평균급여 |
연봉 5,500만 원을 상회 |
연봉 3,000만 원에 미치지 못함 |
| 복지 |
법인의 각종 복지혜택 대상 |
법인직원과 동일한 복지혜택 적용되지 않으며, 자체직원이 소속된 각 기관에 따라 혜택이 상이 |
| 고용형태 차이 |
채용주체 |
법인이 채용, 공채로 선발 |
법인 소속 기관 자체 예산으로 채용 |
| 고용형태 |
정규직 |
정규직, 무기계약직,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
| 교섭관행 |
과거 교섭대표 노조가 아닌 다른 노조와 자체직원에 대한 임금협약 체결 |
| 분리의 이익 |
최근까지 자체직원의 가입 허용되지 않음
규약 개정 후에도 자체직원의 구성 비율이 미미 |
Ⅳ. 교섭단위 분리를 불인정한 사례
한편, 법원은 근로조건이나 고용형태에 다소간 차이가 있더라도 ‘실질적’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교섭창구 단일화를 통해 수적 열세인 교섭단위 분리 대상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통일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교섭단위 분리 대상 근로자들인 조합원 수가 교섭대표 노동조합 전체 조합원 수에 비하여 월등히 적어 그 의사가 현실적으로 반영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i) 노조법에서 교섭대표 노동조합의 공정대표의무를 부여하고 있고, (ii) 교섭단위를 분리했을 경우의 부작용이 단일화했을 경우의 부작용보다 크다며 교섭단위 분리의 필요성을 부정하였습니다.
1. 대법원 2022. 12. 16. 선고 2022두53631 판결4)
법원은 교육공무직원인 ‘호봉제회계직(10명)’들이 다른 ‘비호봉제교육공무직원(1,558명)’들과 교섭단위가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건에서, 교섭단위 분리의 필요성을 부정하였습니다.
먼저 양자 사이에
외형상 임금체계와 그 세부항목이 다른 것으로 보이나, 결과적으로 양자 사이에 비슷한 수준의 임금이 형성되었으므로 임금 수준에 실질적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호봉제회계직 근로자가 담당하는 업무는 비호봉제 근로자와
근로조건의 핵심에 해당하는 업무의 내용이 거의 동일하고, 호봉제회계직 근로자를 비롯한 원고 지역 내 교육공무직원은 모두 근무시간, 근무형태, 퇴직금, 휴일ㆍ휴직, 승진 여부, 정년ㆍ정원관리 등
나머지 근로조건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교섭단위 분리의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될 정도로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법원은 호봉제회계직 근로자의 수, 호봉제회계직과 비호봉제교육공무직원 양자 간 업무의 동질성에 비추어 근로조건을 통일적으로 형성할 필요성이 오히려 커 보이고, 이는 안정적인 교섭체계를 구축하려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보았습니다. 호봉제회계직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 교육공무직원 숫자 중 약 1%에도 미치지 못하였고, 업무의 동질성으로 인해 호봉제회계직 근로자의 업무조건에 대한 결정이 비호봉제 근로자의 업무조건에 대한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점을 고려하여, 교섭단위를 분리할 예외적인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2. 서울고등법원 2024. 2. 14. 선고 2022누65131 판결5)
법원은 병원시설을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업무지원직’이 의료업무에 직ㆍ간접적으로 종사하는 병원 ‘일반직’과 교섭단위가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안에서, 교섭단위 분리의 필요성을 부정하였습니다.
당초 업무지원직은 기간제 근로자로 근무하다가 정규직으로 채용되기 시작하였는데, 정규직 전환 이후에도 업무지원직 근로자들은 일반직 근로자들에게 적용되는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적용을 받지 않았고, 승진제도나 직급체계를 따르지 않으며, 임금항목 구성 및 복지에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법원은 (i) 이러한 근로조건의 차이가 대체로 업무지원직 근로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전부터 이미 존재하였던 것이고, 정규직 전환 합의에도 반영되어 있는 사항이므로,
업무지원직 근로자들은 스스로 일반직과 사이의 근로조건상 차이를 유지한 상태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을 용인하였다고 볼 수 있는 점, (ii)
업무지원직이 정규직 전환 이후 새롭게 체결될 단체협약의 적용 대상에서까지 배제되는 것은 아닌 점, 취업규칙의 일부 규정은 업무지원직에도 적용되는 점, (iii) 이외 세부 지급조건에는 차이가 있으나 근로조건에 관한 다수의 제도가 유사하게 운영되고 있는 점 등을 이유로,
“양자를 별도의 교섭단위로 분리하는 것이 불가피하여 객관적으로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양자의 근로조건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교섭창구 단일화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에 예상되는 부작용에 관하여 검토하면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는 경우 오히려 업무지원직에게 이점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일반직에 비하여 업무지원직 등의 수적 열세가 현저하다고 하더라도, (i) 하나의 사업장에는 하나의 교섭단위와 하나의 교섭창구가 존재하는 것이 원칙이고, 교섭단위의 분리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허용되며, (ii) 노조법에 따라 교섭대표 노동조합의 공정대표의무가 부여되고, (iii) 공정대표의무를 위반할 우려가 있다고 볼만한 구체적 근거가 없다는 점도 교섭단위 분리 필요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제시하였습니다.
Ⅴ. 마치며
이상 살펴본 판결례를 종합하면, 법원은 임금체계가 근본적으로 다르거나, 채용부터 인사관리까지 명확히 분리되어 운영되는 경우에 예외적으로 교섭단위의 분리 필요성을 긍정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런 반면, 근로조건에 일부 차이가 있더라도 본질적인 부분에서 동일한 규정의 적용을 받고 전체적인 임금 수준 및 근로조건이 비슷하여 근로조건 통일의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교섭단위 분리 시 오히려 교섭 효율성 저하 등 부작용이 우려되는 경우 등에는 교섭단위 분리 필요성을 부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노조법 개정안의 도입으로 교섭단위를 둘러싼 갈등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원청 사용자와 하청노조 간 교섭과 관련하여, 우선 원청노조와 하청노조 간 교섭단위 분리가 문제될 수 있고, 이어서 ① 개별 하청별 분리, ② 직무 등 유사 하청별 분리, ③ 전체 하청노조로 분리(고용노동부에서 제시한 교섭단위 분리 예시) 등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교섭단위를 분리해야 하는지가 재차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더하여 하청회사 간 업종ㆍ직종ㆍ직군ㆍ직무 등에 따른 근로조건의 차이가 부각되면서 다양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체적인 과정에서 특정 노동조합이 교섭단위 분리를 주장하거나, 사용자 측이 교섭단위 분리의 필요성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다양한 변수가 예상되는 만큼, 사전에 집단별 근로조건 결정 구조와 예상되는 교섭 안건, 교섭 가능 범위를 검토ㆍ정리하고, 교섭 과정에서는 공통 의제와 집단별 개별 의제를 명확히 구분하여 단계적으로 논의하는 절차를 설계함으로써 교섭의 질서를 확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