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1년 7ㆍ8월호 학연저널에 실린 법무법인 지평의 김성수 변호사의 기사입니다. - 의대 재학중 교내시위로 제적 서울대 의예과시절 “기독학생회” 동아리에서 기독인의 시대적 사명에 대해 고민했다는 그는 서울의대 의학과 2학년 재학중이던 1985년 “파쇼헌법 철폐” 시위 주도로 구속됐다. 3개월의 수감생활 끝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석방됐지만 이미 학교에서는 무기정학을 받은 상태였다. 86년 복학할 수 있었지만, 본격적인 노동운동에 다시 뛰어들었다. “누군가 희생이 되더라도 이 사회를 변혁시켜보자는 젊은 혈기가 있었죠. 노동현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사회의 제일 중요한 생산을 담당했고, 군대 다음으로 조직적인 집단이 공장 근로자 집단이었습니다. 그런 조직화된 집단의 의식이 바뀌면 사회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공장에 취업했던 거죠.” 그 후 신원이 밝혀져 해고되기까지 2년여 간 공장에 취업, 노조를 설립하고 노동자의 권익보호 활동을 펴기도 했다. - 운동권 출신 변호사 89년부터는 기독학생회 선배들이 설립한 부평 평화의원에서 산업재해, 직업병 상담실장으로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활동을 했다. 이 일을 하면서 산업재해법, 노동조합법 등 여러 법률공부를 했으며 91년에 공인노무사 시험, 95년엔 사법시험에 합격해 본격적인 법률전문가의 길을 걷게됐다. 사법연수원을 졸업하자마자 서울의대 은사들의 도움으로 의대3학년에 복학, 지난해 1월 의사국가고시를 통과해 의사와 변호사 면허를 동시에 취득하여 최초의 의사출신 변호사가 되었다. - 방송대 법학과 수석 졸업 그는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전, 법률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방송대학 법학과에 편입해 낮에는 사법시험 준비를 밤에는 방송대학 공부를 이어갔다. 하루종일 법공부에 매달린 그는 94년 법학과 수석으로 졸업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방송대학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부담없는 학비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학교입니다. 앞으로 수요자들의 요구에 맞게 교육방식과 매체를 개선한다면 훨씬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됩니다. 저는 내년쯤 전산계산학과에 다시 편입해 공부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 벤처전문 로펌 “지평”의 변호사로 김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시절 알게된 동료 변호사의 권유로 올 3월 한국 법조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지평”에 합류하게 됐다. 국내 최초의 벤처전문 로펌 “지평”에서 의료, 산재, 생명공학 등 의학분야 사건에서 전문성을 살리고 있다. 또 자신의 사회운동경험과 관련된 다양한 사건에서 승소했다. 앞으로 그는 최근 각광받는 바이오벤처에도 관심을 쏟으면서 벤처창업과 증자, 법률자문 등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갈 생각이다. “인생에서 기회는 세 번 찾아온다고 합니다. 한 번 기회를 놓쳤다고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 노력한다면 더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을 저는 체험으로 알게 됐습니다.” 김 변호사는 현재 평화의료생활 협동조합에서 병·의원 운영에 관한 조언을 하는 법률고문변호사로 봉사하고 있다. 앞으로 그는 어려운 이들을 도와 정당한 권리를 많이 찾아주는 변호사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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