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하던 한 유저가 게임 개발사인 엔씨소프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리니지의 최근 시리즈인 “기란”에서 기란성을 차지한 후 다른 유저의 공성전으로 성을 빼앗겼는데, 이 공성전이 공정하지 못했다며 기란성의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은 사람이라면 역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이 사건은 게임상에만 존재하는, 즉 사이버 세계의 성(城) 반환 문제를 놓고 실물 세계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벤처기업과 관련된 소송은 관련 업계의 사정과, 상품 및 서비스의 내용에 대한 정밀한 이해가 없고서는 법률적 자문이나 소송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물론 이 사건은 특별한 예에 속한다. 그러나 벤처기업과 관련한 일을 다룰 때는 기술이나 기타 특성에 대한 전문성이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벤처기업의 법률 자문을 전담하는 로펌들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대부분 대기업이나 일반 기업들이 기업 내 법무팀이나 사내 변호사, 법무 담당자 등을 두고 있는데 반해, 규모가 작은 벤처기업들은 이런 조직은 고사하고 사소한 법률 문제도 처리할 수 없는 곳이 많은 형편이다. 소장파 변호사들, “부티크 로펌” 설립 붐 “벤처전문 로펌”이라는 이름을 내건 로펌이 생겨난 것은 지난해 봄부터였다. 지평, ibc를 필두로 주로 30~40대 젊은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한 중소 규모 로펌들이 속속 테헤란밸리에 문을 열었다. 법무법인 지평(강금실 대표변호사)은 양영태, 임성택 변호사 등 법무법인 세종 출신의 기업법무 전문 변호사들과 변리사 등 386세대 14명이 모여 “기업 설립부터 나스닥 상장까지” 책임질 것을 내걸고 지난해 4월 문을 열었다. 벤처처럼 거의 매일 야근을 하며 일을 해온 지평은 현재 안철수연구소, 엔씨소프트, 인터파크, 나모인터랙티브 등 고문 계약을 맺은 벤처기업만 1백개가 엄을 정도의 대표적인 벤처 전문 로펌으로 성장했다. 변리사와 회계사, 중국·미국 등 외국 변호사를 영입해 지금은 변호사 18명 등 총 25명의 전문가가 일하고 있다. 역시 지난해 김&장 법무법인 출신의 M&A전문 변호사들과 미국 변호사, 회계사 등 5명이 모여 설립한 ibc법률사무소(최영익 대표변호사)는 초기부터 일반 기업법무는 물론 증권 관련 업무, 해외업체와의 계약 등을 모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벤처 전문 로펌으로 인정받아 왔다. 지난해 시네마서비스의 2천만달러 외자 유치를 비롯 로커스-코아텍 M&A, 새롬기술-한솔월드폰 M&A 등 많은 M&A와 투자 유치, CB 발행자문 등을 수행한 데서도 알 수 있다. 현재 11명의 전문가가 라이코스코리아, 루넷, 하이홈닷컴, 네스테크 등 50여개의 자문기업 업무와 프로젝트 상담을 맡고 있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I&S비즈니스컨설팅 그룸(조영길 대표변호사)은 변호사 8명과 회계사, 법무사, 변리사 등 12명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포진, 벤처기업을 위한 컨설팅 위주의 종합적 자문 업무를 하고 있다. 12년간 구로공단에서 법률 서비스를 해온 이원영 변호사와 젊은 사법연수원 출신 변호사 6명이 모여 문을 연 법무법인 이산 역시 벤처 전문 로펌이다. 이산은 “변호사 직접 상담 원칙” 등으로 권위적 태도 대신 서비스 정신을 강조하고 있으며, 여러 회계사무소 및 특허법률사무소와 제휴를 맺고 벤처에 필요한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벤처기업과 특허, 회사법을 전문으로 하는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를 확충하고 기업 법률고문 제도를 폭넓게 시행중인 법무법인 오세오 등 중소형 부티크 로펌들이 적지 않다. 신속성·전문성·합리적 비용 돋보여 한편, 법무법인 세종, 김&장 등 대형 로펌들은 물론 법무법인 한결, 법무법인 세창, 법무법인 정현 등 중견 로펌들도 벤처 전담팀을 만들거나 벤처기업 관련 분야로의 특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벤처 전문 부티크 로펌들은 이들 중견 로펌과 차별화된 나름의 경쟁력을 강조한다. 벤처 전문 로펌들이 내세우는 경쟁력은 네가지 정도. 우선 신속성이다. 조직이 작고 빠른 의사 결정이 생명인 벤처는 법률적 자문도 빨리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대형 로펌들은 서류작업 위주로 일을 처리하는 데다 워낙 일이 많아 한 건에 대한 자문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게다가 일반기업 고객사가 많기 때문에 벤처기업은 아무래도 후순위로 밀리게 마련. 벤처 전문 로펌들은 이런 틈새를 노려 신속한 서비스로 벤처 가운데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ibc의 문종국 변호사는 “벤처기업은 짧은 전화상담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 자주 생기는 편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서류작업 한번보다 언제든 급할 때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전화상담 열 번이 필요한 것이 벤처”라고 설명한다. 초기에는 자녀들과 놀이공원에 갔다가도 고객사의 연락을 받고 바로 회의에 참석한 일이 있을 정도로 벤처 고객이 필요로 하는 속도의 서비스를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다. 또 다른 경쟁력은 전문성이다. 위의 예와 같이 벤처는 기존에 볼 수 없던 비즈니스 모델이 많고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 분야에 관한 깊은 이해가 요구된다. 최근엔 인터넷이나 바이오, 산업재산권 등과 관련된 업무 경험이 많은 전문 변호사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추세다. 지평의 임성택 변호사는 “새로운 업무가 생길 때 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즐거워하면서 공부하는 변호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와 동시에 “기업법무”에 대한 전문성도 갖춰야 한다. 일반 민형사 소송 업무를 위주로 해온 변호사들보다 대형 로펌에서 기업법무를 해오던 변호사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세번째는 원스톱 서비스를 지향한다는 것. 일반 기업법무는 물론 비즈니스 모델의 적법성 판단, 특허 출원 및 분쟁 처리, 투자 유치, M&A, 해외진출 상담 등 벤처기업과 관련한 업무 영역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때문에 벤처 전문 로펌들은 변호사뿐 아니라 변리사, 회계사 등을 영입, 일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안에 따라서는 워킹 그룹을 이뤄 일을 처리하고 있다. 네 번째 경쟁력은 합리적인 비용에 있다. 아직도 많은 벤처기업들이 문제가 터지거나 사안이 크다고 생각될 때에야 비로서 로펌의 문을 두드리는 데는 로펌의 문턱과 보수가 높은 것도 한 요인이 된다. 벤처 전문 로펌들은 고문기업제를 통해 월 50만원 ∼ 2백만원 정도의 일정액을 내고 여러 차례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특정 프로젝트가 발생할 경우 고문기업에는 저렴한 비용으로 일을 처리해주고 있다. 평소 법률적 문제에 소홀하다가 소송으로 일이 번질 경우 비용은 물론 각종 손해가 훨씬 커진다. 벤처 전문 로펌들이 “예방적 법률 서비스”를 강조하는 이유다. 한 변호사는 “우호적 계약이라도 상호 형편이 어려워지면 분쟁 발생의 소지가 있다”면서 계약서류 검토 등은 1∼2백만원선에 불과하므로 향후 몇 억원씩 오가는 계약 등에 있어서는 “보험 든다는 생각으로” 꼭 전문가의 자문을 받을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벤처업계의 부침에 따라 이들 로펌의 주된 활동에도 변화가 생겼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창업 상담이나 특허 관련 상담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벤처 거품이 걷히면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기업간, 혹은 투자자와 경영자간 분쟁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지금, 업체들의 관심은 M&A와 외자 유치, 해외진출로 모아지고 있다. 때문에 업계는 여전히 어렵지만 벤처 전문 로펌들의 업무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특히 국내 자본이 말라붙은 상황에서 해외 관련 업무를 수행해 줄 수 있는 로펌들은 한껏 주가를 올리고 있는 상태. 때문에 로펌들은 해외사정에 밝은 외국 변호사를 적극 영입하고 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커진 벤처 전문 로펌들은 사안별 상담에서 법률 컨설팅으로 변화하고 있는 법률시장의 수요에 따라 종합적인 컨설팅이 가능한 조직으로 이행하려는 노력과, 벤처를 넘어 전문분야를 확장해가려는 노력을 함께 하고 있다. 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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