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IPYONG 법무법인[유] 지평

법률정보|칼럼
[헌법 · 행정 · 규제대응] 민사 판결과 공법상 규제의 관계
2024.05.17
건축물의 경계 침범에서 비롯된 사건입니다.  어떤 토지 소유자가 자신의 토지 위에 타인의 담장이 설치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침범한 토지 부분을 인도하고 담장을 철거하라는 소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이유로 패소하게 됩니다.  항소하여 다투던 중 이번엔 담장 소유자가 반소를 제기했습니다.  점유취득시효 완성을 이유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라는 취지였습니다.  반소가 인용되었습니다.  이렇게 판결이 확정됩니다.  그런데도 분쟁이 모두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행정소송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반소에서 승소한 확정판결에 따라 토지를 분할하여 자신의 토지에 합병하려는 과정에서 다시 다툼이 생겼습니다.  토지소유자는 ‘소유권이전, 매매 등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와 ‘토지이용상 불합리한 지상 경계를 시정하기 위한 경우’에 지적소관청에 토지분할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이하 ‘공간정보관리법’) 제79조 제1항 및 그 위임에 따른 공간정보관리법 시행령 제65조 제1항에서 정하고 있습니다.  위 조항에 근거하여 확정판결에 따른 후속 신청행위로서 토지분할신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행정청이 신청을 반려하면서 법정 공방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민사 판결과 공법상 규제의 관계가 문제됩니다.  토지분할에 관한 사법상 권리관계가 설령 판결로 확정되었다 하더라도, 공법상 규제가 전면적으로 배제되지는 않습니다.  가령 대법원은, 토지분할 허가신청을 하면서 공유물분할 확정판결이 제출되었더라도 개발행위 허가권자는 국토계획법에서 정한 개발행위 허가 기준 등을 고려하여 거부처분을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13. 7. 12. 선고 2012두28582 판결 등 참조).  행정청의 거부처분이 공유물분할 확정판결의 효력에 반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사안에서도 공법상 규제가 적용되는지 쟁점이 됩니다.  건축법 제57조는 ‘대지의 분할 제한’이라는 표제로 건축물이 있는 대지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범위에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는 면적에 못 미치게 분할할 수 없다고 합니다(제1항).  나아가 건축법 제44조, 제55조, 제56조, 제58조, 제60조 및 제61조에 따른 기준에 못 미치게 분할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제2항).  또한 「공유토지분할에 관한 특례법」 제6조 제1항 제2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67조 제1항은 건축법 제57조가 토지분할제한 규정인 것을 전제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이런 법률체계를 언급하면서 건축법 제57조를 제정한 입법자의 의사는 대지 자체의 분할을 제한하려는 데에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건축법에서 단순히 대지면적과 그 지상 건물 크기의 비율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이 사건에서 서울고등법원은 반려처분이 위법하다고 보았습니다.  법원의 확정판결에 의한 토지분할신청에 대해 지적소관청은 건축법령상 대지의 분할제한 규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반려할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결국 행정청의 반려처분을 취소하는 원고 승소판결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단이 달랐습니다.  설령 사법관계에 대한 확정판결이 있더라도 건축법상 규제를 이유로 반려처분을 할 수 있다고 보아 원심을 파기했습니다(대법원 2024. 3. 12. 선고 2023두50349 판결). 

사법상 권리관계에 관한 소송에서는 실체적 권리관계의 유무에 주안점을 둡니다.  변론주의의 원칙에 따라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사항에 대하여 심리하고 판단합니다.  관계 행정청이 당사자로서 관여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필지의 토지 중 일부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의 이행을 명하는 판결이 내려질 때 건축법령상 대지의 분할제한 등의 공법상 규제에 관한 검토가 미진할 수 있습니다.  확정판결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법상 규제를 배제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나아가 대법원은 탈법의 위험도 지적했습니다.  만일 지적소관청이 확정판결에 기초한 토지분할신청을 원칙적으로 반려할 수 없다고 본다면, 건축법령상 대지의 분할제한에 관한 규제를 자백간주 등을 이용한 확정판결 또는 이와 같은 효력을 가지는 문서들을 통하여 탈법적으로 회피하려고 하는 경우를 통제할 수 없게 되는 허점을 언급했습니다.  

위와 같은 판결을 보면서, 원ㆍ피고 양쪽의 입장에서 시사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원고로서는 행정청의 행위가 수반되는 사건이라면 민사소송 제기 단계부터 공법상 규제에 대해 미리 살펴보고 감안해야 합니다.  어렵게 승소판결을 받고도 무용한 일이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반면 피고로서는 공법상 규제가 이행불능의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유효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토지를 분할하는 데 건축법령상 제한이 적용되는지 살피지 않은 원심의 판단에는 토지의 일부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의무의 이행불능에 대한 법리를 오해하여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하여 파기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6다212524 판결 등 참조).  민사소송에서도, 특히 이행 내지 집행과 관련된 공법상 규제에 대해서는 쌍방이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