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모씨는 얼마 전 감기 기운이 있어 약국에서 약을 조제해 복용했다. “열ㆍ두통ㆍ오한이 있으며 특이체질은 아니다”는 김씨의 설명에 감기라고 진단한 약사는 소염진통제 2종 등 이틀분의 약을 조제해줬다. 그런데 조제약을 먹은 김씨는 더욱 열이 나고 온몸에 붉은 반점이 나는 부작용이 생겼다. 뒤늦게 병원으로부터 소염진통제의 부작용으로 인한 ‘스티븐스 존슨 증후군’이라는 희귀성 약물중독 판정을 받은 김씨는 약사가 조제한 약의 부작용 및 그에 따른 대응책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을 떠올리고 소송을 결심한다. 약물 투여 후 증상이 악화될 경우 피해자는 의사가 약을 잘못 처방했거나 약사가 잘못 조제한 것으로 판단해 손해배상 소송을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의료사고가 의료소송으로 발전해 의사나 약사의 의료 실수를 인정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치료나 약물 투입 이후 증세가 악화된 것이 특정한 약물의 부작용 때문이라는 것을 검증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검 등을 통해서 약물과 무관한 다른 사유가 환자 상태의 악화 원인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한편 의약분업이 시행되면서 의사는 진료 및 처방을 하고, 약사는 의사의 처방전에 따라 약을 조제하여 판매만 하게끔 의료 환경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환자가 약국에 찾아가 처방 및 조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때문에 약사가 환자에게 간단히 증상을 묻고 진단한 뒤 임의로 약을 조제해 판매하기도 한다. 김씨의 경우처럼 약사가 임의조제한 약을 복용한 환자에게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 약사는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할까. 먼저 약사가 환자에게 문진한 뒤 감기라고 진단하고 처방을 한 행위는 무면허 의료행위로서 의료법 위반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형사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있지만 손해배상 책임까지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문진이나 조제 과정에서 약사가 환자의 증상을 면밀히 확인하고 특이체질에 해당하는지를 묻는 등 얼마나 주의 의무를 다했는지가 손해배상 여부의 중요한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약물을 투여하면 사람에 따라, 혹은 용량이나 용법에 따라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심한 경우 중증 장애가 발생해 생명을 잃기도 한다. 따라서 의사나 약사가 약을 조제하는 경우에는 그 약물을 복용함으로써 우려되는 위험과 부작용을 환자에게 정확히 설명해야 한다. 이러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환자는 약물 사용시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비교 판단하게 되고, 치료를 받을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못한 상황에서 환자가 치료를 승낙했다면, 설령 의사나 약사가 진료나 조제 과정에서 과실이 없는 경우라도 의료인은 환자의 약물치료에 관한 ‘승낙권’을 침해한 것이 된다. 김씨 사례와 같이 충분한 설명 없이 이뤄진 약물 투입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의사나 약사가 환자의 승낙권(약물치료 선택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으로 보고, 형사책임은 물론 손해배상 책임까지 부담하게 된다. 단, 대법원 판례에서는 처방이나 조제 과정에서 잘못이 없다면 손해배상의 범위가 약물치료의 승낙 여부에 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 침해로 인한 정신적 피해, 즉 위자료 정도만 인정되고 그외 발병으로 인한 소득상실분 등 재산상 손해배상은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피해자 김씨는 설명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약사한테서 위자료 수준의 배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설명의무 위반의 정도가 심해 진료상 주의의무 위반에 맞먹는 정도라고 한다면(약에 관한 환자의 설명 요구에 불응하면서 투약을 강력히 권한 경우 등에 한해 인정될 가능성이 있음) 재산상 손해까지도 배상받을 수 있다. 앞으로 의료 서비스를 받는 소비자들은 의사나 약사에게 약물 부작용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고, 처방전이나 조제기록부 사본을 받아 보관해두는 것이 현명한 대비책이 될 것이다. 물론 의료 소송을 대비하려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 약물 부작용 발생시 응급 대처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김성수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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