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4일 미국 전역에서 법조윤리시험(MPRE: Multi-state Professional Responsibility Exam)이 치러졌다. 미국에서 법조인으로 일하려면 반드시 이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다음은 위 시험 출제 기관인 미국 변호사시험위원회(NCBE: National Conference of Bar Exam)에서 제공하는 예상 시험 문제이다. 질문 20) 양 당사자가 주장과 입증을 모두 마친 다음, 판사는 변론을 종결하고 숙의에 들어갔다. 변론 종결 후 몇 주가 지나도록 판결은 선고되지 않았고, 판사가 인과관계와 적용 법률에 관하여 판단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을 들은 원고측 변호사는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변론을 재개하여 양 당사자로부터 주장, 입증을 보완하게 하는 것이 어떤지 의견을 물었다. 판사는 변론을 재개하여 추가로 증인신문을 하고, 양측 변호사로부터 준비서면을 제출받았다. 위와 같은 원고측 변호사의 행동은 변호사협회의 징계 대상인가? 한국의 상식에 비추어 보면, 이것은 징계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판사가 변론을 재개하여 양측의 주장을 들은 것에 문제될 것이 무엇이겠는가. 위와 같이 명백한 내용을 변호사 윤리가 문제되는 사안이라고 제시한 것 자체가 오히려 이상하다. 그러나 정답란에는 놀랍게도 "징계대상"이라고 나와 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판사에게 연락을 하려면, 미리 상대방 변호사에게도 양해를 구하거나 상대방 변호사와 함께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변호사윤리규정(ABA Model Rules and Judicial Code)은 상대방의 동의나 출석 없이 혼자서 판사를 만나서는 "안 된다(must not)"라고 하고 있다. 법관윤리규정(Code of Judicial Conduct) 역시 당사자 일방과 접촉하는 것(Ex parte Communication)을 고려하거나, 허락하거나,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 그러한 일방적 접촉이 사건의 결과에 영향을 줄 염려가 없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법관과 변호사의 접촉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변호사 및 검사의 법관면담에 관한 행정예규」).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규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 듯하다. 많은 변호사들은 일방적으로 판사와 접촉하는 것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건을 위해 법관에게 전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방문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판사도 주장, 입증에 부족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청구취지의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 상대방에게 알리지 아니하고 일방 대리인에게 직접 연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혹자는 다른 일방도 법관과 접촉할 기회가 있으므로, 어느 일방이 상대방 동의 없이 법관과 접촉한다고 하여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고객의 이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변호사의 의무이므로, 적극적으로 법관을 접촉하여 설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변호사들이 일방적으로 법관과 접촉하더라도 우리나라 법관들은 뛰어난 법률적 소양과 독립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재판의 공정성을 해칠 염려가 없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법관과 당사자 일방의 접촉이 재판의 결과를 달리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동일한 쟁점에 대하여 상대방 변호사의 주장이나 증거를 듣더라도 결론이 동일하였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을까? 예컨대 위 문제의 사례에서도 변론 재개 여부를 쌍방이 모두 출석한 자리에서 결정하였다면 변론이 재개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상대방에게 신속한 판결을 요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고, 상대방이 변론재개 없이 판사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을 수도 있다. 이러한 재판의 실질적 결과에 대한 영향보다 중요한 것은 "절차적 정의"가 아닐까 싶다. 이것이 미국의 사법문화와 한국의 사법문화 사이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싶다. 미국의 사법제도는 "적법절차(due process)"의 준수라는 도덕적 가치가 깊이 뿌리박고 있다. 변호사는 자신의 고객에게 불리한 판례마저도 재판부에 고지할 의무가 있으며, 고의로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경우, 실질적 당부에 관계없이 패소당할 수 있다.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지 아니하고 자백을 받은 경우 아무리 유죄가 명백하더라도 그 자백을 이유로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 미국 대법원은 심지어 "언론의 자유"나 "평등권"도 "적법절차"를 위한 권리로 이해하고 있다(이러한 실체적 권리마저 적법절차를 위한 권리라고 설명하는 데에는 미국 사법제도의 역사가 갖는 우여곡절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적법절차로 이해하는 미국적 사고방식은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러한 적법절차에 대한 중시는 인간과 인간이 설립한 제도의 한계에 대한 철저한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재판이 신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면, 적법절차는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 몰래 신을 만나 아무리 현혹하려 한다고 하더라도, 전지전능한 신의 판단에 잘못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들도 신의 재판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수긍할 것이고, 적법절차를 이유로 의혹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므로, 그러한 인간에 의한 재판 역시 잘못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의 중요한 근거 중의 하나도 바로 이러한 실수의 가능성에 있다. 만에 하나 재판이 잘못되어 억울한 사람을 사형시키면 돌이킬 수가 없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오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에 의한 재판에서는 적법절차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실수의 가능성 자체를 배제할 수는 없지만, 상대방과 동등한 기회가 부여되고, 다른 이들과 똑 같은 절차를 거쳐 판단을 받은 것이라면, 그 결과에 대하여 수긍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미국에서는 이와 같은 재판의 정당성을 "동료에 의하여 재판받을 권리(right to a trial by peer)"에서 찾기도 한다). 결국 재판의 정당성은 재판결과의 실질적 타당성(곧 인간의 능력에 대한 신뢰)에 있다기 보다는 동등한 기회를 보장받은 자가 마땅히 수긍해야 하는 절차적 공정성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법관과 당사자 일방의 접촉을 허용하는 것은 이러한 절차적 공정성의 전제 자체를 허물어뜨려 버린다. 상대방이 어떠한 주장과 입증을 하였는지 알 수 없다면, 그에 따른 재판 절차가 공정했다고 믿기도 어려우며, 그 결과에 수긍할 수도 없다. 일방적인 접촉에서 아무런 편파적 행동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의혹을 지우기는 충분하지 않다. 법관이 인간으로서 최대한 공정한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충분하지 않다. 불리한 판결을 받은 당사자는 공정한 재판결과라고 하더라도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재판과정에서 석연치 않게 진행된 부분이 있다면, 이것만큼 불리한 판단을 받은 당사자들이 쉽게 비난의 화살을 돌릴 만한 것이 없다. 이러한 의혹과 불만들이 쌓이게 되면, 정작 절차적 공정성이 지켜진 재판에 대하여도 수긍 대신 의혹을 낳게 하고, 성실하고 도덕적인 대부분의 법조인들에게 의혹의 색깔을 덧칠하게 된다. 결국 인간 세계의 최후심급으로서 분쟁해결기능을 갖는 법원으로서의 권위가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법관과 개별적으로 접촉하여 주기를 요구하는 고객들이 적지 않다. 고객들이 갖는 이러한 기대의 상당부분은, 변호사들 스스로가 자신을 선전하고 고객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하여 법관과 일방적으로 접촉할 필요성을 과장하면서 자신과 특정 법관과의 관계를 왜곡, 홍보한 탓이기도 하다. 이러한 행동들은 당장의 사건이나 당장의 고객 확보에는 도움이 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만 멀리 보면, 이것은 법조인들 모두가 발딛고 서 있는 "사법제도의 권위와 신뢰"를 해치는 위험한 행동일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은 법원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게 하고, 변호사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증가시키며, 나아가 공정한 재판을 통한 분쟁해결이라는 사법제도의 존재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는 것이다. 재판결과에 대하여 승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소율의 증가, 분쟁의 미해결로 인하여 사회적 비용도 증가할 수 있다. 법조인들 내부적인 손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손실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다소 지나치다 싶은 점도 없지 않지만, 법관과 변호사의 일방적 접촉을 엄격히 규제하는 미국 변호사윤리규정이나 법관윤리규정을 경청할 필요가 있지 않는가 싶다. 현재 사법제도개혁위원회에서 이 같은 윤리규정 제정에 대하여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내용의 행정예규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 규정의 제정도 중요하지만 규정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그러한 규정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실무를 정착시켜 가는 것이 더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김지홍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미국 Columbia University School of Law LL.M. 유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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