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화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미국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LL.M. 유학 중) 전쟁이나 이에 준하는 두려움이 지배하는 시대에 개인의 자유가 국가안전보장이라는 이름 하에 희생당한 경험은 비단 남북대치와 독재정권을 경험한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곳 미국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1차대전 중에는 반전을 외친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구금되었고, 2차대전 중에는 일본인의 후손 11만여명이 국가안보에 잠재적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구금되었으며, 냉전의 시대에는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 공산당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처벌되거나 정치적,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곤 했으니까요. 9/11 테러 이후 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쿠바의 관타나모(Guantanamo Bay) 미군기지에 기약 없이 수감되어 있고, 수천명의 이방인(Foreign nationals)이 이민법위반을 구실로 억류되거나 추방되고 있는 현실이 테러와의 전쟁의 단면입니다. 이를 두고 혹자는, 역사 속의 잘못은 문자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지만, 오히려 정교하게 진화하며, 궁극적으로는 잘못된 과거가 새로운 가면을 쓰고 부활하고 있다고 평합니다. 9/11 테러에 대한 부시정부의 대응책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조명해 볼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관타나모에 억류된 적전투원(Enemy Combatants)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국내에서도 수차 보도된 바 있지만, 아프카니스탄의 싸움터에서 붙잡히거나 알케에다(Al Qaeda)로 의심되어 적전투원이라는 딱지가 붙은 채로 관타나모의 미군기지에 이송된 사람들은 국제적십자(International Red Cross)를 제외하고는 외부로부터의 전화, 방문 기타 일체의 접촉이 허용되지 않고 있으며, 그들이 수발하는 서신들은 철저히 검열 당하고, 심문을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주일에 30분을 뺀 나머지 시간들은 독방에 갇혀 지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겐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아가 미국정부는 적전투원으로 지정된 자는-이방인이든 미국민이든- 기간의 제한 없이, 청문절차 없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대한 보장 없이, 더욱 놀랍게는 사법부의 통제도 받지 않고 구금할 수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관타나모에 수감된 자국민의 청원을 심리한 영국법원은 "국제법과 양국(미국 및 영국)에 의해 인정되고 있는 기본적인 원칙을 명백히 위반하여 피구금자는 자의적으로 '법률적인 블랙홀(legal black-hole)'에 구금되어 있다"고 판결하였습니다. 자유민주국가의 나팔수, 기본적 인권의 보장과 적법절차를 핵심으로 하는 사법절차적 정의를 자랑하는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비인도적인, 보다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면 야만적인 일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제 능력 밖이겠지만, 아래 몇 가지가 의문을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첫째, 어찌 보면 가장 본질적인 이유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그들은 인류 역사상 유래 없이 독특한 전쟁의 포로가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전쟁은 어떤 형태이든 간에 시작과 끝이 있으며, 상대방의 실체가 정치적인 의미에서든 공간적인 의미에서든 명백합니다. 그러나 부시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의 목표를 9/11 테러를 직접 감행한 알케에다 조직의 박멸에만 두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테러조직과의 전쟁이라고 정의함으로써 이러한 전통적 의미의 전쟁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언된 전쟁은 국경의 구분도 시간의 한계도 있을 수 없으므로, 관타나모에 억류된 자들은 제네바협약상의 전쟁포로와 달리 전쟁이나 적대행위가 끝나는 시점에 석방될 수 있다는 기대조차도 가질 수 없습니다. 둘째, 9/11 테러라는 '범죄'를 '전쟁'이라는 수단으로 대응함으로써 적전투원들에게는 실체적, 절차적 정의를 보장하기 위한 각종 헌법적 방어장치가 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포로로서 '비무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법적 신분에 관한 '무방비'상태를 강요 받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이들이 바깥 세상으로 다시 나갈 방법 중의 하나는 자신이 적전투원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길일 겁니다. 제네바협약은 명령에 따라 단순히 전투를 수행한 자를 'Privileged Combatant'로, 전쟁범죄를 자행한 자를 'Unprivileged Combatant'로 구분하여 전자의 경우 교전행위의 종료와 동시에 석방하고 후자의 경우 당해 범죄의 심판절차에 따라 처결하도록 하고 있으며, 억류된 자의 신분에 관해 의심이 있을 때에는 관할권 있는 재판소(competent tribunal)로 하여금 판단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대통령의 이러한 지정행위는 고도의 재량행위로서 사법부도 지정행위의 당부에 관하여 판단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시종일관 견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연방법원이 미국정부의 이러한 주장을 전면적으로 받아 들인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정부의 관점을 실질적으로 수용하여, 적어도 교전지역에서 체포된 사람에 대해서는 피체포자가 적전투원이라는 미국정부의 사실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관타나모에 억류된 자들은 외견상 모두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므로, 이들이 알케에다나 탈레반과 무관함을 입증하는 방법을 통해 석방될 가능성은 희박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편, 미국정부가 이들을 범죄자로 기소하는 대신 적전투원으로 무한정 억류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법적 곤궁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만약 미국정부가 관타나모의 피구금자들을 어떤 명목으로든 기소한다면 그들은 미국 사법시스템이 보장하고 있는 각종 권리들-무죄추정의 원칙,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자신에게 불리한 증인을 반대신문할 수 있는 권리 등-의 무장하에 자신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만, 미국정부는 현재까지 단 한 사람의 피구금자도 기소하지 않고 있습니다. 셋째, 그들은 모두 미국 영토 밖에서 붙잡혀 미국 영토 밖에 억류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2차대전 당시 미군에 의해 중국에서 전범으로 체포된 독일인들이 미국 연방법원에 억류의 당부에 대해 심판해 주길 청원한 일이 있는데, 연방대법원은 이들에게는 인신보호영장(writ of habeas corpus)을 청원할 권리가 없다고 판단한 선례가 있습니다.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군사작전과정에서 체포된 12명의 쿠웨이트인과 2명의 오스트레일리아인들도 알케에다, 탈레반과 무관함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법적 신분은 연방법원 또는 적어도 제네바협약상의 competent tribunal이 판단하여야 한다며 연방법원에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하급법원은 관타나모의 미군기지가 어느 연방법원의 관할구역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들의 청원을 모두 기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관타나모의 미군기지는 비록 쿠바의 궁극적 주권(ultimate sovereignty)에 속하기는 하지만 미국의 완전한 관할권과 통제(complete jurisdiction and control)하에 있다는 이유를 들어 미국 외의 미군기지에 억류되어 있는 이방인에 대한 연방법원의 심사권한을 최초로 인정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관타나모 기지는 미국정부가 쿠바에게서 임대한 땅이지만, 양국간 조약에 의하면 미국정부가 기지를 포기하지 아니하는 한 임대기간은 종료되지 않는 '사실상의' 미국영토입니다. 따라서 위 판결은 어떻게 보면 해외에서 체포되어 해외에 억류중인 모든 이방인에게 연방법원의 관할권을 인정한 판결이라기 보다는 관타나모 기지의 특수성을 인정한 예외적인 판결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미국정부가 이제부터는 체포된 자들을 관타나모 기지가 아닌 해외의 다른 미군기지에 억류할 경우 위 판결이 동일하게 적용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수적인 입장의 사람들은 미국이 해외에서 운영하고 있는 미군기지 중 미국이 1차적인 관할권(primary jurisdiction)을 가지는 기지의 경우에도 위 판결이 적용될 가능성을 숙고하지 않은 성급한 판결이라고 비판하고 있고, 위 판결의 반대의견이 적시한 바와 같이, 전선에서 전장을 지휘하여야 할 장수로 하여금 포로와 그에 관한 증인의 본국 후송과 소송관여 등 배후를 신경쓰도록 강요함으로써 적을 돕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넷째, 안타까운 분석이긴 하지만, 그들은 모두 이방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줄기찬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정작 미국 내에서는 관타나모의 수감자들에 대한 동정여론이 그다지 형성되지 않고 있는 이유를 여기서 찾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에 반해 아프카니스탄에서 체포된 Yesser Hamdi와 시카고의 O'Hare공항에서 체포된 Padilla는 시민권자로서 적전투원 레벨이 붙어 해군기지에 억류되어 있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미국언론이 적잖이 관심을 보여 왔다고 합니다. Yesser Hamdi의 억류가 다투어진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미국시민으로 전쟁과정에서 체포된 자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및 중립적인 판사 앞에서 공평한 청문절차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판결하였습니다. 한편, Padilla case는 시민권자이면서 교전지역이 아닌 미국 내에서 체포된 자라는 점에서 미국정부의 적전투원 지정 및 억류권한의 최대치를 상징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향후의 사법심사는 미국정부의 테러대응에-최소한 미국시민을 대상으로 한 경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방인에 대한 차별을 관타나모에 수감된 자들의 법적 처지에까지 연결하는 것을 두고 감상적이거나 과장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실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민법과 테러관련법률을 전문으로 하는David Cole교수는 시민권자와 이방인을 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전략이 미국정부의 '기본전략'임을 구체적으로 논증하면서 이러한 차별적 대응이 대테러 전쟁에 대한 미국내 비판여론을 무마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Hamdi나 Padilla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차별적으로 그어진 선은 궁극적으로 환상이며 시민 모두의 자유가 공격받을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Rasul이나 Hamdi판결과 같이 미국정부의 9/11테러 대응방안에 대해 부분적인 제동이 걸리는 예는 가끔 있지만, 9/11 테러대응조치의 광범위함과 가혹함에 비추어 볼 때 미국정부는 상당히 효과적으로 이들 조치의 합헌성 여부에 대한 도전을 방어해 왔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앞서 지적한 차별적 대응이란 비판을 염두에 둔 듯, 부시정부 하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한 Attorney General John Ashcroft가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유의 상실이라는 유령을 들이대며 위협하는 자들에 대한 나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당신들의 전술은 테러리스트들을 돕고 우리의 국가안보를 좀먹을 뿐이다'고 공언한 걸 보면 이러한 효과적인 전략이 쉽게 포기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안타까운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전쟁-현실적이든 잠재적이든-의 시기에 미국법원 역시 개인의 자유보다는 국가안보에 무게중심을 둔 판결을 해 왔으며, 특히 전쟁수행에 관한 대통령의 판단-그것이 개인의 기본적인 인권을 희생할지라도-을 존중해 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위협이 사라진 시점에서는 그 모든 것이 잘못이었다는 사실 또한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끝 모를 전쟁'은 미국 사법부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임이 분명합니다. ------------------------------------------------------------------------------------ 1. David Cole, The New McCarthyism: Repeating History in the War on Terrorism, 38 Harvard Civil Rights-Civil Liberties Law Review 1, 2 (2003). 2. David Cole, Enemy Aliens, 40 (2003). 3. 포로의 대우에 관한 1949년 8월 12일자 제네바협약 제5조. 4. Hamdi v. Rumsfeld, 316 F.3d 450 (4th Cir. 2003). 5. Johnson v. Eisentrager, 339 U.S. 763 (1950). 6. Rasul v. Bush, 124 S. Ct. 2686 (2004). 7. Ruth Wedgewood, Supreme Court and the Guantanamo Controversy, in TERRORISM, THE LAWS OF WAR, AND THE CONSTITUTION 159, 161. 8. Hamdi v. Rumsfeld, 124 S. Ct. 2633 (2004). 9. Cole, supra note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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