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거장의 반열에 오른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가 최근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은 ‘Sicko’ 즉, ‘환자’라는 제목의 영화다. 이 영화는 미국의 의료보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영화를 소개하면서 미국의 의료제도를 이렇게 꼬집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환자가 병원에 오면 이렇게 묻습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환자가 병원에 오면 이렇게 묻습니다. ‘어느 보험에 가입되어 있나요?’” 많은 미국인들은 의료비 지출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 국민의 보건의료수준은 매우 낮은 미국의 현실을 미국 사회 시스템의 수치로 여긴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병원에 가면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제도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보다 낫다는 것이 중론이다. 애지중지 잘 고치고 가꿔 나가야 할 소중한 제도이다. 작년에 보건의료 단체를 대리하여 ‘보험약가인하처분 취소소송’의 참가인으로 소송을 수행한 적이 있다. 다국적제약사가 낸 ‘국민건강보험의 약제비 결정’에 대한 소송이었다. 약제비란 국민건강보험 가입자가 병원에서 약을 지급받을 때 본인부담금만 내고, 나머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하게 되는데, 그 약제비를 말한다. 어떤 약을 국민건강보험의 급여 대상으로 할 것인지와, 그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약제비로 얼마를 지급할 것인가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약제의 효능과 경제성 등을 고려해서 그 상한금액을 정한다. 여기서 기준은 ‘효능’과 ‘경제성’이다. 그 상세한 기준은 보건복지부 고시에 의한다. 약제비 결정은 행정소송의 대상이 된다. 당시 소송에서 문제가 됐던 것은 ‘혁신적 신약’의 약제비였다. 고시는 ‘혁신적 신약’에 대해서는 선진 7개국(이를 ‘A7’이라고 부른다)의 평균 공장도출하가격에 부가세와 유통마진을 붙여서 조정한 금액을 상한액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 금액은 일반적 신약보다 높다. 그래서 주한 유럽연합상공회의소(EUCCK)는 ‘혁신적 신약’ 뿐만 아니라, ‘일반 신약’에 대해서도 A7 조정평균가로 약가를 보장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해 오고 있다(2006년 EUCCK 무역장벽 보고서). ‘일반적 신약’도 ‘신약’이므로 효능은 이미 검증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 정부는 ‘혁신적 신약에 대해서만 A7 조정평균가를 인정해 주기로 한 것은 1999년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와 주한 유럽상공회의소 대표가 참여한 ‘의료보험약가 기준개정을 위한 태스크포스’에서 합의한 것이므로, 이를 일반 신약에 대해서까지 늘리라는 것은 합의 위반이다’라고 답변해왔다. 이 소송에서 법원은 ‘혁신적 신약’으로 A7 조정평균가의 적용을 받으려면 효능이 탁월해야 하며, 탁월한 효능은 제약사가 입증해야 하고, 후속되는 다른 반론이 존재하고, 그 반론에 과학적 타당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러한 반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혁신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과학적 검증과 증명을 할 책임도 있다고 하였다. 약제비 결정시 ‘효능’과 ‘경제성’ 기준의 원칙을 다시금 확인하며, ‘혁신적 신약’의 요건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공개된 한미 FTA 협정문을 보면, 지금까지의 약제비 결정을 할 때 기준이 된 ‘효능’과 ‘경제성’의 원칙을 정면으로 뒤집는 내용이 들어 있다. ‘특허 의약품 및 의료기기의 가치를 자국이 제공하는 급여액에 있어 적절히 인정한다.’는 조항이 그것이다(5.2. 나. 2). ‘특허의약품’은 효능이 뛰어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효능을 불문하고 특허의약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약제비 결정에서 ‘특허’의 가치를 인정해 준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것은 ‘비특허의약품’에 대한 차별이고, ‘특허의약품’ 제약사를 부당하게 우대하여, 국민건강보험재정 건전화에 역행하는 정책이다. 이 조항에 따라 특허의약품은 효능과 상관없이 약제비 상한액이 인상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국민건강보험 재정으로 굳이 특허의약품을 우대하는 혜택을 베풀 이유가 있을까?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 얼마 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주최한 한미 FTA가 보건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간담회에 참석했었는데, 보건관련 국책연구소에서는 이 조항에 대해서 ‘걱정할 것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 조항이 있더라도 약제비 결정의 기준은 ‘효능’과 ‘경제성’이므로, 특허의약품이라고 해서 약제비가 비특허의약품에 비해서 효능과 관계없이 높게 책정될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좋겠지만, 명문으로 나와있는 규정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유럽과의 FTA 협상에서도 유럽연합은 ‘특허의약품’에 대해서 약제비 상한액을 정할 때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한미 FTA의 조항을 내세울 수도 있다. 그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약제비 결정시 ‘효능 입증주의’(evidence based cost effectiveness system)라는 원칙의 의미와 중요성을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덧붙이고 싶은 것은 보건의료정책 분야의 법률전문가가 많이 양성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한미 FTA가 국회에서 비준된다면 의약품과 관련한 소송의 폭주가 예상된다. 의약품 특허와 허가의 연계로 인해서 의약품 특허분쟁이 늘어날 것은 물론이고, 신약의 허가에 관한 분쟁도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약제비 결정에 대한 소송이 폭주할 것이다. 거기에 약제비 결정을 할 때 효능 추가에 따른 추가 급여신청도 가능하도록 하였으므로 관련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의약품의 허가나 약제비 결정은 보건의료정책과 국민건강에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의료보건분야에 고유한 다양한 법리를 능통하게 창조하고 해석해 낼 수 있는 의료보건 분야의 법률전문가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은우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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