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변협이 비리 혐의 전직 판검사를 변호사로 받아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대로 부적격자를 법조인 스스로 걸러내지 못한다면, 이 사회의 효율적이고 공정한 운영을 담보하는 사법제도까지 흔들릴 것이다. 3월13일 대한변호사협회 등록심사위원회는 수사 기밀 누설로 징역형을 받았던 신승남 전 검찰총장과 가혹 행위로 피의자를 숨지게 한 홍경령 전 검사의 변호사 등록 신청을 받아들였다. 변호사들에게 뇌물을 받은 김창해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의 등록 신청도 수리되었다. 대한변협이 비리 혐의로 물의를 일으킨 전직 판검사를 변호사로 받아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군산 법조 비리로 옷을 벗은 판사 세 명도 모두 무사히 변호사 개업에 성공했다. 사실 이제까지 대한변협이 변호사 등록 신청을 거부한 사례는 1997년 한 건 외에는 없다고 한다. 지난해 말에 모두 사면ㆍ복권되었기 때문에 거부할 근거가 없었다는 것이 대한변협의 변명이다. 그러나 대한변협은 2007년 1월 아무런 근거 규정도 없이 변호사 비하 발언을 한 판검사의 변호사 등록을 2개월 정도 늦추는 규칙을 제정하려 한 적이 있다. 따라서 근거 규정이 없어서 등록을 받아줬다는 변명은 설득력을 잃는다. 현대는 ‘전문화 시대’이다. 사회 각 분야의 기능이 세분화ㆍ전문화하면서 전문가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진다. 법원 재판만 봐도 그렇다. 전문가의 의견이 결정적 구실을 한다. 의료 소송에서는 감정인으로 나선 의사의 소견이 승패를 좌우하고, 건축 하자 소송에서는 건축사나 구조설계사 같은 전문가의 견해가 그대로 판결 내용이 되는 예가 많다. 하지만 전문가가 사실 그대로 의견을 밝히는 것인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감정인으로 나선 의사가 도저히 치료할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증언하면, 법관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증언을 반박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다른 의사 혹은 의사단체로부터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시 의견을 구하는 길뿐이다. 전문가 의견이나 업무 처리는 같은 전문가만이 확인하고 통제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법률은 고도의 전문성을 지닌 업무 분야에 대해 전문가 단체를 강제한다. 변호사법은 ‘변호사 업무를 수행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대한변협에 가입’하게 한다. 의사는 대한의사협회에, 공인회계사는 대한공인회계사회에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 법은 이같은 전문가 단체에 소속 구성원을 지도하고 감독할 임무를 맡기며, 자체 규율하도록 한다. 미국 변협은 구성원에게 높은 윤리성 요구…불고지죄도 인정 이런 시스템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미국 변호사협회는 변호사에게 고도의 ‘윤리성’을 요구하고, 이에 의심이 갈 만한 행동을 한 자는 등록을 받아주지 않는다. 동료의 비행을 알고도 침묵하면 그것만으로도 징계 대상이다. 일반 법률에서는 있을 수 없는 불고지죄가 전문가 단체 구성원 사이에서는 인정된다. 함량 미달인 자를 어설픈 동료의식으로 감싸주었다가는 모두 잘못될 수 있다는 냉정한 현실인식이 밑바탕에 깔렸다. 법조 비리가 터지면 법조계 내부에서는 으레 탄식과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비리를 저지른 자는 1%도 안 되는 소수인데, 이들 때문에 99%의 성실하고 청렴한 법조인까지 도매금으로 매도당한다는 것이다. 맞다. 그러나 1%도 안 되는 부적격자를 걸러내지 못한 책임은 나머지 99%에게도 있다. 그리고 부적격자를 법조인 스스로 걸러내지 못한다면, 이 사회의 효율적이고 공정한 운영을 담보하는 사법제도까지 흔들린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변호사 등록 신청을 거부당한 비리 혐의자가 대한변협을 상대로 등록거부 취소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해본다. 대한변협 사전에 ‘부적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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