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계약을 체결하는 주체는 통상 자유로이 상대방을 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ㆍ지자체ㆍ공공기관이 민간업체와 '공공계약'을 맺는다면 상대를 정하는 방식에 법적 제약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임의로 선택하는 방식은 수의계약이라고 하여 예외적으로만 허용됩니다. 불특정 다수를 경쟁절차에 부쳐 선정된 자와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 원칙이며, 경쟁기제로 '입찰'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2008년 12월 31일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 시행령이 개정되어 경쟁방식에 경매도 추가되었지만, 경매는 주로 물품구입계약에서만 활용되고 있습니다. 일정 규모를 넘는 대형 관급공사계약은 반드시 입찰방식을 취하도록 강제되고 있어서, 관급공사를 수주하려는 회사는 입찰제도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입찰을 단순히 계약체결의 한 과정으로 보면, 공공입찰에서 발생하는 법률문제를 '계약체결상의 과실책임'과 같은 민사법리로만 접근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공공계약'이 '공공'과 '계약'의 결합어인 것처럼 공공계약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제대로 풀어내려면, 공공성 속에 숨어 있는 공법적 법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일차적 접근은 각종 행정법적 규제를 담고 있는 개별법령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국가계약법을 비롯하여 공공계약을 규율하는 관련 법령을 일별해 본 후, 법원은 이와 같은 법령의 성질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그렇다면 공공입찰 분쟁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차례로 봅니다. 2. 공공계약을 규율하는 법률 가. 국가계약법 국가계약법이 기본법입니다. 국가계약법 제2조는 "국제입찰에 의한 정부조달계약, 국가가 대한민국 국민을 계약상대자로 하여 체결하는 계약 등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대하여 적용한다"고 규정함으로써 국가가 일방 주체인 계약에 망라적ㆍ원칙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밝힙니다. 나. 지방계약법 공공계약의 주체가 지방자치단체라면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지방계약법')」이 기본법으로 적용됩니다. 국가 또는 지자체가 당사자인 계약에서는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없는 이상 국가계약법 및 지방계약법에 의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민참여에 의한 계약감독제도(제16조), 지방자치단체의 장에 의한 계약체결의 제한(제33조) 등 몇몇 특유한 제도를 제외하고는 지방계약법은 국가계약법과 대동소이합니다. 향후 두 법은 서로 통합하여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다. 건설산업기본법 위 국가계약법과 같은 기본법에서 말하는 다른 특별한 규정을 담고 있는 법률 중에는 건설산업기본법(이하 '건산법')이 자주 문제됩니다. 건산법은 민간부문 뿐만 아니라 정부부문까지 포괄하여 건설업 및 건설용역 전부를 규율 대상으로 합니다. 특히 제3장에서 '도급 및 하도급계약'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장은 국가계약법의 특별규정입니다. 공공계약이 공사도급계약이라면 건산법도 반드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라.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건설공사 현장에서는 수많은 하도급이 행하여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공사계약이 체결되는 경우,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도급법 제34조는 하도급법이 건산법과 충돌하는 때에는 하도급법이 우선하여 적용된다고 규정하므로, 이 범위에서 하도급법은 건산법의 특별규정이 됩니다. 마. 국유재산법 및 공유재산법 국유재산법 및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이하 '공유재산법')」의 잡종재산에 관한 규정도 국가계약법의 특별규정입니다. 이 법은 잡종재산의 증여ㆍ매매ㆍ교환 등의 형식과 방법에 관하여 별도 규정을 두고 있는데, 국가계약법 및 지방계약법 보다 우선합니다. 바. 조달사업법 「조달사업에 관한 법률(이하 '조달사업법')」도 빈번히 문제됩니다. 공공계약을 체결하는 주체는 크게 둘로 구분되는데, 수요기관이 직접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과 수요기관의 요청을 받은 조달청이 계약을 맺는 형태가 있습니다. 일부 대형 공사계약에 대하여는 수요기관이 당사자가 될 수 없고 조달청만이 계약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관급공사계약에서는 대개 조달청이 주체가 되는 것이므로 조달사업법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 건설기술관리법 공사감리와 관련하여서는 건설기술관리법이 주로 적용됩니다. 이 법은 국가, 지자체 또는 '국가 또는 지자체가 납입자본금의 2분의 1 이상을 출자한 기업체'가 건설공사 또는 건설기술용역을 발주한 경우, 그 공사에 관하여 일반 감리제도와는 다른 규율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역시 공공계약의 특수성이 반영되어 있는 법률입니다. 아. 공공기관운영법 계약주체가 국가나 지자체 외 '공공기관'이라면「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공기관운영법')」도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공공기관운영법 제39조 제3항은 "회계처리의 원칙과 입찰참가자격의 제한기준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기획재정부령으로 정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에 근거하여 「공기업ㆍ준정부기관 계약사무규칙」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규칙은 국가계약법을 상당부분 직접 인용하고, 제2조 제5항에서는 규칙에 규정되지 않은 사항에 대하여 국가계약법령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을 매개로 국가계약법령은 공공기관에까지 적용범위가 확대됩니다. 자. 각종 회계예규 그 외 각종 회계예규와 훈령도 놓칠 수 없습니다. 국가계약법령을 보충하는 행정규칙으로서 기획재정부 국고국 회계제도과에서 운용하는 회계예규가 2009년 6월 현재 16개 시행되고 있습니다. 법원은 행정규칙의 대외적 구속력을 부인하는 경우가 많지만, 계약의 일방 당사자인 공공주체는 회계예규를 엄격히 준수하려고 합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령의 조달청 해석기준(2008. 12. 30. 조달청 훈령 제1441호)」도 조달행정의 주요지침이므로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공계약도 어차피 본질은 계약이라고 본 나머지 위와 같은 행정법령을 간과한다면, 법적 쟁점에 대한 궁극적 판단을 그르치기 쉽습니다. 특히 관급공사계약과 관련하여서는 위와 같은 행정법적 규정이 다수 있으므로, 위 법령을 토대로 관련 쟁점을 체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 공공계약 관련 공법규정의 재판규범성 다만 위 행정법 법령은 재판규범의 기제로는 온전히 작동하고 있지 못합니다. 공공입찰에 관한 분쟁에 대하여 법원은 일반 민사 규범을 토대로 판단합니다. 심지어 국가계약법령상의 입찰절차나 낙찰자 결정기준에 관한 규정의 성질은 국가의 내부규정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2001. 12. 11. 선고2001다33604 판결 참조). 낙찰자결정에 대하여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이 제기되면 법원은 소를 각하합니다. 낙찰자 선정에 대하여도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이거나 공권력작용과 일체성을 가진 것은 아니"라면서 "이에 관한 분쟁은 행정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입니다(대법원 1983. 12. 27. 선고 81누366 판결). 부정당업자 경쟁참가제한조치를 다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공입찰과 관련된 소는 모두 민사법원에 제기하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 법원의 일관된 태도입니다. 행정소송이 아니므로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처분을 취소시키는 법리를 적용할 수 없게 됩니다. 민사법리에만 충실하면, 입찰절차에 하자가 있더라도 낙찰자 결정 내지 그에 따라 체결한 계약을 무효라고 보는 기준은 까다롭게 됩니다. ① "하자가 입찰절차의 공공성과 공정성이 현저히 침해될 정도로 중대할 뿐 아니라 상대방도 그러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 또는 ② "그러한 하자를 묵인한 낙찰자의 결정 및 계약체결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결과가 될 것임이 분명한 경우" 등 입찰을 무효로 하지 않으면 국가계약법의 취지를 몰각하는 결과가 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때에 한하여 무효가 된다고 판시합니다(대법원 2006. 6. 19. 2006마117 결정). 민법상 비진의 의사표시가 무효가 되는 경우 또는 민법 제103조에 따라 계약이 무효가 되는 법리를 차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확인소송을 통한 예외적 대응방안 민사소송으로 접근하는 판례에 순응하면서도 국가계약관련 법령위반을 문제삼아 권리구제를 받는 수단으로는 확인의 소를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조달청이 입찰참가자격사전심사(PQ)를 하여 입찰참가 적격업체 선정까지 한 상태에서 기존 입찰을 취소하고 새로운 입찰 공고를 한 사안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원고가 취소되기 전 입찰에서 2순위 적격심사대상자로서의 지위에 있음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서울지방법원 1999. 6. 3. 선고 99가합2688 판결). 대법원도 종국적으로 이와 같은 청구에 확인의 이익이 있다고 판시합니다(대법원 2000. 5. 12. 선고 2000다2429 판결). 이와 같이 응찰자가 입찰절차에서 일정한 지위에 있음을 확인 받음으로써 발주자에 대하여 손해배상과 같은 추가적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나오며 판례의 태도를 감안해 보면, 공공입찰 관련 분쟁이 소송으로 이행되기 전과 후의 대응방법은 달라질 필요가 있습니다. 소송절차로 나아가기 전 단계라면 응찰자는 국가 등에 공공계약관련 법령에 따를 것을 강하게 요구할 수 있습니다. 계약담당공무원에게는 법령준수의무가 있으므로 계약상대방이 협상에서 관련 법령을 적시한다면 공무원이 이에 반하는 태도를 취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관련 행정법령이 재판규범으로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므로 소송에서는 민사법리에 더 치중해 논리를 가다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낙찰자 결정의 처분성을 부인하고 국가계약법령을 국가의 내부규정에 불과하다고 보는 판례의 태도에 대하여 학계에서는 적지 않은 비판을 가합니다. 법원도 계약의 공공성을 인정해 공공입찰 관련 분쟁을 공법적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입법론적 해결도 요청됩니다. 국가계약법상 이의신청제도는 국제입찰에만 한정되는 등 공공계약법상 분쟁해결제도는 상당히 미흡합니다. 민간주체가 권리를 더 쉽게 구제 받을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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