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쓰는 유언장이라는 것이 있다. 대개는 살면서 가깝게 지냈던 분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는 내용이 많다. 매장의 풍습에서 벗어나 화장을 부탁하기도 한다. 의식불명이 되어 장기간 식물인간 상태에 빠질 경우에 인공호흡기나 인공급식관을 통한 생명연장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미리 적어두는 경우도 있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장기간 누워서 목숨만을 유지하는 경우가 간혹 생기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는 장기간 식물인간으로 있다가 어느 날 벌떡 일어나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에서는 거의 없는 일이다. 일단 사람과 사물을 분별하는 뇌 부분은 한번 손상을 받으면 현대의학으로도 되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물인간 상태에서 짧게는 수십일 길게는 수십년 지내기도 한다. 급식관을 통하여 영양분과 물을 보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와 같이 소생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무한정 인공급식을 유지하면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2008년에 시작된 김모 할머니 가족들의 연명치료 중단 소송도 이런 맥락에서 제기되었을 것이다. 이미 70을 넘은 나이에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기약 없는 삶을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평소 생각에 맞지 않는다는 증언도 나왔다. 2009년 5월에 인공호흡기 제거가 허용된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선고되었다. 가족들은 인공호흡기만을 제거하였고 급식관을 통한 영양공급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 만일 당사자가 평소에 "내가 한달 이상 의식불명 상태가 계속되고, 의사가 식물인간 상태라고 진단을 하게 된다면 나에게 인공호흡기나 급식관을 통하여 무리한 생명연장을 하지 마라. 나는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정히 판단이 어려우면 나에 대한 치료의 지속 여부나 내용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자녀들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도록 하라." 는 내용을 일기, 편지나 유언장으로 작성해 두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고통의 시간이 조금은 단축되었을 것이다. 의학의 발달로 인하여 식물인간 상태의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미국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하여 오래 전부터 다양한 법적 시도가 이루어졌다. 먼저 1969년 초에 루이스 쿠트너라는 변호사가 "생전유언(living will) 제안"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의식불명 상태에 대비하여 평소에 인공호흡기에 의한 연명치료 같은 비통상적인 치료를 거부한다는 내용의 생전유언을 작성하고 이를 존중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런 문서를 작성해서 활용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다. 생전유언은 없었지만 1976년에 뉴저지주 대법원은 식물인간 상태에 있던 22세 여자 환자 카렌 퀸란의 부모가 제기한 인공호흡기 제거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인공호흡기가 제거된 후에도 카렌은 10년이 넘도록 생존을 계속하다가 1986년에 사망하였다. 소송 당시에는 생각도 못한 일이다. 1990년에는 27세 여자 테리 샤이보우가 전해질 불균형으로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이 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테리는 급식관을 통하여 영양과 수분을 공급받으면서 7년 이상 연명을 하였다. 테리의 남편인 마이클 샤이보우는 1998년에 테리의 급식관을 제거하여 자연스런 사망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플로리다주 법원은 마이클의 소송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테리의 부모는 테리가 눈을 깜박이는 반응을 보인다고 하면서 급식관을 재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급식관의 제거와 재설치가 반복되면서 테리의 남편과 부모 사이에 7년간 지속된 소송은 남편의 승소로 끝났다. 테리의 부모 입장을 지지하는 시민단체의 요구로 플로리다주 및 연방의 의회에서 테리구조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기도 하였다. 그 렇지만 플로리다주 대법원은 권력분립에 반하는 위헌법률이라는 취지로 배척하였다. 결국 테리는 급식관을 제거한 후 10여일만인 2005년 3월 31일에 사망하였다. 부검결과 테리는 뇌질량이 정상의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손상되었다고 한다. 결국 급식관을 제거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테리가 소생한다는 건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김성수 변호사(법무법인 지평지성 변호사, 의사)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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