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관계
피고인은 A결혼정보회사에서 근무하다가 B결혼정보회사로 이직한 이후 A회사를 상대로 해고무효의 확인 및 임금의 지급을 구하는 민사소송(반소)을 제기하였습니다. 피고인은 A회사를 그만둔 다음 날인 2006년 1월 26일부터 B회사 출근 전날인 2006년 3월 31일까지는 A회사에서 지급받던 급여 전체를, 그 다음날부터는 70% 상당의 금액을 청구하였고, 이에 대하여 A회사는 피고인이 2006년 2월 중순경부터 이미 B회사에 근무하기 시작하였으며, 피고인이 B회사에 근무할 것을 염두에 두고 A회사를 그만둔 것이기 때문에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또한 결혼정보회사의 급여는 근무하기 시작한 다음달 말경에 지급하는 것이 관행이므로 피고인이 2006년 4월 25일 B회사에서 급여를 수령한 경우 2006년 3월경부터 B회사에서 근무를 시작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도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은 S은행 명의 통장의 기장내역 "2006년 4월 26일 B회사, 2,694,180원"중 "B회사"부분을 화이트테이프로 지우고 복사하여 "2006년 4월 26일 2,694,180원"이라는 외관으로 통장사본을 만들었고, 이를 담당변호사에게 전달하여 담당변호사로 하여금 증거로 제출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통장사본의 제작 및 증거제출행위가 사문서의 변조 및 동행사죄에 해당한다고 하여 기소된 사안입니다.
2. 원심의 판결
원심은 피고인의 이러한 통장사본 제작 및 제출행위에 대하여 ①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는 단순히 입금자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한 것일 뿐인 점, ② 계속하여 기장된 다른 거래의 기장내역과 비교하여 보면 위 공란 부분은 입금자의 명의가 기재되는 부분임을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는 점, ③ 피고인이 가린 부분이 통장의 잔액 부분과 달리 공동명의인인 S은행장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항은 아니었던 점 등을 근거로 "공공적 신용을 해할 정도의 새로운 증명력"이 작출되지는 않았으며, 통장사본의 공동명의자인 S은행장의 승낙이 추정된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유지하였습니다.
3. 대법원 판결의 요지
그러나 대법원은 유죄 취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하였습니다.
우선 대법원은 피고인이 언제부터 B회사에서 급여를 받았는지가 중요한 사항이었음에도, 피고인이 B회사에서 받은 급여는 제외한 채 2006년 5월 25일부터 수령한 급여내역을 표로 정리하여 이를 증거로 제출하였다는 점에 주목하였습니다. 즉 2006년 5월 25일경 첫 월급을 받았다는 인상을 풍겼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소송 진행 중 피고인이 B회사로부터 2006년 3월경 일정 금액을 지급 받은 사실이 드러나자, 이 금액이 급여가 아니라 일종의 스카우트 비용이었으며, B회사에서는 당월 지급 방식으로 급여를 지급받는다는 주장을 펼친 점도 고려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피고인이 입금자 명의를 가리고 복사하여 이를 증거로 제출함으로써 "피고인이 2006년 5월 25일부터 B회사에서 급여를 수령하였다는 새로운 증명력이 작출되어 공공적 신용을 해할 위험성이 있었다"고 볼 수 있고, 통장 명의자인 S은행장이 행위 당시 그 사실을 알았다면 당연히 이를 승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볼 수 없으며, "피고인이 위와 같이 관련 민사소송에서 쟁점이 되는 부분을 가리고 복사함으로써 문서내용에 변경을 가하고 이를 민사소송의 증거자료로 제출한 이상 피고인에게 사문서변조 및 변조사문서행사의 고의가 없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4. 판결의 의의
사문서의 위조ㆍ변조죄는 작성권한 없는 자가 타인 명의를 모용하여 문서를 작성하는 경우 성립합니다. 사문서를 작성ㆍ수정할 때 명의자의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승낙이 있었다면 사문서의 위조ㆍ변조죄에 해당하지 않으며, 행위 당시의 모든 객관적 사정을 종합하여 명의자가 행위 당시 그 사실을 알았다면 당연히 승낙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경우 역시 사문서의 위조ㆍ변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의 기본적 입장이었습니다(대법원 1993. 3. 9. 선고 92도3101판결, 대법원 2003. 5. 30. 선고 2002도235판결 등). 그런데 2008년경 "명의자의 명시적인 승낙이나 동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명의자가 문서작성 사실을 알았다면 승낙하였을 것이라고 기대하거나 예측한 것만으로는 그 승낙이 추정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선고되어(대법원2008. 4. 10. 선고 2007도9987판결), 명의자의 승낙이나 동의를 쉽게 추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문서 위조ㆍ변조의 범위가 확대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상판결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명의자의 승낙이나 기대의 추정은 결국 행위 당시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명의자의 관점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객관적'인 사정을 명의자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평가해야 하는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대상판결은 규범적 판단을 통하여 이러한 어려움을 일정 부분 해결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관련 민사소송에서 주요 쟁점이 된 사안에 대해서 사문서를 증거로 제출하며 일부 내용을 수정한 행위는, 공공적 신용성을 해할 위험성이 있으며, 행위자에게 범죄에 대한 적극적 인식과 의사가 있었다고 평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이 인정되면 명의자가 당연히 승낙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는 없다고 하여, 추정의 범위를 일정 정도 제한하고 있습니다.
소송에서 유리한 증거를 적극적으로 제출하고, 불리한 증거를 숨기고자 하는 시도는 비일비재합니다. 또한 불리한 증거를 어쩔 수 없이 제출해야 하는 경우, 일부 범위라도 은폐하고자 하는 유혹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당사자들에게는 그러한 유혹이 더욱 크게 다가올 것입니다. 소송 진행 과정에서 타인 명의로 된 문서를 섣불리 수정하거나 변경하여 새로운 증명력을 작출하는 행위로 나아가지 않도록, 신중한 법적 조언이 요구된다고 하겠습니다.
5. 다운로드 :
대법원 2011. 9. 29. 선고 2010도145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