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위 사건 심리에 참여한 3인의 대법관은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받을 당시에 반대채권과 피압류채권 모두의 이행기가 도래한 때에는 제3채무자가 당연히 반대채권으로써 상계할 수 있고, 반대채권과 피압류채권 모두 또는 그 중 어느 하나의 이행기가 아직 도래하지 아니하여 상계적상에 놓이지 아니하였더라도 그 이후 제3채무자가 피압류채권을 채무자에게 지급하지 아니하고 있는 동안에 반대채권과 피압류채권 모두의 이행기가 도래한 때에도 제3채무자는 반대채권으로써 상계할 수 있고, 이로써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신청한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반대의견을 내놓았습니다.
3. 해결
전원합의체 판결이란 14인으로 구성된 대법관 중 3분의 2이상의 정원으로 구성된 합의체가 판단한 판결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전원합의체 판결은 기존의 판결을 변경하는 판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법원조직법 제7조에 의하면, 반드시 전원합의체의 판단에 의하도록 정해 놓은 사건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건을 미리 심리한 3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부’에서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 경우 전원합의체 판결을 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판례를 그대로 따른 판결이라고 하더라도 반대의견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전원합의체에서 판결을 합니다. 본 사안이 바로 그러한 경우입니다.
채권이 압류된 경우 피압류채권(수동채권)의 제3채무자가 상계로서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제3채무자가 가진 반대채권(자동채권)이 압류 당시 이미 성립해 있어야 함은 물론 반대채권의 변제기가 피압류채권의 변제기보다 먼저 도래하거나 적어도 동시에 도래해야 한다는 것이 기존에 확립되어 있던 대법원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에 대하여 반대의견은 제3채무자가 압류 당시 반대채권을 보유하고 있기만 하다면 그 이행기와 상관없이 상계적상이 도래한 때 상계를 할 수 있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압류 채권의 상계를 금하는 민법 제498조는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받은 후 취득한 채권에 의한 상계만 금지하고 있으므로, 기존 판례가 제시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행기의 선후 관계를 따질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입장의 차이는 결국 반대채권의 존재로 상계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던 제3채무자와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신청한 채권자 중 누구를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반대의견은 지급금지 명령을 신청한 채권자의 지위는 원래부터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것인 반면 제3채무자는 담보권자와 유사한 지위를 가지므로, 제3채무자의 상계권 행사가 우선 보장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의견을 지지하는 보충의견은 제3채무자의 반대채권의 이행기가 피압류채권의 이행기보다 늦게 도래하는 경우까지 상계를 허용한다면 제3채무자는 피압류채권을 기한 내에 변제하지 않는 상계적상에 도달한 경우에도 제3채무자를 우선 보호하게 되는데, 이와 같이 채무불이행을 한 제3자까지 지급명령을 신청한 채권자보다 우선하여 보호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일반 채권자들은 대등한 지위에서 변제를 받는 것이 원칙인데, 반대채권을 보유하였다는 이유로 담보권자와 유사한 강력한 변제권을 인정하는 것이 과연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또한 이를 인정할 경우 제때 변제되어 일반 채권자들의 책임재산에 포함되었을 반대채권의 채권액이 변제되지 않는 채무불이행 상태가 조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의견보다는 다수의 견해가 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판례는 특수한 경우에는 위와 같은 원칙에 예외를 두어 형평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특수한관계에 있는 채권에 대하여는 상계권에 대한 기대를 가진 제3자를 강력하게 보호하기도 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상계라고 볼 수는 없지만, 임대인이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할 때 지체된 임료는 특별한 의사표시가 없더라도 당연히 공제된다는 판례의 법리가 그러한 예에 해당합니다(대법원 1999. 12. 7. 선고 99다50729 판결). 위 판결에 따르면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에 대한 가압류 또는 압류가 먼저 있었다고 하더라도 임대인은 그 후 건물 명도시까지 발생한 임료를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으며, 이러한 공제로 가압류 혹은 압류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1988. 1. 19. 선고 87다카1315 판결, 대법원 2004. 12. 23. 선고 2004다56554등). 또한 판례는 공사도급계약에서 미리 지급되는 선급금에 대한 반환채권과 공사대금 사이에서도 이와 유사한 법리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즉 선급금 반환 사유가 발생한 경우 반환될 선급금은 별도의 상계 의사표시 없이 미지급 기성공사대금에 충당되는 것으로 봅니다(대법원 2004. 6. 10. 선고 2003다 69713판결, 대법원 2010. 5. 13. 선고 2007다31211판결 등). 선급금은 공사대금을 미리 지급한 것에 불과하여 선급금 반환 사유가 발생할 당시 미지급 공사대금이 남아 있는 경우 공사대금에 당연히 충당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입니다. 명확한 대법원 판례는 보이지 않으나, 위 논리에 의한다면 공사대금 채권이 압류된 상태에서 선급금 반환사유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선급금 반환채권은 공사대금에 충당된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와 같이 판례는 피압류채권자의 제3채권자의 상계권은 반대채권의 이행기가 피압류채권의 변제기보다 먼저 도래하거나 동시에 도래한 경우에만 인정된다는 원칙을 세워 제3채권자의 상계권을 제한하면서도 특수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하여 형평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동안 판례는 예외를 인정하는 사례에 대하여는 그 이유를 상세하게 밝히는 한편 원칙적인 입장에 대하여는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었는데, 이번 판례를 통하여 기존 판례의 근거가 보다 분명해 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