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출입은행이 국내 기관 최초로 이슬람채권인 수쿡(Sukuk)의 발행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수쿡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또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전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자본시장에서 유럽과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면서 오일머니에 기초한 자본력으로 무장한 이슬람 금융은 세계시장에서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배경하에 많은 국가들이 이슬람 자금을 자국 내 투자에 유치하고, 이슬람 국가에 투자 진출을 도모하는 등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종교가 개인의 생활뿐만 아니라 상거래 및 금융기관과의 금융거래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슬람 문화의 특수성 때문에 이슬람 국가의 모든 금융상품 구조는 이슬람학자들로 구성된 샤리아위원회로부터 교리 부합 여부를 평가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샤리아위원회가 제시하는 금융상품의 기본원칙에는, 금전의 대여에 따른 이자의 수취 금지, 도덕적, 사회적, 종교적 판단에 부합되는 거래(술, 담배, 도박, 무기 등에의 투자 금지)일 것, 투기적 목적의 파생상품거래나 우발채무거래의 금지, 금융거래에 참여하는 자의 이익과 손실 공유 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슬람 금융을 통해 조달된 자금은 건전한 용처에 사용되도록 엄격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 역시 작년까지 이슬람채권인 수쿡의 발행을 통하여 이슬람 자금을 유치하기 위하여 조세특례제한법의 개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하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사실 샤리아에 부합하는 몇 가지 수쿡의 실질을 살펴보면, 일정한 재산을 별도의 특수목적법인(Special Purpose Company)에 매도하여 분리한 다음 그 자산을 기초자산으로 하여 사채를 발행하고 기초자산에서 발생한 매각수익이나 임대료 등으로 사채원리금을 지급하는 자산유동화증권(ABS)이나,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설정한 투자신탁에서 그 자금의 운용으로 인한 수익을 지급하는 수익증권과 매우 유사합니다. 이와 같이 수쿡의 경제적 실질은 사채 또는 수익증권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발행 과정의 거래구조는 실물 거래의 외형을 띄고 있기 때문에, 부가가치세나 취득세, 등록세의 부과는 물론, 법인세, 배당소득세 등의 징수 등 이중과세의 문제까지 대두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쿡 발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다한 조세는 수쿡의 수익성을 악화시켜 발행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기에,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고자 한 것이 작년 2월 발의된 수쿡 관련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었습니다. 사실 위 개정안에서 부여하고자 한 조세 혜택은, 내국법인이 외국법인에 발행하는 외화표시채권에 대해 이자소득에 대한 법인세를 면제하는 기존의 규정을 수쿡에도 동일하게 적용하는 정도였고, 수쿡 발행을 위하여 형식적으로 행하는 자산 매도와 재매도를 일반 실물거래와 달리 보아 부가가치세를 면제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개정안에는 "내국법인이 이자수수를 제한하는 종교상의 제약을 지키면서"라는 표현이 있어 마치 내국법인이 특정 종교의 교리를 지켜야 하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었고, 수쿡에서 발생한 수익 중 2.5%를 기부하도록 하는 이슬람의 자카트(Zakat) 규정은 수익금 일부가 테러단체로 흘러들어 갈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일부 기독교계의 반발을 증폭시켜 개정안에 대한 강력한 반대 여론이 형성되었습니다. 결국 수쿡에 대해 조세 혜택을 부여하려던 위 개정안은 작년 임시국회를 통과되지 못하였고, 이후 위 개정안을 보완하여 재추진하겠다는 청와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법 개정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제금융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해외자금조달원의 확보를 빼놓을 수 없는데, 자본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이슬람 자금의 유치를 포기하는 것은 매우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은 이미 수쿡을 수용하고 발행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바, 국제금융시장의 주도권 확보에 있어 출발선부터가 달라지고 있는 셈입니다.
1961년 제정 후 거의 개정되지 않았던 신탁법이 작년 전면 개정되어 올 7월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개정 신탁법 하에서는 위탁자가 신탁 선언에 따라 스스로 수탁자가 될 수 있는 자기신탁이 허용되고, 모든 종류의 신탁에서 수익증권 발행이 가능해지며, 신탁에서도 사채를 발행할 수 있게 됩니다. 개편된 신탁제도는 업계의 요구를 반영한 것에 그치지 않고, 신탁을 금융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적극적으로 이용 가능한 새로운 금융기법으로 격상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신탁의 수익증권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수쿡 역시, 그 종교적 색채로 인한 선입견에서 벗어나 현실적으로 이용 가능한 금융상품의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한 사회분위기와 법률적 토대가 만들어지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