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해설
민법 제405조 제2항은 ‘채무자가 채권자대위권행사의 통지를 받은 후에는 그 권리를 처분하여도 이로써 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위 조항의 취지는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대위권 행사 사실을 통지하거나 채무자가 채권자의 대위권 행사 사실을 안 후에 채무자에게 대위의 목적인 권리의 양도나 포기 등 처분행위를 허용할 경우, 채권자에 의한 대위권행사를 방해하는 것이 되므로 이를 금지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종전에 대법원은 제3채무자인 원고가 채권자인 피고의 채권자대위권 행사에 의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의 이행을 구하는 종전 소송의 재파기환송 후 그 청구를 인용한 항소심판결에 대하여 상고를 제기하여 그 사건이 상고심에 계속되어 있던 중에, 채무자에게 반대의무의 이행을 최고하였으나 채무자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여 원고로 하여금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한 것 역시 채무자가 원고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처분하는 것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므로 이를 채권자인 피고에게 대항할 수 없고, 그 결과 제3채무자인 원고 또한, 그 계약해제로써 피고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03. 1. 10. 선고 2000다27343).
그러나 이러한 기존 대법원 판례는 (i)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의 가압류나 압류가 행하여지면 제3채무자로서는 채무자에게 등기이전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되고, 그와 같은 행위로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할 것이나, 가압류나 압류에 의하여 그 채권의 발생원인인 법률관계에 대한 채무자와 제3채무자의 처분까지도 구속되는 것은 아니므로 기본적 계약관계인 매매계약 자체를 해제할 수 있다는 법리에 부합하지 않습니다(대법원 2000. 4. 11. 선고 99다51685 판결). 또한 기존 대법원 판례에 대해서는 (ii) 채무자와 제3채무자가 자발적인 의사표시를 통해 합의해제를 하는 경우에는 채권자를 해할 의사로서 처분행위에 해당된다고 인정될 수 있으나, 법정해제는 채무자의 객관적인 채무불이행에 대한 제3채무자의 정당한 권리행사라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채권자대위권의 행사로 인하여 제3채무자의 정당한 권리행사인 해제권의 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대법원은 (i) 채무자의 채무불이행 사실 자체만으로는 권리변동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아 이를 채무자가 제3채무자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을 소멸시키는 적극적인 행위로 파악할 수 없는 점, (ii) 더구나 법정해제는 채무자의 객관적 채무불이행에 대한 제3채무자의 정당한 법적 대응인 점, (iii) 채권이 압류ㆍ가압류된 경우에도 압류 또는 가압류된 채권의 발생원인이 된 기본계약의 해제가 인정되는 것과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채무자가 자신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이 해제되도록 한 것을 두고 민법 제405조 제2항에서 말하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한 것입니다.
다만, 대법원은 형식적으로는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채무자와 제3채무자 사이의 합의에 따라 계약을 해제한 것으로 볼 수 있거나, 채무자와 제3채무자가 단지 대위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하는 계약해제인 것처럼 외관을 갖춘 것이라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피대위채권을 처분한 것으로 보아 제3채무자는 계약해제로써 대위권을 행사하는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예외를 인정하여 형평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법리는 제3채무자는 채권에 대한 가압류가 있은 후라고 하더라도 채권의 발생원인인 법률관계를 합의해제하고 이로 인하여 가압류채권이 소멸되었다는 사유를 들어 가압류채권자에 대항할 수 있지만, 채무자와 제3채무자가 아무런 합리적 이유 없이 채권의 소멸만을 목적으로 계약관계를 합의해제 한다는 등의 특별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하는 채권 가압류 법리와도 일맥 상통합니다(대법원 2001. 6. 1. 선고 98다17930 판결).
이번 대법원의 판시는 제3채무자의 법정해제권 행사를 과도하게 제한한 기존의 판례와 비교하여 민법 제405조 제2항의 취지에 더 부합하고, 채권자와 제3채무자 사이의 이해관계의 조화를 고려했다는 점에서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