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무계약에서 일방 당사자의 자기 채무에 관한 이행의 제공을 엄격하게 요구하면 오히려 불성실한 상대 당사자에게 구실을 주는 것이 될 수도 있으므로 일방 당사자가 하여야 할 제공의 정도는 그 시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게 합리적으로 정하여야 하고, 따라서 매수인이 잔대금의 지급 준비가 되어 있지 아니하여 소유권이전등기서류를 수령할 준비를 안 한 경우에는 매도인으로서는 그에 상응한 이행을 하면 족하다."
위 판례의 사실관계를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2009년 8월 5일 : 원고(매수인, 이하 ‘원고’)와 피고(매도인, 이하 ‘피고’)가 부동산 매매계약(대금 130억 원, 잔금지급기일 2009년 10월 3일)을 체결하고, 원고가 피고에게 계약금 13억 원을 지급함.
2009년 10월 3일 : 원고가 피고에게 잔금을 지급하지 못함.
2009년 10월 6일 : 피고가 원고에게 ① 잔금 지급을 최고하고, ② 잔금 미지급 시 매매계약을 해제한다고 통지함.
2009년 10월 20일 : 피고가 원고의 잔금지급기일 연장 요청을 거절하고, 조속히 잔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해제절차를 진행하겠다고 재차 통지함.
2009년 11월 15일 : 피고가 원고에게 잔금미지급을 이유로 매매계약을 해제한다고 통지함.
2009년 12월 4일 : 피고가 원고에게 잔금미지급을 이유로 매매계약을 해제한다고 통지함(2차 통지).
2010년 4월 16일 : 원고가 피고에게 2010년 5월 말까지 잔금지급기일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함.
2010년 4월 30일 : 피고가 원고에게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등기권리증 등 소유권이전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준비하여 둔 상태이므로 2010년 5월 31일까지 이 사건 매매계약에 따라 잔금 및 그 지연이자를 지급하고 소유권이전등기 및 부동산을 인도받고 만약 위 일시까지 잔금지급의무를 게을리하는 경우에는 위 일시를 경과함으로써 이 사건 매매계약은 해제된다.”라고 통지함.
2010년 5월 31일 : ① 원고는 잔금을 지급하지 못함. ② 피고는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제반 서류는 준비하고 있었으나, 부동산 매도용 인감증명서는 발급받지 않은 상태였음.
2010년 6월 1일 : 피고가 부동산 매도용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아 제3자에게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 경료함.
3. 쟁점 및 법원의 판단
피고(매도인)가 부동산 매도용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지 않은 상태에서 원고(매수인)에게 잔금 지급을 요청한 것이 적법한 최고인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이에 관하여 항소심은 “부동산 매매계약에 있어서 매수인이 잔대금지급기일까지 그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면 그 계약이 자동적으로 해제된다는 취지의 약정이 있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수인의 잔대금지급의무와 매도인의 소유권이전등기의무는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으므로 매도인이 잔대금지급기일에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여 매수인에게 알리는 등 이행의 제공을 하여 매수인으로 하여금 이행지체에 빠지게 하였을 때에 비로소 자동적으로 매매계약이 해제된다고 보아야 하고 매수인이 그 약정기한을 도과하였더라도 이행지체에 빠진 것이 아니라면 대금미지급으로 계약이 자동해제된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1992. 10. 27. 선고 91다32022 판결).”는 원칙을 강조하면서, “피고는 2010. 4. 30.자 통지 당시에 그 통지내용과 다르게 사실은 소유권이전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준비하여 둔 것이 아니었으므로 피고의 위 통지는 부적법하여 효력이 없다.”는 논리로 2010년 5월 31일이 도과됨으로써 매매계약이 자동으로 실효(또는 해제)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대법원은 “원고는 피고가 잔금지급기일로 최종 통보한 2010. 5. 31.까지도 잔금지급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원고의 이러한 약정의무 불이행 정도에 비추어 보면 피고가 비록 2010. 5. 31.까지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 중 부동산 매도용 인감증명서만을 발급받지 않고 있었더라도 이는 언제라도 발급받아 교부할 수 있는 것이므로 원고에게 소유권이전등기의무에 대한 이행의 제공을 마쳤다고 보아야 하고, 따라서 피고가 2010. 4. 30. 원고에게 통지한 위와 같은 조건부 해제의사표시에 기하여 이 사건 매매계약은 2010. 5. 31.까지 원고가 잔금지급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함으로써 적법하게 해제되었다.”고 판단하고 원심 판결을 파기했습니다.
4. 시사점
매매계약을 해제하려는 당사자는 쌍무계약 및 동시이행관계의 법리에 따라 채무 이행에 관한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채무 이행을 최고해야 합니다. 매매계약이 일방의 의사에 따라 부당하게 종료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법리인데, 위 법리에 따라 계약을 해제할 필요가 있는 당사자가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못함으로써 채무를 이행하지 못한 상대방을 상대로 아무런 법적인 주장을 하지 못하는 낭패를 겪기도 합니다.
저희 법무법인이 수행한 이 사건에서도 매도인이 부동산 매도용 인감증명서를 구비하지 못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위와 같은 준비 부족을 문제 삼아 적법한 최고가 없었다고 판단했습니다. 피고는 예비적으로 “원고는 8개월 정도 잔대금의 지급을 유예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잔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은 반면, 피고는 발급에 그다지 어려움이 없는 부동산 매도용 인감증명서를 준비하지 않은 것이어서, 그 위반의 정도에 비추어 중대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원고가 사소한 의무를 위반한 피고에 대하여 동시이행을 주장하는 것은 공평의 원칙이나 신의칙에 비추어 허용될 수 없다.”라고 주장했으나, 항소심 법원은 “매도인이 준비해야 하는 소유권이전등기서류 중에서 부동산매도용인감증명서를 제외한 나머지 서류들(인감도장과 등기권리증 등)은 매도인의 수중에 있는 것이고 오로지 부동산매도용인감증명서만이 매도인이 이행의 제공을 하였는지를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서류이다.”라는 이유로 피고의 주장을 배척했습니다.
비록 저희 법무법인이 상고심을 수행하면서 항소심 판단의 위법을 적절하게 주장하여 파기환송 판결을 이끌어 내었으나, 위 판결로 “매도인이 잔금 지급을 최고할 때에는 부동산 매도용 인감증명서를 구비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라는 일반적인 법리가 성립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매매계약을 적법하게 해제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법리적으로 검토해야 할 여러 쟁점 및 절차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법률적으로 충분한 사전 검토를 거쳐 필요한 준비를 갖추고 상대방에게 적절한 방법으로 통지를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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