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안의 쟁점
원고의 아버지는 자신의 토지를 인근 주민이 통행할 수 있도록 무상으로 제공하였습니다. 그 후 위 토지는 분할되어 원고가 그 중 일부를 상속받았습니다. 그런데 피고 서울특별시는 원고의 토지 위에 천호대로를 개설하고도 원고에게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원고는 피고에게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을 청구하였고, 피고는 원고의 배타적 사용수익권이 상실되었으므로 차임을 지급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사건의 쟁점은 (1) 토지소유자가 자신의 토지를 일반 공중의 통행로로 무상제공한 경우 사용수익권 자체를 대세적ㆍ확정적으로 상실하는지, (2) 토지이용상태에 중대한 변화가 생기는 등 객관적인 사정이 현저히 변경된 경우 토지소유자가 다시 완전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지입니다.
2. 판결의 내용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습니다.
(1) “토지소유자가 그 소유 토지를 일반 공중의 통행로로 무상제공하거나 그에 대한 통행을 용인하는 등으로 자신의 의사에 부합하는 토지이용상태가 형성되어 그에 대한 독점적ㆍ배타적 사용ㆍ수익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는 경우에도, 이는 금반언이나 신뢰보호 등 신의성실의 원칙상 그 기존의 이용상태가 유지되는 한 토지소유자는 이를 수인하여야 하므로 배타적 점유ㆍ사용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한 손해를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할 수 없는 것일 뿐이고, 그로써 소유권의 본질적 내용인 사용ㆍ수익권 자체를 대세적ㆍ확정적으로 상실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것은 아니다.”
(2) “그 후 토지이용상태에 중대한 변화가 생기는 등으로 배타적 사용ㆍ수익권을 배제하는 기초가 된 객관적인 사정이 현저히 변경된 경우에는, 토지소유자는 그와 같은 사정변경이 있은 때부터는 다시 사용ㆍ수익권을 포함한 완전한 소유권에 기한 권리주장을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때 그러한 사정변경이 있는지 여부는 당해 토지의 위치와 물리적 성상, 토지소유자가 그 토지를 일반 공중의 통행에 제공하게 된 동기와 경위, 당해 토지와 인근 다른 토지들과의 관계, 토지이용 상태가 바뀐 경위 및 종전 이용상태와의 동일성 여부 등 전후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할 것이다.”
3. 해설
토지 소유자는 원칙적으로 자신의 토지에 대하여 독점적ㆍ배타적 사용ㆍ수익권을 가집니다(민법 제211조). 이에 기초하여 해당 토지를 사용ㆍ수익하려는 자는 토지 소유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토지 소유자는 자신의 토지를 사용ㆍ수익하는 자에게 차임을 청구하거나 퇴거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민법 제213조, 제214조). 예외적으로 해당 토지가 공로로 연결되는 유일한 방법일 경우에는 토지 소유자의 사용ㆍ수익권이 제한되어 인근 주민은 토지 소유자의 허락 없이도 해당 토지를 통행로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경우에도 토지 소유자는 토지를 통행로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 사안에서 원고의 아버지는 40년 동안 인근 주민에게 손해를 청구하지 않고 오히려 무상으로 사용하도록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장기간 이용된 상황을 고려하여 법원은 신의성실의 원칙상 기존의 이용상태가 유지되는 한 원고가 이를 수인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피고는 위 토지를 기존 이용상태와 달리 왕복 10차로의 도로 중 일부로 사용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피고는 위 도로에 편입된 인접 택지 소유자들에게는 손실을 보상하였으나, 정작 원고에게는 이 사건 토지가 원래 주민들의 통행로로 제공되었다는 이유로 아무런 보상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원고의 아버지가 선의로 통행로 이용을 허락했는데 오히려 인접 택지 소유자들보다 불리하게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원고에게 꽤 불합리하게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법원은 사용ㆍ수익을 허락한 전제가 중대하게 변경된 경우에는 소유자가 독점적ㆍ배타적 사용ㆍ수익권을 다시 행사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본 판결에서 볼 수 있듯이 토지소유자는 선의로 통행로를 제공하더라도 그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었을 때는 사용ㆍ수익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해당 통행로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 때는 원래대로 독점적ㆍ배타적 사용ㆍ수익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