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자라면 무조건 환영받고 고액예금자는 은행의 VIP 고객이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예금은 은행의 가장 중요한 자금 공급원 중 하나라는 점은 변함이 없지만 이제 은행이 예금자를 무조건 환영할 수만은 없게 되었습니다. 고객확인의무(Customer Due Diligence)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에 위반할 경우 자금세탁에 관여하였다는 혐의로 천문학적인 숫자의 벌금을 부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금세탁방지 관련 규제는 조직범죄, 마약범죄 등 반사회적인 중대범죄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범죄자금의 흐름을 차단하여야 한다는 인식에 근거하여 마련되었고 특히 9ㆍ11 사태 이후에는 국제 테러조직의 자금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급속하게 발전하였습니다. 특히 최근 글로벌 은행들이 자금 세탁 혐의로 미국 정부에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벌금을 내는 사례들이 발생하면서 금융회사들에게 자금세탁방지 제도는 단순히 번거로운 규제들 중 하나가 아니라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힐 수 있는 중요한 변수가 되었습니다. 최근 미국 최대 은행 중 하나인 JP Morgan Chase가 미국에 주재하는 해외 외교관들의 은행 계좌를 일방적으로 폐쇄하는 조치를 취한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봐 오던, 계좌 유치를 위하여 고객들을 찾아다니던 은행의 모습과는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이 또한 은행이 관련 계좌를 유지하면서 얻는 이익에 비하여 그러한 계좌에 관련된 자금세탁방지 관련 법규를 준수하는 데에 드는 비용(compliance cost), 그리고 만에 하나 관련 법령에 위반함으로써 자금세탁혐의로 납부하여야 하는 벌금의 액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 9월 27일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과 범죄 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고 그 해 11월 28일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정부 기관으로 금융정보분석원(Korea Financial Intelligence Unit)이 출범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자금세탁방지 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또한 2008년 12월 22일에는 공중 등 협박 목적을 위한 자금조달행위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시행함으로써 공중협박자금(테러자금)조달금지 제도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자금세탁방지 제도는 혐의거래보고제(Suspicious Transaction Report)와 고액현금거래보고제(Currency Transaction Report)가 주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혐의거래보고제는 수수(授受)한 재산이 불법재산이라고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거나 금융거래의 상대방이 자금세탁행위를 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는 경우 등 의심스러운 거래를 금융회사가 금융정보분석원장에게 보고하는 제도입니다. 이와 같이 혐의거래보고제는 자금세탁행위라고 의심될 만한 상황의 유무(有無)라는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하는 반면, 고액현금거래보고제는 몇몇 예외적인 거래를 제외하고는 2천만 원 이상의 현금을 지급하거나 수수하는 경우에는 무조건 금융정보분석원장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2008년에는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면서 고객확인제도(Customer Due Diligence/ Know Your Customer)를 도입하여, 고객이 계좌를 신규로 개설하거나 2천만 원(외국환거래인 경우에는 미화 1만 달러) 이상의 일회성 금융거래를 하는 경우 금융회사는 당사자의 신원을 확인하도록 하였고, 실제 거래당사자 여부가 의심되는 등 고객이 자금세탁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금융회사가 실제 당사자 여부와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하도록 하였습니다. 문제는 고객이 이러한 확인에 응하지 않은 경우 또는 계좌 개설 후 고객에 대하여 변동사항이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 금융회사가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인지 하는 점입니다. 위에서 본 JP Morgan Chase의 사례에서와 같이 자금세탁방지 행위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계좌 개설 후 상당 기간 당사자에 대한 사항이 업데이트되지 않았다는 사유로 금융회사가 고객의 동의 없이 계좌를 폐쇄할 수 있는지가 금융회사와 고객의 관계에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리법인이 법인 명의로 계좌를 개설한 후 거래를 하다가 폐업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좌 폐쇄를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 또는 개인이 이민 등으로 해외로 이주하면서 국내 은행에 개설된 계좌를 폐쇄하지 않는 경우에는 금융회사로서는 고객에게 연락을 할 수 없어 고객의 변동사항을 업데이트할 수 없는 사례가 발생합니다. 특히 이러한 휴면계좌의 경우에는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회사가 이를 폐쇄할 권한이 없다면 고객확인이 되지 않은 계좌를 방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OECD 산하 기구로서 자금세탁방지와 관련하여 국제적인 규범을 제정하고 있는 FATF-GAFI(Financial Action Task Force on Money Laundering)는 정하여진 고객확인절차에 따른 고객확인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해당 확인의무주체는 사업관계를 종료하여야 하며, 당해 고객에 대해서는 혐의거래보고를 고려할 것을 권고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자금세탁행위에 대한 위험성이 미국 등 서구에 비하여 크게 부각되지 않았고 고객의 민원 제기 우려 등 영업적인 고려 때문에 금융회사가 고객의 계좌 개설을 금지하거나 이미 개설된 계좌를 폐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습니다. 관련 법령에서도 고객확인 조치를 하지 않은 금융기관에 대한 과태료만 규정하고 있었을 뿐 고객확인절차에 협조하지 않는 고객에 대하여 금융회사가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계좌 개설 금지나 계좌 폐쇄가 부당한 거래 거절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 1일 국회를 통과한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서는 FATF-GAFI의 권고를 받아들여 고객이 신원확인 등을 위한 정보 제공을 거부하여 금융회사가 고객확인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계좌 개설 등 당해 고객과의 신규 거래를 거절하고, 이미 거래관계가 수립되어 있는 경우에는 해당 거래를 종료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또한 이와 같이 거래를 거절 또는 종료하는 경우 금융회사는 혐의거래보고 여부를 검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고객확인의무의 대상도 확대하여 단순히 금융거래를 하는 고객의 신원뿐만 아니라 고객을 최종적으로 지배하거나 통제하는 실제 소유자에 대한 사항도 확인하도록 하였습니다. 나아가 고객이 자금세탁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금융거래의 목적뿐만 아니라 거래자금의 원천까지 확인하도록 하였습니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내 돈을 예금하면서 금융회사의 확인을 받아야 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거래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불편하고 때로는 부당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금의 국제적인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범죄자금의 유입은 더 이상 먼 나라의 일이라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금융회사의 고객 또한 금융회사들의 고객확인이 번거로운 것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며, 범죄 방지라는 목적에 기여하는 것으로서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태도가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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