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오래 전부터 통상의 의제로 들어왔습니다. 이를 노동과 통상의 연계라고 합니다. 선진국들은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저임금으로 생산된 제품을 수출하는 것은 사회적 덤핑이며 불공정 무역행위라고 보아 노동을 무역과 연계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권 보호를 목적으로 내세우지만 자국의 경제적 이해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체결한 FTA(자유무역협정) 중 노동 의제가 포함된 경우는 10여건에 이릅니다. 대표적으로 한ㆍ미 FTA에는 노동 챕터가, 한ㆍEU FTA의 지속가능성 챕터 안에는 노동규정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노동법의 면제, 이탈, 미집행을 금지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결사의 자유, 단체교섭권, 강제노동 철폐, 아동노동 폐지, 고용상 차별 철폐 등을 요구합니다.
FTA와 같은 통상협정은 국가간 협약이므로 국가에게 의무를 부과할 뿐 개별 기업이 당사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FTA 노동조항과 관련된 대표적 분쟁으로는 EU와 우리나라 사이의 사례가 있습니다. EU는 2019년 7월 우리나라가 한-EU FTA 노동규정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면서 전문가 패널 소집을 요청했습니다. EU는 우리 노동조합법의 근로자 개념에 자영업자, 해고자, 실업자가 포함되지 않은 것 등을 문제로 제기했습니다. 당시 EU가 체결한 74개 FTA 체결국 가운데 노동조건 위반을 이유로 전문가 패널을 소집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었습니다. 전문가 패널은 조사와 심의 끝에 한국이 협약을 일부 위반했다고 결정하고 시정을 권고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ILO 핵심협약 3개를 비준했고 노동조합법을 개정하였습니다.
FTA는 개별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더욱 발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캐나다, 멕시코 사이의 FTA인 USMCA(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는 노동규정을 크게 강화했습니다. 협정당사국은 상품의 생산ㆍ가공ㆍ수선 과정에서 ‘강제노동’이 활용된 경우 해당 상품의 수입을 금지해야 합니다. 특별한 노동분쟁 해결절차인 ‘특정사업장 신속대응 노동 메커니즘’(Facility-Specific Rapid Response Labor Mechanism)도 도입했습니다. 개인, 단체, 노동조합이 조사 및 구제 등을 청원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계속 강화되어, 미국이 주도하고 우리도 참여하고 있는 인도ㆍ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서는 ‘높은 노동기준을 충족하는 무역’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제안되고 있다.
FTA의 노동분쟁 해결방법
개별국가의 법률로 노동을 통상과 연계시키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법률들은 기업에 직접 법적 효과를 미칩니다. 미국의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Uyghur Forced Labor Prevention Act, UFLPA)과 EU의 ‘EU 시장에서의 강제노동 결부상품 금지에 관한 규정안’(Proposal for a Regulation of the European Parliament and of the Council on prohibiting products made with forced labour on the Union market)이 그것입니다.
포문을 연 것은 미국의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입니다. 그 동안 언론과 인권단체들은 중국의 신장지역에 세워진 직업기술교육 훈련센터가 소수민족을 구금하여 강제노동을 시키고 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2021년 12월에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고, 2022년 6월 21일부터 시행된 이 법은 그야말로 초강경의 법입니다.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이하 ‘신장지역’)에서 채굴, 생산, 제조된 모든 상품을 강제노동에 의해 생산되었다고 추정하여 미국 내 수입을 금지합니다. 기존에도 미국 관세법 제307조에 따라 강제노동과 결부된 상품의 통관을 금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관세법에서는 강제노동의 입증책임을 당국에 부과하고 있습니다. 당국은 조사를 거친 후 혐의가 인정된 경우에 한하여 인도보류명령(Withhold Release Order, WRO)을 통해 반입을 금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에 따르면 신장지역에서 전부 또는 일부라도 생산된 상품은 원칙적으로 미국 반입을 금지합니다. 관세당국의 조사나 처분(WRO)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입업자가 예외 요청을 하면서 당해 상품 또는 부품이 강제노동으로 채굴, 생산, 제조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EU도 2022년 9월 ‘EU 시장에서의 강제노동 결부상품 금지에 관한 규정안’을 발표하였습니다(이 규정안은 EU의회 및 이사회의 승인을 남겨두고 있어서 2023년 하반기 이후 입법절차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EU 법률안은 미국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과 상당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적용대상부터 보자. EU 법률안은 상품의 원산지, 기업이 설립된 국가, 산업분야 또는 상품 종류와 무관하게 강제노동이 결부된 상품에 모두 적용됩니다. 중국뿐 아니라 다른 지역이라도 적용됩니다. 강제노동이 공급망의 어느 단계라도 부분적으로 결부된 경우라면 대상이 됩니다. 특정 국가, 특정 기업에만 효과가 미치는 것이 아니므로 EU 안에서 상품을 출하하거나 EU 역내로 상품을 수ㆍ출입하는 모든 개인과 기업에 적용됩니다.
강제노동에 관한 입증책임은 관세당국에게 있습니다. EU 회원국은 예비단계를 거쳐 조사를 한 이후에 강제노동이 결부되었다고 인정되는 경우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조치는 통관보류, 수출입금지 뿐 아니라 상품의 역내유통을 금지하고 이미 유통 중인 상품의 회수 및 폐기명령도 가능합니다. 행위자가 관련 규정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벌칙도 내려집니다. EU 집행위는 강제노동의 실효적 금지를 위하여 (1) 관련 가이드라인 및 강제노동 위험도 지표 제공, (2)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유지, (3) 강제노동 상품에 반대하는 연합 네트워크(Union Network Against Forced Labour Products) 플랫폼 구축 등을 함께 추진합니다.
강제노동 관련 EU 규정안과 미국 규제의 비교
분류 |
EU |
미국 |
관세법 |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 |
규제대상
상품범위 |
ㆍ수입 + 수출상품, 역내상품(국경규제X) |
ㆍ수입상품(국경규제) |
ㆍ수입상품(국경규제) |
대상상품
특정 여부 |
ㆍ특정 상품으로 국한되지 않음
ㆍ다만 집행위는 강제노동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상품을 식별할 예정(섬유산업, 광업, 농업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는 입장) |
ㆍ특정 상품으로 국한되지 않음. 모든 상품ㆍ물품에 적용 |
ㆍUFLPA: 특정 상품으로 국한되지 않음. 다만 집행 우선순위 부문 목록 규정(면화, 토마토, 폴리실리콘 + 의류) |
대상지역
특정 여부 |
ㆍ특정 지역으로 국한되지 않음. 원산지를 불문하고 상품에 적용
ㆍ다만 집행 우선순위를 집행위가 식별 예정 |
ㆍ특정 지역으로 국한되지 않음. 원산지 불문하고 수입상품에 적용 |
ㆍ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를 특정. 해당 자치구로부터 완전하게 또는 부분적으로 생산되는 상품에 반박가능한 추정 적용 |
대상기업
특정 여부 |
ㆍ특정 기업으로 국한되지 않음
ㆍ다만 대기업이 집행 우선순위가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음 |
ㆍ특정 기업으로 국한되지 않음 |
ㆍ대상기업 목록에서 기업 특정. 동 목록에 포함된 기업에 반박가능한 추정 적용 |
권한당국 |
ㆍ각 EU 회원국이 권한당국 지정 |
ㆍ관세국경보호청(CBP) |
ㆍ관세국경보호청(CBP) |
입증책임 |
ㆍ권한당국이 위반에 대한 입증책임 부담 |
ㆍCBP가 확보한 정보가 해당 상품이 강제노동에 의해 생산되었음을 "확정적이지는 않으나 합리적으로" 보여주는지 여부에 대한 입증책임을 CBP가 부담 |
ㆍ대상상품의 수입업자가 강제노동 결부 상품이 아님을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를 통해 증명할 입증책임 부담 |
조사결과ㆍ집행내용 |
ㆍ권한당국은 △ 상품의 EU 내 판매 및 EU역외 수출 금지 △ 상품이 이미 유통 중인 경우, 회수 명령 △ 상품 폐기 명령을 포함하는 결정 발급
ㆍ결정에 대해 15 근무일 이내에 재심 요청 가능 |
ㆍCBP가 WRO 발급 (3개월 이내 이의제기 가능) |
ㆍ동 법의 적용범위에 해당되거나 또는 반박가능한 추정에 대한 예외를 인정받지 않는 한, CBP는 해당 상품을 통관보류 후 수입배제ㆍ압수ㆍ몰수. 예외 요청이 기각되는 경우, 수입업자는 이의신청 가능 |
기업
실사의무
여부 |
ㆍ경제행위자의 금지의무 위반이 없었음을 증명하는 데 반드시 요구되는 의무는 아니지만, 위반 가능성 평가를 위한 참고 요소 |
|
ㆍ수입업자가 수입상품이 강제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공급망 전반에 걸친 기업실사, 실효적인 공급망 추적, 공급망 관리 조치의 시행이 요구됨 |
※ 자료: 이천기, 「무역과 노동의 연계에 관한 글로벌 규범 현황과 시사점」, KIEP 연구자료 22-09, 2022, 181-182면
통상 강제노동이라고 하면 폭행ㆍ협박을 통해 노동을 강제하는 것으로 좁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국제규범의 정의는 생각보다 넓습니다. 폭행ㆍ협박 외에도 조작된 부채, 신분증 압수, 이민당국에의 고발 위협과 같은 간접적인 위협에 의한 비자발적 노동도 강제노동에 해당합니다.
노동과 무역을 연계시키는 시도는 강제노동 외에도 아동노동, 고용상 차별, 그 밖의 노동권으로 확대될 전망입니다. 당장 불똥이 떨어진 강제노동 또는 아동노동은 한국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공급망 전체에 강제노동 또는 아동노동이 사용되고 있는지 점검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이른바 실사(due diligence)가 필요합니다. EU는 ‘사업장 및 공급망 내에서의 강제노동 식별을 위한 실사 가이던스’를 2021년 7월 발표했습니다. 여기서는 아래와 같은 방법론을 제시합니다.
강제노동의 위험에 맞춰 정책과 관리 시스템을 조정합니다. 여기에는 강제노동에 대한 무관용 정책, 내부고발자 보호 등이 포함됩니다. 국제 노동법이 준수되지 않는 국가와 거래하거나 강제부채의 위험 요인이 있는 공급망에서 조달할 때는 ‘위험 신호’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독립적인 공급망 평가가 이루어지고 특히 안전한 환경에서의 근로자 인터뷰 등을 통해 위험 평가를 강화하여야 합니다. 재정적 지원을 포함하여 공급업체가 노동조건을 시정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