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안의 개요
가. 쟁점
구 주택건설촉진법(이하 '주촉법')에 따라 설립되었다가 2003년 7월 1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으로 도시정비법에 따라 등기를 마친 조합의 조합장이 조합원 총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고 감정평가업무에 대한 계약을 체결한 사안입니다. 정관상 조합장 대표권의 제한을 위반한 계약의 효력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항소심과 결론은 동일하지만, 대법원은 대표권 제한의 요건을 다르게 판단하여 '대표권 제한을 등기하지 아니하면, 선악을 불문하고 대표권 제한의 효력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조합장 대표권 제한 관련 유사 사례에서의 법리와 비교하면서 살펴보겠습니다.
나. 기존 판례 분석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 제24조 제3항 제5호에 의하면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의 부담이 될 계약'에 대하여 조합원 총회 결의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업진행 중 비용부담이 포함된 모든 계약에 대하여 사전에 총회 결의를 받는 것이 쉽지 않고, 총회 개최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도시정비사업 관련 분쟁에서 위 조항의 적용범위 및 효력은 자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예산'과의 관계에서 대법원 2011. 4. 28. 선고 2010다105112 판결은 도시정비법에 의해 설립된 재건축정비사업조합이 조합원 총회 결의를 거치지 아니하고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의 부담이 될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그 효력이 없다고 전제하였습니다. '예산'과 관련하여 통상 예비비 항목의 예산으로 지출되어 온 업무에 대한 지출 내지 계약 체결이라고 하더라도 총회 의결 없이 예산으로 정해진 예비비의 범위를 벗어나서 집행할 수 없으므로, 원심은 예산으로 정해진 예비비 항목이 이미 모두 지출되어 소진된 상태에서 용역계약이 체결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심리하였어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통상 특정 계약에 따른 비용부담이 예비비 항목의 예산으로 지출되었더라도, 예비비가 모두 소진된 상태에서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조합원 총회 결의가 필요하다는 취지입니다.
'계약'의 범위와 관련하여, 소위 '반포자이 사건'인 대법원 2012. 3. 15. 선고 2011다95779 판결에서는 소송위임계약이 문제되었습니다. 도시정비법에 따라 설립된 조합 甲 조합이 시공사로 선정된 乙 주식회사와 일반분양분 아파트의 처분대금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귀속을 둘러싸고 다툼이 생기자 총회 결의 없이 丙 법무법인에 소송을 위임하여 약정금 등 청구소송을 제기하였고, 그 후 甲 조합의 조합장 丁이 제1심법원에 丙 법무법인의 소송행위를 추인하는 의사가 담긴 서면을 제출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丁이 조합을 대표하여 소를 제기하는 행위가 도시정비법 및 조합규약에서 총회 결의를 거치도록 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달리 도시정비법과 민법 등에서 丁의 소 제기 등 재판상 행위에 관하여 대표권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적법한 소송대리권이 없다는 이유로 소를 각하한 원심을 파기하였습니다(위 사건의 조합은 구 주촉법에 따라 주택조합설립인가를 받은 조합임에도, 이에 관한 법리를 세부적으로 설시하지 않은 점에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도시정비법 시행 전에 계약이 체결된 경우와 관련하여, 대법원 2007. 4. 19. 선고 2004다60072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03. 7. 22. 선고 2002다64780 판결이 있습니다. 2004다60072 사건에서 재건축주택조합의 조합장이 2001년 1월 30일 시공사의 하수급인에 대한 하도급공사대금채무에 대하여 보증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다수의견은 비법인사단의 보증행위는 단순한 채무부담행위에 불과하여 이를 총유물의 관리ㆍ처분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전제하였습니다. 그리고 조합원 총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바로 보증계약이 무효라고 할 수는 없으며, 거래 상대방이 그와 같은 대표권 제한 및 그 위반 사실을 알았거나 과실로 인하여 이를 알지 못한 때에는 그 거래행위가 무효로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 경우 무효를 주장하는 측이 악의ㆍ과실에 대하여 입증하여야 합니다.
다. 대상 판결 사안의 개요
대상판결의 원고인 조합은 2002년 4월 26일 구 주촉법에 의하여 설립인가를 받고 도시정비법이 시행되기 전인 2003년 6월 30일 구 주촉법에 의한 사업계획승인을 받았습니다. 도시정비법이 2003년 7월 1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도시정비법 부칙 제10조 제1항에 따라 2003년 7월 22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하여 설립등기를 마쳤습니다. 한편 조합규약 제18조 제7호에는 '조합원의 부담이 될 계약 및 부과금에 관한 사항'은 총회의 결의를 거쳐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합장이 등기 후인 2003년 7월 25일 위와 같은 총회의 결의를 거치지 아니한 채 자산에 관한 감정평가업무와 관련하여 이 사건 감정평가계약을 체결한 사안입니다.
항소심 법원은 대법원 2007. 4. 19. 선고 2004다60072 전원합의체 판결에서의 법리를 기준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즉, 대표권 제한 사실에 대한 선의, 무과실 여부를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른 법리를 적용하였습니다.
2. 판결의 내용
가. 도시정비법 부칙(2002. 12. 30.) 제7조 제1항의 적용범위
도시정비법 부칙 제7조 제1항은 '사업시행방식에 관한 경과조치'라는 표제로 "종전 법률에 의하여 사업계획의 승인이나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시행 중인 것은 종전의 규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업시행방식'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도시정비법 제3장 '정비사업의 시행'에서 규정하고 있는 방식이나 절차를 모두 포함하므로 이러한 방식이나 절차에 관한 사항은 종전의 규정에 따라야 합니다(대법원 2009. 6. 25. 선고 2006다64559 판결, 대법원 2012. 8. 30. 선고 2010다28925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도시정비법 제3장 '정비사업 시행' 중 제24조 제3항 제5호의 적용여부입니다.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의 부담이 될 계약'에 대하여 총회 결의사항을 정하고 있는데, 이는 사업시행에 관한 방식이나 절차에 관한 것으로서 도시정비법 부칙 제7조 제1항에서 종전의 규정에 의하도록 한 '사업시행방식'에 관한 규정입니다. 따라서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의 부담이 될 계약' 체결을 총회 결의사항으로 정한 도시정비법 규정은 이 사건 조합에 대하여 적용되지 않습니다.
나. 원고 조합의 설립인가 및 변경인가 내역
도시정비법 부칙 제10조 제1항 본문은 '조합의 설립에 관한 경과조치'라는 표제로 "종전 법률에 의하여 조합 설립의 인가를 받은 조합은 본칙 제18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주된 사무소의 소재지에 등기함으로써 이 법에 의한 법인으로 설립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위 규정의 내용과 취지에 비추어 보면 행정청이 종전 법률인 구 주촉법에 의하여 재건축조합에 대하여 조합설립인가처분을 하였더라도 도시정비법이 시행되고 해당 재건축조합이 도시정비법 부칙 제10조 제1항에 따라 설립등기를 마친 후에는 그 재건축조합은 공법인입니다(대법원 2014. 2. 27. 선고 2011두11570 판결 등 참조). 나아가 이러한 재건축조합에는 도시정비법 제27조에 의하여 민법 제60조가 준용됩니다. 따라서 그 재건축조합의 조합장이 조합원의 부담이 될 계약을 체결하기 위하여는 총회의 결의를 거치도록 조합규약에 규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는 법인 대표권을 제한한 것으로서 그러한 제한은 등기하지 아니하면 제3자에게 그의 선의, 악의에 관계없이 대항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1992. 2. 14. 선고 91다24564 판결 등 참조).
3. 판결의 의미
본 대법원 판결은 구 주촉법에 의하여 설립인가를 받았더라도 도시정비법에 따라 조합에 대한 등기가 이루어졌는지 여부에 따라, 대표권 제한의 요건을 달리 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재건축주택조합의 조합장이 도시정비법 시행 전에 시공사의 하수급인에 대한 하도급공사대금채무에 대하여 보증계약을 체결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거래 상대방이 그와 같은 대표권 제한 및 그 위반 사실을 알았거나 과실로 인하여 이를 알지 못한 때에는 그 거래행위가 무효가 된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본 대법원 판결은 구 주촉법에 의하여 재건축조합에 대하여 조합설립인가처분을 받았더라도 도시정비법 시행 후 도시정비법 부칙 제10조 제1항에 따라 설립등기를 마친 경우에는, 법인 대표권 제한을 등기하지 아니하면 제3자에게 그의 선의, 악의에 관계없이 대항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한편 도시정비법에 따른 재건축주택조합이라면,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의 부담이 될 계약'을 총회 결의사항으로 정한 도시정비법 제24조 제3항 제5호은 강행규정이므로, 이를 위반한 계약은 효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조합 정관에서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의 부담이 될 계약'을 총회 결의사항으로 정하고 있더라도, 위 대표권 제한을 위반한 조합장의 법률행위는 조합의 설립근거 법률 및 등기여부에 따라 효력요건이 달라지게 된다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