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우리나라 건설법제의 역사
가. 최초의 건설법(일제시대와 해방)
우리나라 최초의 건설법은 일제시대에 제정된 조선시가지계획령입니다. 1934년 6월에 제정된 조선시가지계획령은 ① 총칙, ② 지역, 지구의 지정과 건축물 등의 제한, ③ 토지구획정리의 세 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법은 도시계획법, 건축법, 토지구획정리사업법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법에 따라 도시계획이 입안ㆍ시행되었는데, 예를 들면 영등포 일대는 공업지역으로, 고양군 연희면 신촌리는 주거지역으로, 세검정은 풍치지구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울 여러 곳에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한 개발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일제시대는 식민도시화, 전쟁기지화를 특징으로 하는 근대적 도시화가 진행되었습니다. 도시형 개량한옥이 대대적으로 지어지기도 했지만(북촌과 서촌의 작은 한옥들은 그 결과 만들어졌습니다), 일제를 상징하는 총독부청사(중앙청), 경성부청(서울시청), 조선신사와 같은 건축물과 아파트, 백화점을 비롯한 서구식 건축물이 건축되었습니다.서울의 고궁과 성곽이 허물어졌고, 철도와 도로 등이 식민과 전쟁의 목적으로 축조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해외에서 돌아온 동포 등으로 서울을 비롯한 도시의 인구가 급증하였으나 새로운 도시계획과 개발을 하기도 전에, 곧이어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도시는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나. 군사독재와 개발시대의 서막(1960년대)
5.16 군사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정권은 산업화, 근대화를 통한 국토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해 독자적 건설법제를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1962년 건축법과 도시계획법을 제정한 것을 시작으로, 1963년에는 국토건설종합계획법을 만들었고, 1966년에는 토지구획정리사업법을 도시계획법에서 분리, 제정하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이른바 '돌격건설시대'라 불리는 '재건과 건설사업'이 가속화되었습니다. 마포아파트를 비롯한 서민아파트가 건설되기 시작했고, 청계천을 복개하고 고가도로를 건설하는 등 기반시설 정비도 이루어졌습니다. 도심재개발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세운상가가 건설되고, 여의도 개발과 같은 대규모 개발사업도 진행되었습니다. 남산 1, 2호 터널도 만들어졌는데, 군사적 목적(방공호)을 겸하고 있었던 것은 단적으로 이 시대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다. 유신과 개발의 가속화(1970년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은 급격한 도시화와 난개발을 가져온 한편, 달동네와 같은 빈민가를 양산해냈습니다. 70년대 초반에 일어난 와우아파트 붕괴사건, 도시빈민 집단이주지인 광주대단지 폭동사건은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었습니다. 도시화가 수도권으로 확대되었고, 전국에 공단이 활발하게 조성되었습니다. 서울에서는 영동지구, 잠실지구 개발과 같은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었으며, 서울 지하철 시대 개막으로 서울은 더욱 광역화되었습니다.
1972년 10월 유신을 전후하여 건설법제의 정비가 이루어졌습니다. 도시문제의 심화 등으로 도시계획법이 전면 개정되었으며, 개발제한구역이 도입되는 등 토지이용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었습니다(1971년). 한편 아파트 건설촉진을 위하여 주택건설촉진법이 제정되어 대단지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1973년). 국토이용관리법이 만들어져 개발규제 및 계획법제를 비도시지역으로 확대하였습니다(1973년). 공단 및 산업화를 촉진하기 위하여 산업기지개발촉진법이 제정되었고(1973년), 1976년에는 도시계획법에서 도시재개발법이 독립되었습니다.
라. 국제화, 민주화의 소용돌이(1980년대 - 1990년대)
80년대와 90년대는 민주화의 소용돌이와 88올림픽, 문민정부의 수립(1992년), 지방자치제 실시(1995년) 등을 계기로 한 민주화, 국제화의 흐름이 도시와 건설법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80년 도시계획법이 전면개정되었는데, 도시기본계획 수립, 주민참여 제도화 등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같은 해 택지개발촉진법이 제정되어 분당, 일산 등 신도시 개발의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환지방식의 개발방식(토지구획정리사업)에서 수용에 의한 대규모 공공개발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신도시 개발과 함께 구도시의 재개발도 중요한 흐름으로 강화되었습니다. 도시재개발법에 이어서 1989년「도시저소득층주민의 주거환경개선을 위한 임시조치법」이 제정되어, 달동네 대규모 재개발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1997년에는 주택건설촉진법에 재건축이 규정되어, 아파트 재건축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재개발은 경제적 논리에 힘입어 도시개발의 주류적 형태가 되었고, 신도시 개발과 더불어 아파트가 급증하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아파트가 많아지면서 1984년「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습니다. 민법으로는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의 소유 및 관리를 규율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아파트는 점차 주류적 주거형태가 되어 갔고, 1993년에는 단독주택보다 아파트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아파트공화국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아파트는 한국 도시의 주요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개발논리가 여전히 득세하면서도 90년대에 와서는 건설 및 도시법제에 새로운 관점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시민의 참여, 시민의 삶이 도시계획과 건설에 중요한 관점으로 등장했고, 환경, 교통, 보행자의 권리 등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 체계적 법제 구축과 새로운 시대(2000년대)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지속가능성, 환경, 균형발전과 같은 이념이 건설법제에 반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울러 건설법제를 체계적으로 구축, 보완하여 현재와 같은 법제가 만들어졌습니다.
(1) 국토계획/도시계획법
2000년 국토기본법이 만들어져, 국토관리의 기본이념을 제시하고 계획법제의 원칙을 제시하는 기본법으로 기능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에는 도시지역의 계획법제인 도시계획법과 비도시지역의 계획법제인 국토이용관리법을 통합하여「국토의 이용 및 계획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법에 따라 도시지역과 비도시지역을 하나의 국토공간으로 계획 및 관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난개발을 방지하고, 선계획ㆍ후개발 체계에 의해 국토이용의 효율성과 환경성을 도모하며, 나아가 지속가능한 국토발전을 기하려는 목적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린벨트를 통해 도시의 확장 및 난개발을 막기 위하여 도시계획법에 있던 개발제한구역제도를 분리하여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2007년에는 자연경관 및 역사ㆍ문화경관을 보전하기 위하여 경관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경관법을 제정하였습니다.
(2) 건축물법
건축법과 함께 주택법제를 정비하여, 2003년 주택건설촉진법이 주택법으로 전면개정되었습니다. 주거복지를 강화하고, 주택관리 등을 보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종전에는 개발법제의 성격을 보다 많이 가졌다면, 이제 건축물법의 성격을 강화하게 된 것입니다. 한편 주택에 관한 분양규제는 있었으나, 상가 등 다른 건축물에 대한 분양규제가 없었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04년에는「건축물의 분양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습니다. 친환경건축이 강조되면서 2007년에는「녹색건축물 조성지원법」이 제정되기도 했습니다.
(3) 도시개발/정비사업법
2000년 도시계획법에 있던 도시계획사업과 토지구획정리사업법을 통합하여 도시개발법을 제정하였습니다. 도시개발사업을 체계화하고, 민간의 참여를 활성화하며 다양한 도시개발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입니다. 이로써 환지방식과 수용방식의 도시개발이 하나의 법제로 통합되었습니다. 2004년에는 기업도시개발특별법이 제정되었습니다. 민간의 투자를 통하여 기업도시를 개발하기 위한 특별법입니다.
도시재개발법제도 정비하였습니다. 주택법에 의한 재건축사업, 도시재개발법에 의한 재개발사업,「도시저소득층주민의 주거환경개선을 위한 임시조치법」에 의한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하나의 법률로 통합하여 2002년「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제정하였습니다. 2006년에는 구도심 재개발을 위하여「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졌습니다.
도시개발법제 및 정비법제가 체계화되면서, 뉴타운 개발 등 대규모 개발이 가속화되었습니다. 은평뉴타운 건설로 북한산 그린벨트가 해제되었고, 왕십리 뉴타운, 돈의문 뉴타운은 오래된 옛 마을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했습니다. 한강개발사업은 한강을 아파트 병풍으로 둘러싸게 하였으며, 서울 곳곳에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건설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개발법제에 대한 반성으로 도시재생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였고,「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2013년 제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서울성곽 복원, 남산 살리기, 북촌 등 역사도시 복원 등의 움직임이 개발을 견제하는 하나의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