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서는 국제건설계약에서 사용되는 독립적 은행보증의 역할과 이러한 형태의 보증서를 작성 시 유의할 점을 간략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금융조달을 원활하게 하는 장치
국제건설계약에서 널리 쓰이는 독립적 은행보증은 발주자(employer)의 청구가 있으면 시공자(contractor)의 의뢰에 따라 보증서를 발급한 보증은행이 일정금액을 즉시 발주자에게 지급하는 형태의 보증(independent guarantee 또는 first demand guarantee)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은행보증은 독립추상성의 원칙에 입각하여 보증서 발행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기본계약의 조건으로부터 어떠한 영향이나 구속도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며, 보증서에 기재된 방식대로 청구되면 보증은행은 그 청구에 따라야 합니다.
독립적 은행보증은 시공자 입장에서 볼 때 상당한 재무적 위험을 안겨주는 그리 달갑지 않은 금융장치일 것입니다. 예컨대 시공자가 이행보증(performance guarantee)을 발주자에게 제출하려면 이행보증을 발급하는 보증은행에게 소정의 금융수수료를 지불하여야 하고, 또한 시공자가 건설공사의무를 위반했다고 발주자가 판단하는 경우 이행보증에 따른 금원을 청구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독립적 은행보증이 없다면 국제건설프로젝트와 같은 대규모 거래를 위한 금융조달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즉, 발주자는 시공자에게 건설프로젝트 초기에 필요한 자금을 선수금으로 지급하면서 선수금환급보증(advance payment guarantee)을 시공자로부터 제출받게 되는데, 만일 선수금환급보증이 없었다면 발주자는 시공자가 약속된 공사를 하지 않고 돈만 가져갈 가능성 때문에 선수금을 지급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공사진행을 위해 시공자가 초기공사 재원을 직접 조달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시공자의 이행보증(performance guarantee) 제출은 발주자로 하여금 기성에 따라 중도금을 시공자에게 지불하게 하고, 하자보수보증(warranty guarantee) 제출은 건설공사가 완료되면 하자보수의무의 잔존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공사대금을 발주자가 시공자에게 지급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결국 독립적 은행보증은 대금지급/계약이행을 담보하는 담보문서의 기능을 가지면서 동시에, 발주자와 시공자 간에 재무적인 위험을 분산시키면서 프로젝트금융을 전체적으로 원활하게 하는 금융적 기능도 상당하다 할 것입니다.
2. 독립적 은행보증의 청구 가능성
독립적 은행보증의 수익자인 발주자는 시공자가 건설공사를 잘 완공하도록 공사수행과정에서 해당 독립적 보증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의도를 가질 것입니다.
우선, 건설공사의 중간 단계에서는 시공자는 발주자로부터 중도금을 지급받기 위해 통상적으로 지급확인서(payment certificate)를 발주자로부터 교부 받아야 하므로, 만일 발주자가 시공자의 건설공사 이행과정에 불만이 있다면 이러한 확인서 교부 시기를 조절하면서 시공자의 공사이행을 압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발주자 입장에서는 굳이 시공자와의 관계가 최악으로 다다를 수 있는 독립적 이행보증의 청구는 되도록 피하려 할 것입니다. 건설공사 중간에 독립적 은행보증하의 금원을 청구한다면 시공자는 발주자에게 반발하며 프로젝트를 포기할 수도 있고, 이 같은 경우 중도 포기된 프로젝트를 완공하기 위해 발주자가 부담하여야 하는 결과적인 비용은 상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건설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거나 또는 시공자가 공사대금을 거의 지급받은 단계에서는 시공자가 공사완공을 크게 지연하거나 다른 큰 이슈가 발견된다면, 발주자는 잔여공사완공을 위해 독립적 은행보증을 청구하겠다고 시공자를 압박하거나 또는 실제로 그와 같은 청구를 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3. 독립적 은행보증 작성 시 유의점
만일 발주자가 독립적 은행보증 형태의 이행보증상 권리를 행사하게 된다면 시공자는 많은 타격을 입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행보증을 발급한 보증은행은 보증을 의뢰한 시공자로부터 보증금원을 환수하려 할 것이어서 이는 시공자의 현금흐름에 지장을 줄 것이며, 또한 향후 입찰을 하거나 다른 보증을 받을 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따라서 시공자는 발주자가 독립적 은행보증상 권리를 행사하지 않도록 발주자와 관계 및 공사수행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은 물론, 독립적 은행보증을 작성하는 데 있어서도 주의를 기울여 보증 관련한 위험을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독립적 은행보증 작성 관련하여, 시공자 입장에서 일반적으로 유의할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 명확한 만료일자의 기재: 가급적 특정한 날짜를 기입하는 것이 시공자에게 가장 확실하고 유리합니다. 종종 보증 만료일자가 특정 이벤트(예: 공사완공일자부터 XX일 경과)와 연결되어 기재되는 경우가 있는데, 해당 이벤트 발생여부/날짜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으므로 그러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문구의 삽입이 필요합니다.
• 보증 연장조항: 독립적 은행보증에는 발주자가 판단하기에 해당 건설공사가 당초 보증서 만료날짜 내에 완공이 어려울 때 연장을 요청할 수 있는 보증연장조항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보증연장조항은 당연히 발주자에게는 유리하지만, 시공자 입장에서는 만료날짜에 상관없이 보증으로 인한 위험에 계속 노출되어야 하므로 가급적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다.
• 보증상 권리의 양도: 통상적으로 독립적 은행보증의 수익자인 발주자는 금융을 제공하는 대주에게 보증으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한 권리를 어떠한 제한 없이 양도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려 합니다. 하지만, 본래 수익자가 아닌 제3자가 보증청구 가능하게 되면, 권리남용의 위험이 한층 증가되므로 보증된 금원을 보증은행에게 직접 청구할 수 있는 권리까지 양도할 수 있도록 하는 문구는 보증서에 포함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 준거법: 독립적 은행보증에는 보증서를 발급한 은행이 소재한 국가의 법이 준거법으로 기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증서에 준거법을 특정하지 않고 국제상업회의소(ICC)에서 제정한 “요구불보증에 관한 통일규칙(URDG)”을 적용하게 되어 있는 경우에도 보증인의 소재지법이 준거법으로 되는 결과(직접보증의 경우)를 가져옵니다. 만일 국내 은행이 보증서를 발급하면서 한국법이 아닌 다른 나라의 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해야 하는 경우라면 익숙하지 않은 준거법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독립추상성원칙에 대한 예외 등 보증 관련 이슈들에 대한 태도가 해당법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한편, 독립적 은행보증이 독립추상성 원칙에 입각하고 있다고 하지만, 독립적 은행보증을 받치고 있는 해당 기본계약(공사도급계약)에도 독립적 은행보증이 종료되는 경우를 명시하는 것을 고려해볼수 있습니다. 예컨대, 공사도급계약에 발주자가 시공자의 공사완료를 수락하는 증명서를 발급하는 이후에는 독립적 은행이행보증에 대한 청구를 할 수 없다라고 명시하는 것입니다. 만일 발주자가 이와 같은 조항에도 불구하고 (수락증명서 발급 이후) 독립적 이행보증에 대한 청구를 할 위험이 있어 보이면, 법원에 공사도급계약의 규정을 들어 발주자의 은행보증 청구를 막는 가처분 명령을 신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가처분 신청에 대해 각 나라의 법원의 태도가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발주자의 은행보증 청구남용을 줄일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밖에 국내 회사들이 국제건설프로젝트에서 하수급자(Subcontractor)의 역할을 맡는 경우가 빈번히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 하수급계약의 이행에 대한 담보로서 시공자(수급자)에게 보증서를 제출하는 경우라면, 하수급 보증(Sub-guarantee)이 수급자가 발주자(도급자)에게 제출하는 독립적 은행보증과 연동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하수급 보증의 문구가 잘못되어 원수급계약(main contract) 이행과 연동된 것으로 간주된다면, 하수급인은 하수급계약 이행을 잘 완료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공자(수급자) 측의 문제(계약불이행 등) 때문에 하수급 보증까지 청구를 당할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독립적 은행보증은 국제건설계약에서 필수불가결한 장치로 자리매김하였지만, 그 형태 및 내용의 해석에 따라 언제든지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므로 보증서 제출 이전에 이를 신중하게 작성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