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과 관련하여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단어가 핀테크일 것입니다. 핀테크(FinTech)는 문자 그대로 금융과 IT의 결합, 보다 구체적으로는 IT 수단을 이용하여 금융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핀테크의 대표적인 분야로 모바일 수단을 이용한 간편한 지급결제, 인터넷전문은행 등 오프라인(offline) 기반 없이 금융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채널이 논의되고 있지만 기술의 발전에 따라 어떤 새로운 핀테크 영역이 등장할지 현재로써는 섣불리 예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전에도 금융업에서 IT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IT가 금융회사의 정보를 저장, 처리하는 지원부서(Back Office)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그쳤다면 지금은 인터넷뱅킹 등 IT 수단에 의한 비대면(非對面) 거래가 크게 증가하면서 IT는 금융회사의 주요 영업망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습니다.핀테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지점망이 전혀 없는 은행, 신용카드 대신 물품대금을 결제하는 휴대폰, 휴대폰과 휴대폰 사이의 송금 등 IT가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금융서비스 제공 수단이 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전통적인 금융업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기존 금융규제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와 변경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간의 금융규제는 대면(對面) 거래를 전제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대면 거래를 전제로 한 금융규제 중 대표적인 것이 금융실명제에 따른 실명확인 제도였습니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명령(후에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로 변경)에 따라 1993년부터 시행된 금융실명제(金融實名制)는 예금 등 금융 거래 시 본인의 실지명의를 사용하도록 강제하고, 금융회사로 하여금 고객의 실명을 확인한 후에야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관련 법령에는 개인의 경우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으로, 법인은 사업자등록증 등 납세번호를 부여받은 문서로 실지명의를 확인하라는 내용만 있으나, 감독당국에서는 신분증에 부착된 사진과 본인을 실제로 대조 확인하여 실지명의를 확인하여야 한다고 해석함으로써 사실상 대면접촉을 통하여 실명확인을 할 것을 요구하여 왔습니다. 그동안 몇 차례 논의되었던 인터넷전문은행이 불발로 끝난 것도 이와 같이 대면 접촉을 통한 실명 확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몇몇 금융회사들이 OO 다이렉트라는 이름으로 금융회사를 방문할 필요 없이 온라인상으로 쉽게 금융상품에 가입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기도 하였으나, 이 경우에도 실명확인이 필요한 경우에는 해당 금융회사의 직원이 고객을 직접 방문하여 확인하는 방식을 취할 수 밖에 없어 온라인 거래의 장점을 충분히 이용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지점 거래를 전제로 한 실명확인 방식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요구는 꾸준히 있었지만 핀테크의 대두와 함께 실명확인 방식의 개선 없이는 핀테크의 발전도 있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금융감독당국은 마침내 신분증 사본 확인, 기존 계좌로부터의 이체, 영상 통화 등 비대면 방식에 의한 실명 확인을 허용할 것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동안 계좌이체, 인터넷쇼핑 등 전자금융거래에서 본인인증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공인인증서 제도도 대폭 변경되고 있습니다. 종전에는 전자금융거래에서 반드시 공인인증서를 사용하도록 전자금융감독규정에서 강제하고 있었으나 2010년 규정 개정을 통하여 공인인증서와 동일한 수준의 안전성이 인정되는 인증방법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다만 인증수단의 안전성은 금융감독원내 인증방법평가위원회가 평가하였었는데, 이 평가위원회의 인증기준이 매우 엄격하여 공인인증서와 동일한 수준의 인증기술로 인정받은 사례가 1건에 불과할 정도여서, 사실상 공인인증서 외의 다른 수단을 쓰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이는 본인인증기술의 개발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에 금융감독당국은 지난 3월 전자금융감독규정을 개정하여 금융회사가 전자금융거래의 종류ㆍ성격ㆍ위험수준 등을 고려하여 안전한 인증방법을 사용한다고만 규정하고 인증방법평가위원회는 폐지함으로써 본인인증 기술의 채택을 금융회사의 자율에 맡기게 되었습니다. 현재 지문이나 홍체를 이용한 생체인증 방법, 스마트폰의 유심(USIM)을 이용한 OTP 생성 방법 등 다양한 인증기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핀테크의 활성화로 인한 금융규제의 변경 및 완화는 금융회사에게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가 됨과 동시에, 책임 또한 증가할 수 있습니다. 계좌 개설 시의 대면 확인을 대체하는 비대면 실명 확인 방법이 확대되고 자금이체 등 전자금융거래 시 본인인증 방법 또한 다양하게 됨에 따라 보이스피싱 등 대포통장을 이용한 금융사기 등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대면 확인에 의한 계좌 개설, 공인인증서 방식에 의한 자금 이체가 강제되던 시기에는 금융사고 발생 시 통장이나 공인인증서 등 각종 접근매체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한 금융소비자의 과실이 주로 문제되었습니다. 금융회사의 관점에서는 위와 같은 규제가 불편함을 주기로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본인 확인 방법에 대한 일률적인 기준을 제시해 줌으로써 금융회사가 이러한 기준을 지키는 한 금융회사의 책임이 인정되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률적인 본인 확인ㆍ인증 방법이 폐지되면서 금융회사는 적절한 본인 확인 방법을선택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게 될 것이며, 나중에 금융사고가 발생한다면 금융회사는 자신이 선택한 수단이 적절하였는지, 또한 이와 같이 금융회사 별로 다른 본인 확인 방법에 대하여 고객에게 충분히 설명하였는지 부터 감독당국 또는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에 따라 관련 규제가 폐지되고 본인 인증 방법 등이 자율화되면 금융회사가 고객에 대하여 금융사고와 관련하여 책임을 부담하는 일은 증가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각종 규제 완화에도 불구하고 감독당국의 가이드라인 또는 법원의 판례 등을 통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기 전까지는 공인인증서 사용 등 기존의 관행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으며, 금융업계에서도 새로운 본인인증 기술을 채택함에 있어서 많은 고민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지점망을 통한 전통적인 금융회사의 영업 방식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으며 핀테크 등을 통한 새로운 영업채널을 개척하는 것은 이제 금융회사의 생존이 달린 문제가 되었습니다. 금융회사와 IT 기업들이 규제 완화를 통하여 주어진 자율과 책임을 조화롭게 수행한다면 핀테크는 금융산업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는 최대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