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2016년 2월 23일자 건설경제신문에 "법원, 설계변경 서면증거 없어도 '추가공사비' 지급 첫 판결"이라는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위 기사는 법원이 추가공사비 소송에서 건설현장의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하여, "설계변경과 계약금액 조정 계약서 등 서면 증거가 없는데도, 여러 정황을 고려해 추가공사비를 인정"했다고 판결의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위 기사가 지적하는 건설현장의 '현실'이란, "변수가 생길 때마다 추가공사비 지급의 근거가 되는 '설계변경계약'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데다가 공공 발주처는 서면으로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는 관행이 있고, 시공사 역시 '을'의 위치에서 서류를 남기자고 끝까지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을 말합니다. 기사 제목만 보면 비슷한 상황에 있는 수급인에게는 도움이 될 선례가 될 것이 분명한데, 실제 사실관계를 기초로 판결 내용을 자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사실관계 및 법원의 판단
A와 B는 공동수급체를 구성하여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하수암거 확충 및 저류조 설치공사를 도급받아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위 공사는 장기계속공사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지방자치단체 공사계약 일반조건(이하 '공사계약 일반조건')은 설계변경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을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계약 체결 당시 야간 작업시간은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총 8시간으로 정해져 있었는데, 상급 지방자치단체는 도로점용공사장 교통소통대책 자문회의를 거쳐 작업시간을 오전 1시부터 오전 5시까지로 제한하기로 했고, 관할 경찰청도 같은 취지로 지방자치단체에게 공문을 보냈습니다. 지방자치단체는 A와 B에게 위 공문을 보내며 야간 작업시간을 변경하라고 지시했고, 실제 야간 작업시간이 줄어들어 약 13억 원의 공사비가 증가했습니다. B의 채권을 양수한 A는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위 증가한 공사비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원고 주장과 관련해서는, ① 야간 작업시간을 제한한 것이 공사비 증액 사유인 설계변경에 해당하는지, ② 수급인이 일반조건에 따라 적법하게 계약금액 조정을 신청했는지 문제 되었고, 피고는 ① 원고가 2012년 12월 29일 피고와 사이에 특별한 이의 유보 없이 공사대금을 확정하기로 합의했고, ② 2012년 12월 31일 이미 확정된 공사대금 전액을 수령하여 원고가 주장하는 증가된 공사비 청구권을 포기했다고 반박했습니다. 법원은 피고의 항변을 배척하여 원고 청구를 인용했습니다.
3. 판결의 분석 및 의미
관급 공사에서 추가공사비 청구가 인정되려면, 설계변경과 같은 실체적 요건과 계약금액 조정신청이라는 절차적 요건이 모두 구비되어야 합니다. '합의'나 '청구권 포기' 역시 소송 상대방이 일반적으로 항변하는 내용입니다.
도급계약에 편입되어 효력을 갖는 공사계약 일반조건은 '설계변경으로 인한 계약금액의 조정' 항목에서 "설계변경으로 시공방법의 변경, 투입자재의 변경 등 공사량의 증감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계약담당자가 계약금액을 조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설계변경에 야간 작업시간 변경도 포함되는지에 관한 검토가 필요한데, 문언을 엄격하게 해석하면 설계변경이 아니라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공사의 설계 자체가 변경된 것은 아니고, 일반조건에서 설계변경의 예를 든 시공방법이나 투입자재가 변경되어 공사량이 증가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사자 사이에 설계변경에 관한 처분문서가 작성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대상 판결에서 법원은 설계변경의 의미를 넓게 해석했습니다. 당초 8시간으로 예정된 야간 공사시간이 4시간으로 단축됨에 따라 공사에 투입한 인원ㆍ장비 등이 변경되어 공사량이 증가되었고, 시방서(공사계약 일반조건에 따라 설계서에 포함됨)에서 정한 공사시간(주간 07:00~22:00, 야간 22:00~07:00)을 제한한 것은 설계변경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신문기사는 '서면증거'가 없어도 원고가 승소한 것처럼 보도했는데, 대상 판결을 근거로 공사비를 청구하는 소송에서 서면증거가 부족하더라도 승소할 수 있다고 이해하는 것은 주의를 요합니다. 설계변경이나 계약금액 조정 자체에 관한 처분문서는 작성되지 않았지만, 설계변경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서증(야간 작업시작을 제한하라는 상급 지방단체나 경찰청의 공문 등)은 소송과정에서 증거로 제출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무상으로는 계약금액 조정신청이 쟁점으로 부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약금액 조정은 그 조정사유가 발생하였다고 하여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절차상으로 적법한 계약금액 조정신청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대법원 2006. 9. 14. 선고 2004다28825 판결). 위 사건에서 문제가 된 공사계약 일반조건에서도 "계약상대자의 계약금액조정 청구는 준공대가(장기계속공사의 경우에는 각 차수별 준공대가) 수령 전까지 하여야 조정금액을 지급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고, 대부분 관급 공사에서는 위와 같은 규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상 판결에서는 쟁점이 되지 않았는데, 기술분과위원회의 검증절차에 관한 선례도 있습니다. 대법원은 "공동원가분담금 정산과 관련하여 각 공동수급체의 현장소장으로 구성된 기술분과위원회의 검증을 거치도록 한 것은 어느 공동수급체 구성원이 감리원의 승인 내지 확인 하에 토취장을 변경하여 공사비가 증가한 경우 그 적정성과 타당성을 심사함으로써 공동수급체 구성원들 상호 간에 공정하고 원활한 분담금 정산이 이루어지도록 하는데 그 취지가 있는 것으로서, 이는 공동수급체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부담하여야 할 분담금의 유무와 액수를 조사ㆍ결정하기 위한 절차일 뿐, 그 자체가 공동원가분담금채권의 발생 요건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13. 2. 28. 선고 2011다79838 판결).
청구권 포기도 추가공사비 소송에서 주로 쟁점이 됩니다. 이 사건에서도 3차 공사계약 대금이 3,916,900,000원에서 163,100,000원 증가한 4,080,000,000원으로 변경되었고, 수급인이 도급인에게 "공사에 대하여 계약 내용이 변경됨에 합의하고 하등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계약자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을 확약합니다."라는 합의서를 작성했으며, 증액된 금액을 모두 수령했습니다. 증액된 공사비에 추가공사비가 포함되어 있고, 설령 추가공사비가 반영되지 않았더라도 증액된 공사비를 모두 수령했으니 나머지 공사비를 포기했다는 논리입니다.
위와 같은 항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공사비 증액 사유에 관한 문서를 남겨두고, 공사대금을 수령할 때도 추가공사비에 이의를 유보해 두어야 합니다. 위 사건에서도 공사비 증액은 다른 사유(상수관 이설 등에 따른 설계변경) 때문이고 공사시간 단축 변경에 따른 추가공사비가 반영되었다고 볼 자료가 없다는 사실, 수급인이 공사시간 변경에 따른 공사비 증액을 여러 차례 요청하고 공사대금 수령 전날에도 "준공이 되었어도 협의 및 법의 판결 결정시 종전의 계약금액 증액 요청 건은 유효하다."는 공문을 보낸 사실, 수령 후에도 공사시간 단축으로 인한 공사비 증액을 요청한 사실 등이 참작되어 도급인의 항변이 배척되었습니다. 법원은 "계약 내용이 변경됨에 합의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수급인과 도급인 쌍방이 합의하여 변경한 내용에 한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엄격하게 해석했습니다.
4. 시사점
설계변경의 범위를 넓게 판단했다는 의미는 있으나, 대상 판결을 "설계변경 서면증거 없어도 '추가공사비' 지급 첫 판결"이라고 확대 해석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위 판결은 증거에 따라 사실관계를 판단한다는 재판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면증거가 없음에도 단순히 여러 정황을 근거로 원고 청구가 인용된 것이 아니라, 원고는 계약금액조정신청 등을 포함하여 계약 상대방을 상대로 적극적인 의사를 표시했고, 그와 같은 사실을 증거로 제출하여 추가공사비에 관한 요건사실을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살펴본 것처럼 추가공사비 청구는 실체적, 절차적 요건 모두 문제 될 수 있으므로,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을 때는 미리 법률 전문가와 상의하여 소송에 대비한 자료 및 제반 절차를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