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에 대한 모욕이나 명예훼손은 죄가 되지 않는다. 아나운서 모욕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강용석 의원은 아나운서가 장래 희망이라는 여학생들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 ○○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하더라”라는 말을 했다. 무려 154명의 여성 아나운서가 고소를 했다. 원심은 여성 아나운서 전체를 지칭했지만 아나운서 개개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기에 충분한 경멸적 표현이라는 이유로 모욕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라고 판단했다. 모욕의 내용이 특정인에 대한 것이 아니고, 집단에 대한 비난은 개별구성원에 이르러서는 그 정도가 희석된다는 이유였다. 아나운서라는 작은 집단도 그러한데, 장애인·여성·이주민·성소수자·흑인과 같은 큰 집단은 더더욱 죄가 되지 않는다. 이들을 향해 극단적 혐오와 비하·모욕의 발언을 하더라도 무죄다. 아나운서 사건에서 대법원도 “여성 아나운서들에게 수치심과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경멸적인 표현”임을 인정했다. 집단에 속한 개인이 깊은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기 충분하지만, 피해자가 없거나 특정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는 친고죄 또는 반의사불벌죄다. 사회현상을 모두 범죄로 단죄하는 것도 부당하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집단을 향한 것이므로 개인은 피해가 없다는 논리를 쉽게 납득하기는 어렵다. 형사처벌은 그렇다고 해도 민사 손해배상은 어떠할까? 인격권의 침해로 성립하는 민사 불법행위에서도 법원은 형사사건과 동일한 논리를 적용하고 있다. 인권침해 구제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도 구제권고를 할 때 같은 논리를 들어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 사건을 각하하고 있다. 우린 혐오사회에 살고 있다. 맘충·틀딱충·급식충·똥꼬충 등 여성·노인·어린이·성소수자는 벌레 취급을 받고 있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해충으로 묘사했고, 일본에서는 재일조선인을 바퀴벌레로 불렀다. 혐오는 차별을 낳고, 사람의 존엄을 부정하며,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진다. 소수자를 더욱 소외시킨다. 이해찬 의원이 “선천적 장애인은 후천적 장애인보다 의지가 약하다”는 발언을 했다. 최근 영입한 척수장애인 최혜영 교수를 언급하며 한 이야기다. 재작년 겨울에는 “정치권에는 정상인처럼 비쳐도 정신장애인들이 많다”는 말을 했다. 이 의원은 이 발언에 앞서 “신체장애인보다 더 한심한 사람들은”이라고 말을 꺼냈다가 정정하기도 했다. 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회 발대식에서 장애인을 앞에 두고 한 이야기다. 이 의원의 말을 들은 홍준표 의원은 “국민은 그 말을 한 사람을 정신장애인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이나 행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사회지도층이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발언을 해도 속수무책이다. 집단을 향한 혐오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휠체어를 타는 내 친구는 얼마 전 아침 “왜 바쁜 시간에 장애인이 돌아다니느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는 출근 중이었다. ※ 본 칼럼은 법률신문 2020년 1월 23일자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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