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우수가 지나면 겨우내 몸을 불린 초록의 풀들과 형형색색의 꽃들이 산과 들뿐만 아니라 콘크리트 도시 곳곳을 환하게 밝히며 한바탕 축제마당을 만들 것이다. 봄이 되면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화려하게 부활하는 또 다른 존재가 있으니 그 이름은 주주이다. 각 사업연도가 종료된 후 당해 사업연도의 재무제표를 확정하고 회사 경영에 관한 주요한 방향을 정하기 위한 기업들의 최대 연례행사인 정기주주총회 시즌이 봄과 함께 개막되기 때문이다. 정기주주총회는 회사의 지배구조를 확인하고 미시적, 거시적 차원에서 회사의 주요한 경영방향을 결정하는 장이기 때문에 기존에 경영을 주도한 측과 그 방향에 불만을 가진 측과의 대결은 불가피하고 그 대결의 양상은 갈수록 확산되고 복잡해지는 경향이다. 지금까지 그러한 대결의 중심에는 다양한 형태의 주주행동주의가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에 개방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주식시장이 외국인에게 본격적으로 개방되면서 국내 대기업들은 줄곧 외국계 주주행동주의 펀드의 목표물이 되었다. 기존 외국계 주주행동주의 펀드 대부분은 재벌들의 후진적인 회계관리 관행과 지배구조에서 파생될 수밖에 없는 여러 이슈들을 쟁점화하여 지분 경쟁 또는 경영권 분쟁 구조를 유도한 후 막대한 이익을 챙긴 후 떠나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활동에 대하여 '먹튀', '약탈자본'이라는 부정적 평가와 자본유출에 대한 강한 우려가 동반된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개선과 소수주주에 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된 것 역시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와 별개로 지분확보를 통해 대주주나 경영진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국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2009년만 해도 110개 정도이던 PEF는 2018년 상반기 기준으로 444개로 늘어났고, 사모펀드 시장 규모도 2014년 204조에서 2019년 478조로 크게 성장하였다. 사모펀드 시장 478조로 성장 현재 한진칼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KCGI의 활동은 토종 행동주의 펀드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학습자료이다. 2019년 KCGI의 주주 제안권 행사와 관련하여 한진칼 측과 진행된 일련의 소송은 상장법인의 소수주주권 행사요건에 관한 법률적 쟁점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경영 투명화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고 나선 KCGI의 여러 제안과 활동은 당시 각종 갑질과 도덕성 논란에 휩싸여 있던 한진그룹 경영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대비되면서 기존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어느 정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올해 3월 25일 정기주주총회를 앞둔 현시점에서 한진칼과 KCGI가 벌이는 대립 경쟁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는데 그에 대한 평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국내 행동주의 펀드 활동이 증가함에 따라 주주가치 제고를 통하여 소수주주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선이나 전자투표제 확대 등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행동주의 펀드와 다른 측면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따른 기관투자자들의 역할에 대한 논의 역시 가장 핫한 이슈 중의 하나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기관투자자들이 투자대상 회사의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서 시작된 논의는, 대주주들인 기관투자자들이 오너처럼 책임감을 가지고 기업경영에 개입해야 한다는 영국의 워커보고서 등을 통해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자율규범의 형식으로 구체화되었고, 미국에서는 2010년 금융개혁법을 통해 그 내용을 강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2016년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 우리나라는 2016년 12월 16일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이라는 명칭으로 민간 자율규정 형태로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정하였다. 스튜어드십 코드와 관련한 현황과 활동내용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2020년 1월 말을 기준으로 참여기관이 119곳이다. 73곳이던 2018년 말에 비하여 50% 이상 증가한 수치이고, 특히 2020년 2월 11일 공무원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밝힘으로써 국민연금, 사학연금과 함께 국내 3대 연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완료한 상황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은 단연 국민연금이다. 2012년 5.4%이던 국민연금의 주식시장 점유율은 2017년 7.0%로 증가하였고 2030년에는 약 10% 수준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증가하고 '지배구조 투명화를 통한 주주가치 제고'라는 사회적 가치가 확산되자 국민연금은 2018년 7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발표하고 대규모 장기투자자로서 의결권 행사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한편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 전반으로 주주권행사 대상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 방안과 관련하여 주주권행사 강화를 촉구하는 의견과 주주권행사 강화가 '기업경영에 대한 과도한 간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 상충하고 있지만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인 대세로 보인다. 투자대상 선정때 비재무적 요소 중시 이러한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에 대한 기관투자자들의 관심과 가입이 증가한 것은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원하는 시대적인 요구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 원칙1과 원칙3에서 투자대상회사의 선정 및 관리에 있어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를 중요한 요소로 명시하고 있고, 투자대상회사의 중장기 기업가치와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주는 재무적 · 비재무적 위험 요소를 주기적으로 점검함으로써 사전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중 비재무적 요인으로 중장기 경영전략, 환경 경영, 사회책임 경영, 기업지배구조를 세부 점검항목으로 선정하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기업으로서는 이러한 급격한 지형의 변화가 당황스럽고 단기간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많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가 불가역적이라고 한다면 변화를 대하는 각 기업들의 자세 역시 기존의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보다 개방적이고 적극적으로 달라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 유연성과 지혜를 가진 집단만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발전과 성장이라는 결실을 손에 쥘 수 있기 때문이다. ※ 본 칼럼은 리걸타임즈 2020년 3월 2일자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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