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최근 몇 달 사이 불법파견 쟁점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하급심 판결이 여럿 선고됐다. 우선 근로자파견관계 성립 여부를 공정ㆍ업무ㆍ시기별로 면밀히 심리한 판결들이 선고됐다. 또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 생산관리시스템)나 점검ㆍ정비업무에 관한 판결이 여러 건 있었던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 글에서는 최근 판결의 동향을 정리하고, 몇 가지 특징적인 경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최근 하급심 판결들의 개요 및 전반적 경향
최근 선고된 하급심 판결들 중에서 주요한 것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모두 상급심 계속 중이거나 항소기간 진행 중이다). 우선,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하는 판결과 부정하는 판결이 엇비슷하게 선고되는 양상은 종래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유사한 쟁점에 대한 판단도 사건 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재판부 별로 또는 사건 별로 문제 된 사안이나 쟁점을 면밀히 심리ㆍ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실제로, 공정ㆍ업체ㆍ시기별로 사안을 구분해 사실관계와 증거관계를 구체적으로 심리한 판결들이 눈에 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소방협력업체 근로자들의 불법파견 여부가 문제 된 사안에서 "다양한 부분과 요소가 종합적으로 반영되는 근로관계의 실질은 같은 사업장에서도 업체별로 다를 수 있고 같은 협력업체 내에서도 담당 업무와 기간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9.11.7. 선고 2017가합513647 판결).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 관해서는 각기 업무내용을 달리하는 여러 건의 불법파견 소송이 진행됐는데, 사건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가 선고되고 있다. 2019년 초 선고된 포스코 사건 1심 판결은, 원고 별로 계쟁기간(근로자파견관계를 다투는 기간)을 구분하고, 각각의 계쟁기간 별로 특정한 증거가 적용될 수 있는지를 면밀히 심리하기도 했다(광주지방법원순천지원 2019.2.14. 선고 2017가합777 판결, 항소심 계속 중). 기존 하급심 판결 중에서는, 자동차 공장 내ㆍ외의 모든 직ㆍ간접 공정이 '하나의 자동차 생산'을 위한 공정이라고 보고 전체공정에 대해 동일한 판단을 한 경우가 있었다(서울고등법원 2017.2.10. 선고 2014나48790 판결, 상고심 계속 중).그러나 최근에는 하나의 사업장 내에서도 업무별로 여러 사건이 제기되고 있고, 당사자들도 업무별로 그 특징을 구분해 주장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으므로, 법원에서도 공정별ㆍ업무별ㆍ시기별로 면밀히 구분해 심리하는 경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MES나 점검ㆍ정비 등 업무의 방법이나 내용에 관해서도 구체적인 판단을 한 판결들이 여러 건 있었는데, 불법파견 관련 판례가 축적되면서 세부적인 공정이나 쟁점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판단기준이 누적돼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여러 쟁점이 있지만, 아래에서는 특히 여러 사건에서 문제가 됐던 MES의 성격, 점검ㆍ정비 업무에 성격에 관한 판결들을 살펴본다. MES 관련 판결 MES는 제조업에서 생산공정 관리를 위해 사용되는 전자시스템으로서, 사용자 측에서는 MES가 도급ㆍ제조위탁 등 업무의 발주와 이행 검수를 위한 시스템이라고 주장하고 근로자 측에서는 근로자 개개인에 대한 지휘ㆍ감독이 강화된 시스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판결은 엇갈리고 있는데, 현대제철 순천공장 관련 판결은 MES가 근로자에 대한 지휘ㆍ감독 시스템이라고 판단한 반면,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예방ㆍ점검 업무 관련 판결, 현대위아 보전업무 관련 판결은 MES가 협력업체 근로자에 대한 지휘ㆍ감독의 수단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사견으로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일반적인 경우라면 MES가 근로자에 대한 지휘ㆍ감독을 '강화'하는 요소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MES는 일반적으로 생산물의 추적에 초점을 둔 시스템일 뿐만 아니라, MES가 도입된 이후 원ㆍ하청 근로자 간의 직접 접촉이 크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위 현대제철 순천공장 관련 판결도 결론적으로는 MES가 지휘ㆍ감독의 수단이라고 판단하면서도, 인정사실 중에서는 MES 도입 이후 원ㆍ하청 간 업무의 구분이 분명해지고, 원청의 개입이 줄었다고 판단한 부분이 있다. 또한, 2019년 초 선고된 포스코 1심 판결에서도 제철소의 MES가 지휘ㆍ명령의 수단이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다(광주지방법원순천지원 2019.2.14. 선고 2016가합777 판결, 광주지방법원순천지원 2019.2.14. 선고 2017가합12074 판결, 각 사건 항소심 계속 중). 한편, 대법원은 MES를 통한 정보제공이 협력업체 근로자에 대한 지휘ㆍ명령이 아니라고 본 원심판결(서울고등법원 2016.7.6. 선고 2015나2023411 판결)을 그대로 확정한 바 있으나(대법원 2018.12.13. 선고 2016다240406 판결), MES의 성격에 관해 구체적인 판단을 하지는 않았다. 최근 잇따라 제기되는 MES 관련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구체적인 판단이 기대된다. 점검ㆍ정비ㆍ보전 업무에 관한 판결 최근에는 사업장 시설의 점검ㆍ정비ㆍ보전 업무에 관한 판결이 여러 건 선고됐고, 이들 판결 중에는 '업무의 특성'을 강조한 경우가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령 서울고등법원 2019.9.27. 선고 2018나2062639 판결은 원청 업체와의 일정 조율이 필요하고 원청의 작업장소에서 업무가 이뤄지는 것은 예방ㆍ점검 업무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근로자파견관계의 요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수원지방법원평택지원 2020.2.13. 선고 2017가합9246 판결은 원청의 작업의뢰가 일부 불규칙하게 이뤄지는 점, 원청과의 일정 조율이 필요한 점은 보전업무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근로자파견관계의 요소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 광주고등법원 2019.9.20. 선고 2016나546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2.6. 선고 2016가합524512 판결은 공정 설비의 점검ㆍ정비ㆍ보전업무에 관해 근로자파견관계의 성립을 인정했으나, 위 사건들의 경우에는 다른 다수의 공정과 함께 판단이 이뤄져 점검ㆍ정비ㆍ보전 업무의 특성에 관한 판단이 비교적 상세하게 이뤄지지 못한 점이 아쉽다. 공장설비에 대한 점검ㆍ정비ㆍ보전 업무는 공장 내에서 상시로 이뤄지지만, 원청 업무와 명확히 구분되고, 원청업무와 분리해 수행할 수 있는 대표적 업무이며, 상당한 정도로 기술력을 요하는 업무라는 특징을 가지므로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망과 기대 최근 불법파견의 여러 쟁점에 관해 구체적으로 판단한 하급심 판결들이 선고되면서, 불법파견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2015.2.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등 2015.2.26. 선고된 일련의 대법원 판결들은 근로자파견관계 판단에 중요한 기준을 제공했지만, 아직도 그러한 기준의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가령,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지시'란 표현은 노동 과정과 구분해 업무 결과에 대한 지시를 의미했을 것으로도 보이나 표현이 분명하지 않다. '원청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는지 여부'는 당초 근로자파견관계 인정 여부를 현실적으로 조정하는 기능을 할 것으로 생각됐으나, 실제로는 '실질적 편입' 여부가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근로자파견관계의 인정 기준에 관한 더욱 구체적인 판례 법리의 발전을 기대해 본다. ※ 본 칼럼은 월간노동법률 2020년 5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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