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정리해고는 법원에도 어려운 문제인 듯하다. 최근 대법원은 한화투자증권 주식회사(이하 '한화투자증권')의 정리해고가 적법했는지 문제 된 사안에서, 위 정리해고가 경영상 해고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취지로 판단하며 같은 사건에 대해 두 번째 파기환송 판결을 선고했다(대법원 2019.11.28. 선고 2018두44647 판결). 이로써 한화투자증권 사건에서 정리해고의 적법성에 관한 국가기관의 판단은 적법(지노위) → 위법(중노위) → 적법(1심, 2심) → 위법 취지(1차 파기환송심) → 적법(환송 후 2심) → 위법 취지(2차 파기환송심) 순으로 달라졌다. 정리해고와 관련해 중요한 판단 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2014.11.13. 선고 2014다20875 판결(쌍용자동차 판결), 대법원 2015.5.28 선고 2012두25873 판결(조선호텔 판결)도 원심판결을 뒤집은 파기환송 사건이다. 그 밖에도 최근 하급심 판결 중에서는 서울고등법원 2018.11.9. 선고 2018누35287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7.10.26. 선고 2017누48910 판결 등이 1심 판결을 취소하고 결론을 정반대로 바꿨다.
이처럼 정리해고 사건에서 심급마다 판단이 달라지는 일이 잦은 것은 정리해고를 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고, 대법원 판례가 제시한 기준을 봐도 상반되는 해석의 여지가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2. 정리해고의 요건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해 근로자를 해고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①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하고, ②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하며, ③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그 대상자를 선정해야 하고, ④해고를 피하기 위한 방법과 해고 기준 등을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대표와 성실하게 협의해야 한다(근로기준법 제24조).
다수의 대법원 판결은 사용자가 정리해고의 요건을 모두 증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17.6.29. 선고 2016두52194 판결 등). 게다가 최근 하급심은 정리해고가 그 요건 중 하나라도 갖추지 못했다면 나머지 요건에 대해서는 볼 필요도 없이 위법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서울고법 2018.11.9. 선고 2018누35287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7.10.26. 선고 2017누48910 판결 등).
그러나 일부 대법원 판결은 정리해고 사건에서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가 정당한지 여부는 "각 요건을 구성하는 개별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02.7.9. 선고 2000두9373 판결, 2002.7.9. 선고 2001다29452 판결 등 참조). 이러한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반드시 4가지 요건을 모두 구비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볼 여지도 있다.
이처럼 정리해고 유효요건에 관한 판례의 태도에 다소 혼동의 여지가 있으나, 최근 대법원 판결을 살펴보면 정리해고가 그 4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 적법하다는 쪽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3.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
가. 일반적인 판단 기준
대법원 2014.11.13. 선고 2014다20875 판결(쌍용자동차 판결)은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에 관해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판단을 제시했다. 위 대법원 판결은 ①유동성 위기 여부 ②재무건전성의 위기 여부, ③계속적-구조적인 위기 여부 등을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의 판단 요소로 제시했다. 나아가 피고 회사가 신규대출을 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점에서 유동성 위기(위 ①)를 인정했고, 여러 해 동안 당기순손실, 지속적인 매출 감소로 인한 현금보유액 감소 등을 이유로 재무건전성의 위기(위 ②)를 인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가 신규 설비 및 기술개발 투자로 인한 실적 부진에서 비롯됐다는 점 등에서 계속적-구조적 위기도 인정했다(위 ③).
그런데 위 사건에서 피고 회사가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던 것은 유형자산 손상차손을 과다하게 계상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위 사건 원심판결도 같은 이유에서 피고 회사의 재무건전성 위기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대법원은 위 유형자산 손상차손 반영 이전부터 피고 회사의 재무상황이 악화돼 있었고, 이에 관한 피고 회사의 가정이 다수 보수적이라도 합리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며 재무건정성 위기를 인정했다.
나. 긴박성의 정도
판례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란 반드시 기업의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경우에 한정되지 않고,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해 인원삭감이 필요한 경우도 포함한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02.7.9. 선고 2001다29452 판결, 대법원 2019.10.18.자 2019두45166 판결).
다만, 위 판례의 문언과는 별개로 순수하게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정리해고의 적법성이 인정된 사안은 쉽사리 찾아보기 어렵다. 가령 위 대법원 2001다29452 판결 사안에서는 피고 은행이 정리해고 당시인 1999년 상반기에 순이익을 기록하긴 했으나, 이는 부실요인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결과였고, 그 직후 적자를 기록했던 점 등에서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인정됐다. 대법원 2019.10.18.자 2019두45166 판결 사안에서도 정리해고 당시 회사의 영업이익은 흑자였으나 당기순이익은 적자였고 경영상태가 악화되고 있는 중이라는 이유로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인정됐다. 요컨대, 경영상 위기가 재무제표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인정될 수도 있으나, 단지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정도의 위기를 이유로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인정된 경우는 아직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한편, 최근의 일부 판결은 "정리해고의 요건 중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란 반드시 기업의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경우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하여 인원삭감이 필요한 경우도 포함되지만, 그러한 인원삭감은 객관적으로 보아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어야 한다"며 상대적으로 객관적 합리성을 더 강조하는 듯한 판단을 하기도 했다(대법원 2015.5.28. 선고 2012두25873 판결, 대법원 2017.6.29. 선고 2016두52194 판결, 대법원 2019.11.28. 선고 2018두44647 판결 등).
다. 인원감축 규모의 합리성
인원 감축의 규모가 적정했는지도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의 문제로 논의된다. 대법원은 인원 감축의 규모는 상당한 합리성이 인정되는 한 경영판단의 문제에 속한다고 판단한 바 있으나(대법원 2013.6.13. 선고 2011다60193 판결), 다른 한편 사용자가 당초 제시한 감원목표를 초과했는지 여부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은 경우가 많다.
한화투자증권 사건에서 대법원은 정리해고 당시 이미 최종 감원목표인 350명이 달성됐을 수도 있다는 점 등에서 인원삭감의 객관적 합리성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19.11.28. 선고 2018두44647 판결). 최근 선고된 서울행정법원 2019.2.21. 선고 2018구합66944 판결은 정당이 그 소속 근로자에 대해 실시한 정리해고의 적법성이 문제 된 사안에서, 희망퇴직 등으로 이미 목표한 인원감축 규모를 달성했다는 점 등에서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른 한편, 최근 대법원은 희망퇴직 등으로 구조조정 목표(120명)의 대부분(116명)이 퇴직한 사안에서 나머지 4명에 대한 정리해고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본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한 바 있다(대법원 2019.10.18.자 2019두45166 판결). 위 사건 원심판결은 "구조조정 선정 대상자 대부분이 희망퇴직-명예퇴직을 했다는 사정만으로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 때문에 이미 구조조정 대상자로 선정되었던 원고들을 해고할 사유가 소멸했다고 볼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서울고등법원 2019.5.4. 선고 2018누63503 판결).
요컨대, 판례는 사용자가 당초 제시한 감원 목표를 초과한 경우에는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판단했고, 반대로 감원목표가 합리적이라면 그 목표에 근소하게 미달한 경우에도 여전히 정리해고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라. 경영상 필요성 판단의 범위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은 원칙적으로 사업 전체의 경영 사정을 종합적으로 심사해 결정해야 하고 일부 사업부문만의 영업상 수지 등 경영사전을 기준으로 결정할 것은 아니다(대법원 1999.4.27. 선고 99두202 판결, 대법원 2015.5.28 선고 2012두25873 판결).
다만, 법인의 어느 사업부문이 다른 사업부문과 인적-물적-장소적으로 분리-독립돼 있고 재무 및 회계가 분리돼 있으며 경영 여건도 서로 달리하는 경우에는 사업부문을 기준으로 판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대법원 2012.2.23. 선고 2010다3735 판결, 대법원 2015.5.28. 선고 2012두25873 판결 참조).
4. 결 론
대법원이 오랜 기간 정리해고 사건에 관해 다수의 판결을 선고해오면서 판단 기준과 관련해서도 여러 판례가 축적돼 있다. 그러나 다소 상반되는 듯한 판례가 병존하고, 실제 정리해고 사건의 결론도 세부적인 요소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하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도 하므로, 기존의 판례를 바탕으로 현재 사건의 결과를 예상하기 어렵다. 물론, 정리해고 사건에서 대립되는 견해가 맞서는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현재보다 조금 더 분명한 기준을 확립하지 못하면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결론도 그때그때 경제 상황이나 사회적 분위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된다.
※ 본 칼럼은 월간노동법률 2020년 5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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