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도 열심히 일감을 찾고 마케팅 해야 하는 시대다. 그런데 구조조정이나 도산 관련 업무를 많이 하는 변호사는 마케팅도 쉽지 않다. 가령 M&A 법률자문을 많이 한다면 '나중에 좋은 딜 있을 때 자문사로 불러달라'고 하면 되겠으나, '나중에 회사 망할 것 같을 때 불러달라'고 했다가는 신체를 보존하기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구조조정이란 말이 구조조정되지 아니하고 여기저기서 많이 들린다.
비한계기업들도 구조조정 검토
많은 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유동성 위기에 봉착한 것이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바이러스를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수단을 개발하지 못한 상태에서, 주요국 정부는 가계와 기업이 견딜 수 있는 유동성과 현금흐름을 적극적으로 보강하며 일단 버텨보자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 사태의 끝을 예측하기 어려운 이상 한계기업이 아닌 기업들도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실행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 5월 17일 한국경제연구원이 국내 매출액 500대 기업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기업 구조조정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에 따른 경영위기 극복방안은 ▲금융자금 조달 등 유동성 확보(22.5%) ▲휴업 · 휴직(19.4%) ▲급여 삭감(17.5%) ▲명예 · 희망퇴직, 정리해고, 권고사직 등 인력 감축(8.8%) ▲비주력사업 매각, 인수합병(M&A) 등 사업구조 개편(4.4%)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악화가 6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대기업의 32.5%는 인력 구조조정 없이는 버티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인력 구조조정 없이 버티기 어렵다(32.5%)
과거 기업의 구조조정은 대폭적인 비용절감에 초점을 맞춰 인력감축과 자산매각이 주축을 이뤄온 면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구조조정은 정리해고와 같은 말로 취급되어 온 경향도 있다.
그러나 기업에게 임금은 비용이지만 동시에 수요를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임금의 감소는 노동자의 소득감소로 이어져 소비를 정체시키고 이는 전체 경제에 부정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오히려 전통적 의미의 구조조정은 기업의 수익성을 높이고 시장의 수요와 경쟁에 적합하도록 기업의 체력을 강화하는 일체의 경영행위이다.
따라서 구조조정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의 축소나 확장 또는 다각화까지 이르지 못하고 인력과 자산을 줄이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은 대증적 요법에 불과할 수 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상 위기는 수요급감이 큰 원인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수요창출의 기반이 되는 고용을 줄이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최선의 방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 차원에서 현재 정부와 채권단의 움직임은 고강도 구조조정을 강하게 요구하던 과거의 모습을 탈피하여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사 고통 분담 등 자구노력을 전제로 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으나, 고용안정과 함께 향후 기업의 정상화 이익 공유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정상화 이익 공유 지향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 설치와 관련하여 최근 시행된 한국산업은행법 시행령을 보면, 항공과 해운 등 2개 업종을 기간산업 업종으로 지정하고 다른 업종은 금융위원회가 소관부처의 의견을 듣고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지정하도록 했다. 또한 기금으로 취득한 기업의 주식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고, 기업이 주식의 감자나 구조조정 절차 신청으로 기금재산에 손실을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하였다.
기업의 정상화 이익을 공유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기업의 주식 일부를 취득한다는 내용은 출자전환으로 취득한 주식을 채권관리의 수단으로만 보던 과거 정책의 한계를 인정하고, 후견적 위치에 서되 필요한 경우 적극적 개입도 감수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한편 현재 시행되는 정책은 고용유지에 중점을 둔 유동성 공급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은 중요한 화두였는바, 기존 채무의 재조정을 위해서는 워크아웃과 회생절차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고, 사업 시너지를 위한 다각도의 M&A도 필요하며, 구조조정이 불가능한 기업은 조속한 퇴출까지 강구하는 등 전통적인 구조조정 수단이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더 활발하게 이용되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구조조정의 개념과 법리는 IMF 사태로 촉발되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장에 보편화된 것으로 느껴지지만, 여전히 구조조정절차의 진행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내지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우리 채무자회생법을 보면, 파산의 원인인 사실이 생길 '염려'만으로도 회생을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사건을 진행해보면 파산의 원인인 사실은 이미 발생하다 못해 파산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상당수이다(통계를 확인해볼 수는 없었으나, 개시된 회생사건이 종결되지 못하고 폐지되는 비율이 절반에 육박할 것으로 본다).
구조조정의 본질 상수 되어야
법적 절차를 이용하는 구조조정에 대한 거부감은 어느 정도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경쟁력 강화와 총효용 증대라는 구조조정의 본질은 기업의 경영활동에 변수가 아닌 상수로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제도적인 뒷받침도 더 수반되어야 한다.
입법론으로는 회사의 이사에게 재정적 위기상황에서 구조조정 절차를 신청할 법률상 의무를 규정하는 것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고, 조세채권의 우대 문제나 절차비용의 국고지원도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아울러 현행법에도 마련되어 있는 사전회생계획안(이른바 P-Plan) 제출 제도 등 절차 진행을 신속하게 하고, 기존 대주주의 경영권을 가급적 보장하는 방안(출자전환주식을 전환상환우선주로 발행)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구조조정이 반드시 소극적이고 퇴행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 아니다. 채산성이 없는 사업을 정리하거나 인건비를 삭감하는 것도 포함되지만, 그것만으로 기업이 이익을 올리고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 가장 경쟁력 있는 분야를 선택하여 거기에 인재와 자금 기타 필요한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본래의 구조조정이다. 결국 구조조정은 기업에게 선택과 집중을 통한 생존의 문제이다. 코로나19 사태는 분명히 엄청난 위기이지만, 합리적인 선택과 집중으로 구조조정의 파고를 무사히 넘긴다면 분명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으로 믿는다.
※ 본 칼럼은 대한전문건설신문 2020년 5월 18일자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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