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며
연말이 다가오면 많은 기업이 한 해를 마무리하며 직원들의 노고를 격려하기 위해 송년회를 마련합니다.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화합을 도모하는 자리이지만, 때로는 참석 및 음주 강요, 불필요한 언행으로 인한 조직문화 와해, 회식 후 귀갓길 사고 등 예기치 못한 법적 분쟁이 야기되기도 합니다. 한없이 즐거워야 할 송년회가 법적 다툼의 장이 되지 않도록 노동법적 관점에서 관련 쟁점들을 주요 판례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Ⅱ. 송년회 관련 노동법적 쟁점
1. 송년회 참석시간, 근로시간에 해당할까?
가. 근로시간의 개념과 법적 효과
대법원은 근로시간을 “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ㆍ감독 아래 근로계약상의 근로를 제공하는 시간”으로 정의합니다(대법원 2006. 11. 23. 선고 2006다41990 판결, 대법원 2018. 7. 12. 선고 2013다60807 판결 등).
송년회 참석시간이 근로시간에 해당한다면, 사용자는 소정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에 대해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한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합니다(근로기준법 제56조 제1항). 이미 주 52시간을 초과해서 근로한 근로자의 송년회 참석시간이 근로시간으로 인정될 경우 사업주에게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도 있습니다(근로기준법 제110조).
나. 관련 판례 및 고용노동부 지침
송년회나 각종 회식을 근로시간으로 볼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회식은 노동자의 기본적인 노무제공과는 관련 없이
사업장 내 구성원의 사기 진작, 조직의 결속 및 친목 등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임을 고려할 때, 근로시간으로 인정하기는 어렵고, 사용자가 참석을 강제하는 언행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요소만으로는 회식을 근로계약 상의 노무제공의 일환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고용노동부, 「노동시간 단축 가이드」, 2018. 6., 97쪽).
그러나 모든 회식이 근로시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대법원은, 근로시간에 속하는지 여부는 특정 업종이나 업무의 종류에 따라 일률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여러 사정을 종합해 개별 사안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인데(대법원 2017. 12. 5. 선고 2014다74254 판결), 고용노동부 역시 위 매뉴얼에서, 근로시간 해당 여부는
▲사용자의 지시 여부, ▲업무수행(참여) 의무 정도, ▲수행이나 참여를 거부한 경우 불이익 여부, ▲시간ㆍ장소 제한의 정도 등 구체적 사실관계를 따져 사례별로 판단해야 한다는 판단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고용노동부, 「노동시간 단축 가이드」, 2018. 6., 86쪽).
결론적으로, 송년회가 근로시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실질적으로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ㆍ감독 아래에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될 것입니다. 예컨대 ▲참석 여부가 사실상 ‘의무’에 가깝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상사의 언행이 있었는지, ▲송년회에서 경영방침 전달, 실적평가, 교육 등 업무상 의무활동이 중심적으로 이루어지는지, ▲불참 시 인사고과나 배치 등에 불이익이 예정 혹은 암시되었는지, ▲시간과 장소가 사용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정되고 자유로운 이탈이 어려웠는지 등이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참석 여부가 전적으로 자율에 맡겨져 있고, 불참하더라도 인사상 불이익이 없으며, 행사 내용도 순수한 친목 도모에 그치는 경우라면 근로시간으로 인정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2. 송년회에서 어떤 행위를 주의해야 할까?
최근 기업에서 가장 많은 이슈가 발생하고 있는 유형 중 하나는 바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사안들일 것입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송년회 등 회식자리에서 ‘적정범위’를 넘어선 행위들이 자주 발생합니다.
가. 음주를 강요하는 행위
회식 자리에서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음주를 강요하는 행위는 대표적인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의사와 상관없이 음주나 회식 참여를 강요하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의 구체적인 예시로 들고 있습니다(고용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예방ㆍ대응 매뉴얼」, 2023. 4., 91쪽).
부서책임자가 부하직원의 건강 상태에 유의하지 않고 음주를 강요하여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한 것이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위법행위라고 보아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한 사례도 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07. 5. 3. 선고 2006나109669 판결
1)). 해당 사안에서 법원은, 부서책임자가 회식자리를 마련하는 경우 음주 강요로 상대방의 인격적 자율성이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분위기를 적절하게 조절할 업무상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대법원은 “
개인의 육체적ㆍ정신적 건강 상태, 종교나 신념, 성장 배경과 가족 관계 등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음주에 대한 선호도나 거부감의 정도는 사람마다 크게 다를 수 있고,
직장의 규모, 업무의 내용과 방식, 구성원 간의 친소 관계와 조직 내 위계질서를 포함한 직장 문화 등 근로 환경에 따라서 회식 자리에서의 음주와 관련해 근로자 개인이 느끼는 압박감의 정도 또한 다를 수 있다. 상사의 공식적ㆍ명시적 업무 지시가 아니더라도, 회식 참석과 같은 업무 외의 일을 요구하거나 그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상사의 태도가 강압적으로 느껴지는지와 그 정도 역시 근로자의 성격, 경력, 회사 내 지위 등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이를 단지 근로자 개인의 취향의 문제로 취급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기도 했습니다(대법원 2022. 4. 28. 선고 2020도15738 판결).
나. 회식 참여를 강요하는 행위
회식 참여를 강요하거나 일찍 귀가하는 직원을 비난하는 행위 역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법원은 상급자 A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사회초년생인 부하직원 B가 원치 않음에도 새벽 5시까지 술자리에 참석하도록 사실상 강요한 사안에서, B가 업무상 불이익을 우려해 자리를 떠나기 어려웠던 점 등을 들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2. 12. 16. 선고 2021누75377 판결
2)).
또한, 팀장 C가 새벽 1시 30분까지 계속된 송년회 자리에서 팀원들에게 “무조건 남아야 한다”고 말해 참석을 사실상 강요하고, 다음날 전체 회의에서 전날 끝까지 남아 있던 직원들만 호명하여 “끝까지 남아줘서 고맙다. 회사 생활이 업무만 있는 줄 아느냐. 단체회식에서 먼저 빠지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는 것도 팀워크다”고 발언한 사안에서, 불참하거나 먼저 귀가한 직원들을 비난하고 다음 회식에는 끝까지 참석할 것을 강요한 C의 행위를 징계사유로 인정한 사례도 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18. 7. 25. 선고 2018누40548 판결
3)).
따라서 송년회에서 개인의 의사를 무시한 채 음주를 강요하거나, 2차 노래방 등 원치 않는 자리에 참석하도록 강요하는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징계사유가 되거나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까지 문제될 수 있으므로, 사용자는 송년회에서 근로자의 자기결정권과 건강상태를 존중하고, 참여ㆍ음주 여부를 철저히 ‘자율’에 맡기는 문화를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송년회에서 다치면 업무상 재해일까?
가. 업무상 재해의 인정 기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사업주가 주관하거나 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참여한 행사나 행사준비 중에 발생한 사고’를 업무상 사고로 인정하고 있습니다(제37조 제1항 제1호 라목). 이때 핵심 판단 기준은
해당 행사가 사업주의 지배ㆍ관리 하에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대법원은 “근로자가 회사 밖의 행사나 모임에 참가하던 중 재해를 입은 경우에
▲그 행사나 모임의 주최자, 목적, 내용, ▲참가인원과 그 강제성 여부, ▲운영 방법, ▲비용부담 등의 사정에 비추어, 사회통념상 그 행사나 모임의 전반적인 과정이 사용자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고 또한 근로자가 그와 같은 행사나 모임의 순리적인 경로를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 있다고 인정되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정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07. 11. 15. 선고 2007두6717 판결).
이에 따르면,
회사가 주관하고 비용을 부담하며, 대부분의 직원이 참여하는 공식적인 송년회는 통상 사업주의 지배ㆍ관리하에 있는 행사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사업주의 참가에 대한 지시 등 강제성이 없었다거나, 일부 근로자만이 참여하고 비용을 회사가 아닌 근로자가 부담하는 등 단순 친목 모임의 성격을 가지는 경우에는 송년회 중 발생한 사고가 있더라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대법원 2016. 6. 9. 선고 2016두34622 판결). 이하에서는 주요 판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나. 관련 판례
1) 과음이 주된 원인이 되어 발생한 재해
송년회에서의 과음이 주된 원인이 되어 부상ㆍ질병ㆍ신체장해 또는 사망 등 재해를 입은 경우에도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한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습니다(대법원 2008. 10. 9. 선고 2008두9812 판결, 대법원 2015. 11. 12. 선고 2013두25276 판결 등).
이때 업무ㆍ과음ㆍ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사업주가 과음 행위를 만류하거나 제지하였는데도 근로자 스스로 독자적이고 자발적으로 과음을 한 것인지 ▲재해를 입은 근로자 외에 다른 근로자들이 마신 술의 양은 어느 정도인지 ▲업무와 관련된 회식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따르는 위험의 범위 내에서 재해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과음으로 인한 심신장애와 무관한 다른 비정상적인 경로를 거쳐 재해가 발생하였는지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합니다(위 대법원 2013두25276 판결, 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6두54589 판결).
최근 법원은 3일 연속 회식 후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한 근로자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5. 7. 11. 선고 2023구합50653 판결
4)). 한편, 1차 회식을 마치고 2차로 노래방을 갔다가 비상구 문을 화장실로 오인하고 나갔다가 추락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업무와 원고가 입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아 원심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위 대법원 2013두25276 판결).
2) 귀가 중 발생한 재해
귀가 중에 발생한 사고도 업무상 재해가 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팀장이 회사가 개최한 품평회에 참석하여 2차 회식까지 마친 후 평소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귀가하던 중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량에 부딪쳐 사망한 사안에서, 해당 사고가 사업주의 지배ㆍ관리를 받는 상태에서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대법원 2020. 3. 26. 선고 2018두35391 판결).
근로자가 회식 후 통상적인 경로를 현저히 벗어나 사적인 행위를 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등 업무와의 관련성이 단절된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반면,
사업주의 지배ㆍ관리하에 있는 공식 송년회 과정이나 그 직후에 통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범위 내의 사고라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Ⅲ. 나가며
송년회는 한 해의 노고를 격려하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뜻깊은 자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취지와 달리 부주의하게 운영하는 경우 오히려 법적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용자는 근로자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안전을 배려하는 건전한 회식 문화를 조성해야 하며, 근로자 역시 동료를 존중하는 성숙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친목을 다지기 위해 마련한 자리에서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없도록, 관련 법령과 판례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 송년회를 기획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올 한 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즐겁고 안전한 송년회 보내시기 바랍니다.
[요약] 송년회의 노동법적 쟁점과 고려 요소
| 쟁점 |
판단에의 고려 요소(체크 포인트) |
관련 판례 등 |
송년회 참석시간의
근로시간 해당 여부 |
▲사용자의 지시 여부, ▲업무수행(참여) 의무 정도, ▲참여를 거부한 경우 불이익 여부, ▲시간ㆍ장소 제한의 정도 등에 비추어, 송년회 전반이 사용자의 지휘ㆍ감독 하에 있었는지 여부 |
대법원 2017. 12. 5. 선고 2014다74254 판결;
고용노동부, 「노동시간 단축 가이드」, 2018. 6. |
| 송년회에서의 음주 강요 |
▲직장의 규모, 업무의 내용과 방식, 구성원 간의 친소 관계와 조직 내 위계질서를 포함한 직장 문화 등 근로환경, ▲근로자의 성격, 경력, 회사 내 지위, ▲육체적ㆍ정신적 건강 상태, 종교나 신념, 성장 배경과 가족 관계 등을 알고도 반복적으로 술을 권했는지 등 |
대법원 2022. 4. 28. 선고 2020도15738 판결;
서울고등법원 2007. 5. 3. 선고 2006나109669 판결 |
송년회 참여 강요 및
조기 귀가 비난 |
▲상급자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원치 않는 송년회ㆍ2차 참석을 사실상 강요했는지, ▲새벽까지 장시간 술자리를 계속하며 귀가를 허용하지 않는 등 자유로운 이탈이 어려운 분위기였는지, ▲불참하거나 먼저 귀가한 직원에 대해 공개석상에서 비난ㆍ모욕적 발언을 했는지 등 |
서울고등법원 2022. 12. 16. 선고 2021누75377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8. 7. 25. 선고 2018누40548 판결 |
|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 일반 |
▲송년회의 주최자, 목적, 내용, ▲참가인원과 그 강제성 여부, ▲운영 방법, ▲비용부담 등 |
대법원 2007. 11. 15. 선고 2007두6717 판결 |
과음으로 인한 재해에서의
상당인과관계 |
▲사업주가 과음 행위를 만류하거나 제지하였는데도 근로자 스스로 독자적이고 자발적으로 과음을 한 것인지, ▲재해를 입은 근로자 외에 다른 근로자들이 마신 술의 양은 어느 정도인지, ▲업무와 관련된 회식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따르는 위험의 범위 내에서 재해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과음으로 인한 심신장애와 무관한 다른 비정상적인 경로를 거쳐 재해가 발생하였는지 등 |
대법원 2015. 11. 12. 선고 2013두25276 판결;
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6두54589 판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