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지평지성 제14회 뉴스레터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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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계약법상 요건과 절차를 흠결한 계약의 효력
- 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9다51288 판결 손해배상 |
1. 사실관계
(1) 원고는 독일 기업과 분뇨 및 축산폐수처리시설에 사용되는 특정 공법에 관한 기술협약을 맺어서 국내 독점사용권을 취득한 법인이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인 피고는 분뇨처리시설보강 등 사업을 하는 데에 위 공법을 채택하기로 하고 관계법령에 따른 설계작업이 완료된 후 원고와 위 공법을 이용한 시설공사(이하 '이 사건 공사')계약을 체결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하여 원고는 기계장비(이하 '이 사건 기계장비')를 미리 주문·제작하며 만약 피고의 사정으로 시설공사계약이 체결되지 못하면 피고가 선발주 기계설비 대금 등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하기로 하는 기술공동개발협약(이하 '이 사건 협약')을 맺었습니다.
(2) 이후 피고는 사업의 타당성 조사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을 발주하였고 해당 업체로부터 설계도서를 최종 보고받은 후 상급 지자체에 3차례에 걸쳐 사업 시설의 설치승인을 신청하였으나 모두 반려되거나 보완요구를 지시 받았습니다. 한편 원고는 신용장을 개설하는 등 이 사건 기계장비의 주문·제작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여 기계장비를 부산항을 통하여 수입하였습니다.
(3) 이후 피고는 원고로부터 시설공사계약의 체결을 독촉 받자 피고의 사정으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으나 조속한 시일 내에 절차를 추진할 것이라고 통보하다가, 이 사건 사업과 관련하여 특혜의혹이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고 관련 공무원들에 대한 경찰수사가 개시되자, 더 이상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원고와의 계약체결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2.
원고의 주장 및 원심 법원의 판단
가. 원고의 주장
피고의 귀책사유로 시설공사계약이 체결되지 못하였으므로, 피고는 이 사건 협약에서 약정한 바에 따라 기계대금 등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 원고의 주장이었습니다.
나.
원심·법원의 판단
이에 대하여 1심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습니다.
원고와 피고는 이 사건 협약에서 원고가 공사기간 단축을 위하여 기계장비를 미리 주문·제작하며 피고 측의 사정으로 시설공사계약이 체결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피고가 선발주 기계설비 대금 등 원고의 손해를 배상하기로 약정한 사실, 피고는 현재 이 사건 사업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은 채 원고와의 계약체결을 거부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하고, 각 증거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피고 측의 사정으로 시설공사계약이 체결되지 못하게 된 것이므로 피고는 이 사건 협약에서 약정한 바에 따라 기계대금 등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항소심 법원도 손해배상의 범위에 대한 판단만 달리 하였을 뿐, 기초 사실 및 피고의 손해배상책임 여부에 대하여는 1심 법원의 판단을 그대로 인정하였습니다.
3. 대법원의 판단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 법원과 판단을 달리하여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원심 법원에 환송하였습니다. 대법원 판단의 요지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 제11조 제1항, 제2항에 의하면 지방자치단체가 계약을 체결하고자 할 때에는 계약의 목적, 계약금액, 이행기간, 계약보증금, 위험부담, 지체상금 기타 필요한 사항을 명백히 기재한 계약서를 작성하여야 하고, 그 담당 공무원과 계약상대자가 계약서에 기명· 날인 또는 서명함으로써 계약이 확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위 각 규정의 취지에 의하면 지방자치단체가 사경제의 주체로서 사인과 사법상의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는 위 법령에 따른 계약서를 따로 작성하는 등 그 요건과 절차를 이행하여야 할 것이고, 설사 지방자치단체와 사인 사이에 사법상의 계약 또는 예약이 체결되었다 하더라도 위 법령상의 요건과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계약 또는 예약은 효력이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협약서를 보면 이 사건 공사의 대금이나 이를 확정할 방법과 기준 등에 관한 아무런 규정이 없고, 피고 측의 사정으로 시설공사계약이 체결되지 아니하는 경우에 피고가 배상하기로 한 기계설비 대금 등 원고의 손해액이 얼마인지 정해져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이를 특정할 기준이나 방법도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건 협약서는 구 지방재정법이 준용하는 '국가계약법''에서 정한 요건과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계약 또는 예약으로서 효력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4. 평가
지방재정법 및 국가계약법상의 요건과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체결된 지방자치단체와 사인 사이의 사법상 계약의 효력이 무효라는 대법원 판례는 종래에도 있었습니다(대법원 2005. 5. 27. 선고 2004다30811,30828 판결 등). 지방자치단체가 사경제의 주체로서 사인과 사법상의 계약을 체결하는 데에 따라야 할 요건과 절차를 규정한 관련 법령은 계약 내용을 명확히 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사인과 사법상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적법한 절차에 따를 것을 담보하기 위한 것으로서 강행규정이라고 본 것입니다.
나아가, 강행규정에 위반된 계약의 성립을 부정하거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되는 권리의 행사라는 이유로 이를 배척한다면 위와 같은 입법취지를 몰각시키는 것이어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런 주장이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04. 1. 27. 선고 2003다14812 판결 등).
이러한 대법원 판례가 있는데도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이 이 사건 협약의 효력을 인정한 것은 강행규정으로 인정되는 국가계약법령의 범위와 의미를 달리 보았기 때문입니다. 1심 법원은, "국가계약법 제11조, 제12조 등은 지방자치단체가 사인과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그 계약내용을 명확히 하고 적법한 절차에 따를 것을 담보하기 위하여 일정한 사항을 기재한 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하도록 하는 데에 그 취지가 있다"고 하면서, "계약의 목적, 당사자의 의무 및 의무 위반시의 손해배상책임 등을 명백히 규정한 협약서가 작성된 이상, 정식 시설공사계약에 앞서 체결된 협약의 특성 때문에 계약금액, 이행기간 등을 구체적으로 정할 수 없어 이를 기재하지 않았다고 하여 이 사건 협약이 국가계약법 제11조, 제12조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볼 수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협약을 체결할 당시 손해액을 특정하거나 그 기준을 정하기 어려웠다는 구체적 사정도 감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반해 대법원은 국가계약법 중 강행규정의 성격이 인정되는 '요건'과 '절차' 규정의 범위를 원심 법원 보다 더 넓게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국가계약법령에 대하여 공법으로서의 강행규정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것은 국가계약의 적법성을 통제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대법원은 국가계약법령상의 입찰절차나 낙찰자 결정기준에 관한 규정의 성질을 국가 내부규정에 불과하다고 보면서 계약담당공무원이 입찰절차에서 국가계약법에 어긋나게 적격심사를 하였다 하더라도 그 사유만으로 당연히 낙찰자 결정이나 그에 기한 계약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1. 12. 11. 선고 2001다33604 판결 등 다수). 국가계약법령에서 입찰자의 이행실적, 기술능력, 재무상태, 과거 계약이행 성실도, 자재 및 인력조달가격의 적정성, 계약질서의 준수정도, 과거 공사의 품질정도 및 입찰가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심사기준에 따라 세부심사기준을 정하여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도 이러한 규정은 국가가 사인과의 사이의 계약관계를 공정하고 합리적·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관계 공무원이 지켜야 할 계약사무처리에 관한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것으로, 국가의 내부규정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입니다(대법원 1996. 4. 26. 선고 95다11436 판결 등).
이와 같은 판례의 태도까지 감안해 본다면 국가계약법령에 대한 대법원의 해석은 사인보다는 국가에 유리하게 풀이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국가계약법령의 강행규정성을 어느 범위에서 인정할지, 특히 특정 국가계약의 효력을 어디까지 부인할지를 정할 때에는 계약의 효력이 부인됨으로써 추구하는 공익과 침해되는 사익의 형량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5. 다운로드 : 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9다51288 판결 손해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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