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여름 이맘때쯤, 두 외국인투자법인의 흡수합병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그렇듯 베트남에서 법리에 어긋나지 않는 최초의 사례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수많은 관련 기관 담당자들을 설득하는 작업과 인내를 필요로 하였습니다.
베트남 법령을 통틀어 흡수합병 관련 법 조항은 기업법 153조가 유일합니다. 기업법 153조 1항은 동일한 형태의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회사(merging companies)가 회사의 모든 자산, 권리, 의무와 이권을 다른 회사(merged company)에 양도함으로써 흡수합병 될 수 있으며, 동시에 merging companies는 소멸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이해하는 기업합병과 그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업합병은 둘 이상의 회사가 청산절차를 거치지 않고 하나의 회사로 합치는 것을 의미하며 합병에 따른 소멸회사의 권리 및 의무가 존속회사에 포괄적으로 이전되는 회사 간의 행위인 것입니다.[1]
그러나 3개월 이상을 끌어온 합병에 관한 서류심사 결과, 베트남 관련 당국의 법 해석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흡수합병의 경우에도 기존의 회사가 소멸하는 이상 청산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것입니다. 합병신청서류 준비기간과 심사기간을 합쳐 약 5개월을 무위로 돌려놓은 것이었습니다.
2009년 말까지 합병작업을 마무리 짓고 2010년부터 제2의 도약을 준비하던 고객사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고객사에게 중앙정부의 최종 유권해석을 받을 때까지 더 기다려 달라고 설득할 용기를 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용기는 고객사가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지방정부의 흡수합병에 대한 유권해석은 옳지 않다고 판단되며, 사업계획에 다소 차질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법과 이치에 맞는 최종 유권해석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고객사의 용단이 없었다면 베트남에서의 흡수합병에 대한 그릇된 선례만 남기는 우를 범하게 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후 3개월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중앙정부의 최종 유권해석은 이치에 맞는 법률의 해석이 이루어짐으로써 따로 청산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흡수합병을 이룰 수 있게 되는 최초의 사례를 남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두 회사 간의 자본금 문제, 매각대금의 지불에 대한 조세 문제 등에 대한 사전 확인 작업을 진행하느라 3개월여의 시간이 더 소요되어서야 흡수합병의 터널 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0년 7월, 관련 당국으로부터 존속회사의 투자허가서 개정 초안을 함께 검토하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은 도이모이 정책발표 후 문호를 개방하고 투자유치를 위해서 법률을 정비하는 등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 있어 부족하고 미숙한 점들이 산재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비점들은 경제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베트남 국민들의 염원이 있는 한 지속적으로 개선될 것입니다.
따라서 좀 더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릴 줄 아는 자세도 함께 겸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상기 고객사가 40년동안 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성장한데에는 그러한 기다림의 미학이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요?
[각주]
1. 제해진, M&A 이론과 실제(제1장 M&A의 개요), 2004, 2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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