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생절차 진행 중인 채무자의 신규자금 조달의 필요성
필자는 지난 몇 년 동안 파산부 판사와 변호사로서 도산업무를 취급하면서 기업과 개인이 과도한 채무의 압박에 시달리면서 부실화되어 가는 과정과 회생절차를 통한 채무 조정의 과정, 그리고 M&A를 통하여 다시 갱생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실 회생절차로 진입한 채무자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M&A를 추진하는 우리의 회생 실무 관행은 매우 독특한 현상입니다. 회생계획을 통하여 재무구조를 개선하여 재기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의 영위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없어 무수히 많은 이해관계인의 희생이라는 기반 위에서 어렵사리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사업이 위축되고 나아가 채무자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회생절차 개시 결정이 내려진 채무자가 자신의 잠재적인 사업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하여 필요한 신규자금의 원활한 조달방법을 확보하기 위한 입법적인 조치를 고대하여 왔고, 드디어 지난 9월 29일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서 의결되어 그 결실이 맺어졌습니다.
2. 미국의 DIP Financing 실태
도산법과 도산실무가 매우 발달한 미국은 우리의 공익채권에 해당하는 Priority Claim을 10단계로 우선순위를 나누어 규정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신규자금 차입으로 인한 채권은 최우선의 순위를 가지고 있어 이를 보통 superpriority claim이라고 합니다. 미국 도산법이 1978년 개정으로 이와 같은 규정을 갖추게 되었지만, 초기에는 별로 활용이 되지를 않고 있다가 1980년대 체이스맨해튼 은행이 superpriority 규정을 활용한 대출을 하기 시작하면서 자주 이용되어 지금은 이런 신규자금 차입 거래를 DIP Financing이라고 부를 정도로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02년 미국 내 DIP Financing 실적은 미화 100억 달러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으며 최근까지도 이른바 mega case를 중심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습니다. 작년 9월 Lehman Brothers 사태 이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Chrysler나 GM 사건에서도 금융기관은 아니지만, 미국 정부가 Chapter 11 신청 직후 해당 회사에 자금을 제공한 바 있는데 이 역시 일종의 DIP Financing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개정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의 내용
종전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서도 회생절차 개시 신청 후 차입한 자금으로 인한 채권을 공익채권으로 규정하여 회생절차 개시 전의 원인에 기하여 발생한 회생담보권이나 회생채권에 비하여 우선적으로 변제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었으나 채무자의 재산이 신규자금 차입 채권을 비롯한 모든 공익채권을 변제하기에 부족한 때에는 채권액의 비율에 따라 안분변제를 받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개정 전 법률 제179조 제5호, 제12호, 제180조 제1항, 제2항, 제7항). 그러나 이와 같은 공익채권 중 관리인이 회생절차 개시 후에 한 자금 차입으로 인한 채권(제179조 제1항 제5호)과 채무자가 회생절차 개시 신청 후 법원의 허가를 얻어 행한 자금 차입으로 인한 채권(제179조 제1항 제12호)은 다른 공익채권보다 우선적으로 변제하는 것(개정 법률 제180조 제7항)으로 개정하여 이른바 신규 차입금 채권에 대하여 Super Priority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한편, 개정 법률은 이처럼 신규자금 차입금 채권이 Super Priority를 갖게 되므로 다른 이해관계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회생법원이 신규자금 차입 허가를 함에 있어서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제179조 제2항)고 규정하여 무분별한 신규자금 차입으로 채무자나 그 사업이 또 다시 부실화되는 것을 억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4. 앞으로의 과제 - 신규자금 조달의 용이성 제고를 위한 제언
1978년 파산법 개정 직후 미국의 사례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우리 회생절차에서 신규 차입자금 채권에 대하여 최우선적인 지위를 인정하는 조항을 신설하였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회생절차 진행 중인 채무자가 용이하게 신규자금을 차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과문이지만 필자가 알고 있는 바로는 채무자가 회생절차를 신청하기만 해도 채무자의 기존 금융기관 차입금 채무의 기한의 이익이 상실되고 금융기관은 그 채무자의 신용을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어 현실적으로는 회생절차를 신청한 채무자가 개정 법률을 활용하여 신규자금을 차입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입니다.
생각해보면 채무자가 회생절차를 신청한다는 것은 곧 지급 불능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이어서 그 자체로 채무자의 채무 상환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으므로 금융기관의 이러한 태도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채무자에 대하여 이미 발생한 모든 채권은 회생절차 진행 중에는 회생담보권과 회생채권으로 그 권리행사가 중지되고 회생계획에 따라 그 채무가 조정되어 채무자가 장래의 사업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소득의 범위 내로 감축되어 있고, 이번 개정 법률로 회생절차 내에서 다른 공익채권보다 우선적으로 변제를 받을 수 있는 지위가 보장되고 있습니다. 만일 채무자의 사업이 예상보다 부진하게 전개되어 채무 변제 재원의 확보가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 채무자에 대하여는 M&A가 진행되어 다시 채무 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신규조달 자금 채권은 공익채권이어서 그때에도 권리 감면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여기에다가 현재의 동산 담보 제도와 채권 담보제도가 개선되면 채권금융기관이 채무자로부터 제공 받아 활용할 수 있는 담보의 종류는 더 늘어나게 됩니다. 나아가 신규자금으로 조달한 자금의 집행은 회생법원의 공정하고도 투명한 감독하에 이루어지므로 또 다른 감시장치가 보장됩니다.
이런 상황을 두루 생각해 보면, 채무자에 대하여 신규자금 대출로 공익채권 중 최우선적 지위에 획득하게 되는 채권금융기관은 그 신규자금 대출금이 낭비되거나 상환되지 아니할 확률이 매우 낮은, 결과적으로 채권금융기관에게는 상환불능의 위험이 매우 낮은 대출거래를 하게 되는 것이라는 필자의 생각이 채무자의 이익에만 치우친 짧은 소견일까요?
모처럼 채권자와 채무자의 이익을 위하여 마련된 개정 법률의 입법취지에 따라 회생절차 진행 중인 채무자에 대한 신규자금 대출을 제약하는 요소들이 신속히 제거되고 개정 법률을 활용하여 채무자의 효율적인 회생이 촉진되고, 나아가 채권자와 우리 사회의 경제적인 손실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사려 깊은 발상의 전환으로 회생절차에서 슈퍼맨으로 자리 잡게 되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그 슈퍼맨이 눈부신 활약으로 회생절차 개시 신청 전의 그 짧은 시간 동안 운영자금 확보 방안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변호사인 필자의 수고도 덜어주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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