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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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법은 ‘common law'로 불립니다. 'common law'는 일반적으로 ‘보통법'으로 번역되어 알려져 있습니다. ‘common law'는 대륙법인 'civil law'와 대비되는 법체계로서, 불문법, 즉 문서로 만들어지지 않은 법, 관습법 또는 case law로 불려지기도 합니다. 영어 ‘common'이란 단어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공통의, 일반적인, 보통의'라는 뜻인데, 그러면 영미법, 특히 영국법(미국의 주요 법체계는 영국법을 계승하였고, 따라서 ‘common law'의 기원은 영국법이라 하겠습니다)은 왜 'common law'라 불려지게 되었을까요?

영국에서 ‘common law'가 만들어지고 불려지게 된 것은 대략 1250년 무렵의 일입니다. 노르만의 정복자 윌리엄이 영국의 왕위를 차지한 해인 1066년부터 약 200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입니다. 노르만족의 침략이 있기 전 영국은 각 지역의 영주들이 각기 서로 다른 법체계를 자신이 지배하는 지역에 적용해 왔습니다. 이런 현상은 영국 각 지역을 침략한 다양한 침입자들이 전한 법체계의 영향과 그 지역에서 생성되어 전해져 온 지역 관습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법체계는 정복자 윌리엄이 영국을 점령하면서 조금씩 바뀌게 됩니다. 새로운 정복자는 왕권을 강화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실시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정복자 윌리엄을 비롯한 노르만족의 왕들은 왕권강화를 위해 자신의 신하를 지방에 직접 파견하여 왕을 대리하여 지방의 행정을 통제하고 감시하도록 하였습니다. 지역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법에 따라 조정하고 판단하는 역할도 당연히 지역 파견관들의 임무가 되었지요. 지역을 순회하는 관리들이 다시 웨스터민스터에 돌아왔을 때 그들은 각 지역에서 발생한 분쟁들에 관해 논의를 하였고, 유사한 사건이 각 지역마다 서로 다른 규칙과 관습에 의해 다른 결론이 내려지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바로 잡고자 하였습니다. 그 결과 각 지역의 관습 중 부당한 관습은 없애고, 합리적이고 타당한 관습과 규칙을 채택하여 이를 모든 지역에 적용되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약 2세기 정도 거치면서 점점 잉글랜드의 모든 지역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고, 적용하고자 하는 규범들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잉글랜드인들은 이 규범들을 ‘모든 지역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규범'이라는 의미에서 ‘common law'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common law'라는 용어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즉 ‘common law'는 ‘모든 지역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법'이라는 역사적 필요성을 충족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사람들의 삶이 부단히 변화하고 발전하듯이, 사람들의 삶과 운명을 같이하는 생각, 언어, 개념들도 단일하거나 고정적인 것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함께 변화하고 발전합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common law'도 처음 생성은 ‘모든 지역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법'이라는 의미였을 뿐이지만, 그 후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면서 추가적인 의미를 더 가지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에쿼티(equity)에 대한 상대적 개념으로서 ‘common law'이고, 다른 하나가 의회에서 제정되는 법률에 대한 상대적 개념으로서 ‘common law'의 개념입니다.

형평법으로 번역되고 있는 에쿼티는 ‘common law'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산물입니다. 에쿼티는 13세기말부터 15세기 무렵 ‘common law'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부정의를 해소하고자 만들어졌습니다. ‘모든 지역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법, 그래서 과거의 사건 결정이나 상위 법원의 선례를 벗어나지 않고, 그에 강하게 구속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법' 인 ‘common law'의 개념은 한편으로 형식이나 구제방법에 있어서 경직성을 낳았습니다. 예컨대 토지매수인이 토지매도인의 계약파기를 이유로 관청에 소송을 제기하면 ‘common law'의 원칙은 그 손해를 물어주라고 명령할 뿐, 토지매도인으로 하여금 계약을 이행하라는 명령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손해만을 배상해 주라는 것은 계약대상인 토지 자체를 원했던 토지매수인의 목적과는 일치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에 토지매수인은 왕 또는 왕을 대리하는 신하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해 달라고 청원을 하였고, 정의로움의 상징이 되어야 했던 왕으로서는 그 문제를 해결해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를 해결해 주는 절차와 그 절차를 통해 새로운 법률 원칙이 만들어졌는데, 영국인들은 이를 ‘common law'와 구별하여 에쿼티로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역사에서 에쿼티와 ‘common law'는 충돌하거나 갈등관계를 빚기도 하였는데, 동일한 사건에 에쿼티와 ‘common law'가 충돌하면 에쿼티를 우월한 원칙으로 받아들여 판단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에쿼티는 오늘날까지도 영국 법체계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common law'라는 용어는 이 같은 에쿼티의 상대적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한편 'common law'라는 개념은 의회에서 만들어진 법률과 구별되는 불문법의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모든 지역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법' 또는 에쿼티의 상대적 개념으로서 ‘common law'의 의미는 역사적 의의가 클 뿐, 오늘날 그와 같은 의미로서 큰 존재 의의를 가지지는 않는다 하겠습니다. 근대국가가 형성된 이후 법은 국가의 관할권이 미치는 모든 지역에 통용되는 규범으로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있고, 에쿼티는 매우 특별한 분야에 한정되어 이루어진 원칙으로 ‘common law'를 보완하는 원칙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하여 오늘날 ‘common law'의 의미는 성문법과 대별되는 의미로서 더 큰 개념적 특징을 지니는 용어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결정이나 상위 법원의 결정이 구속력을 지닌 법 또는 법원칙이 되는 것, 이것이 성문법과 구별되는 ‘common law'의 의미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의미의 ‘common law'는 ‘case law'와 같은 뜻으로 사용됩니다.

오늘날 ‘common law'는 성문법과 대별되는 불문법 또는 선례법을 의미합니다. 성문법을 법체계의 근간으로 삼는 대륙법 체계의 상대적 개념으로 영미법 체계의 특성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개념으로서 용어가 단순히 ‘unwritten law'로 불리지 않고, 또 ‘case law'로만 불리지 않고 보통법이라는 의미의 용어인 ‘common law'로 불리게 된 것은 11세기 이후 영국의 노르만 왕조가 자신의 왕국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법을 필요로 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며, 그 용어가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계속 사용되어왔기 때문입니다.


※박용대 변호사는 현재 영국에 있는 'King's College London'에서 연수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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