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11년 4월 1일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이 시행된 지 30년이 되는 날입니다. 공정거래법의 제정이 최초로 추진된 시기는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당시 시멘트, 밀가루, 설탕을 생산하는 소수의 대기업들이 과점시장을 형성하고 담합을 통해 시장질서를 위협한 소위 '삼분사건(三粉事件)'이 발생하자 1964년 정부에서는 전문 29개조로 구성된 공정거래법 초안을 작성하여 발표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법률 제정의 시도가 있었지만 업계의 강력한 반발과 정부의 의지 부족 등으로 성사되지 못하다가 정치적 혼란시기였던 1980년 말 당시 국가보위입법회의에 공정거래법률안이 상정되어 그 해 12월 23일 의결되었고, 12월 31일 공포되어 1981년 4월 1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1890년에 반트러스트 정책의 기본법이라 할 수 있는 셔먼법(Sherman Act)이 제정되었으니 벌써 12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이웃 일본만 해도 『사적독점의 금지 및 공정거래의 확보에 관한 법률』을 1947년 제정하여 60년이 넘게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30년 경쟁법 역사는 확실히 보잘 것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최근까지의 공정거래법 발전과 집행 성과에 대해서는 국내외적으로 나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 주도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독과점적 시장구조의 심화와 민간경제 주체간 불균형에 따른 변칙적인 거래행위의 만연 등 우리나라의 특유한 경제환경은 오히려 공정거래법이 조기에 정착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감시활동과 법조계 및 학계의 지원, 경쟁당국의 법 집행의지와 경쟁정책의 국제적 조화 추진 등이 더해져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당초 경제기획원 소속기관으로 출범한 공정거래위원회는 1980년대까지 주로 불공정거래행위의 시정을 중심으로 제도를 운영하였습니다. 이후 사회 전반에 불어온 민주화 바람을 타고 독과점적 시장구조 특히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불공정거래행위 사건 처리 위주에서 점차 독과점적 시장구조 개선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고,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부터는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 개선과 투명경영에 적극 관여하는 정책을 추진하다가 최근 들어서 카르텔이나 시장지배적 지위남용에 대한 규제와 같이 경쟁정책 본연의 업무에 보다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위와 같은 정책적 고려에 따라 그 동안 공정거래법은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는데, 주로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규제와 같은 경제력집중억제시책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특히 IMF 위기 극복과정에서 기업구조조정 촉진을 위해 1999년 지주회사의 설립을 제한적으로 허용하였고, 1987년부터 시행되었던 출자총액제한제도는 2009년의 법개정으로 폐지되었습니다. 현재에도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정부 및 의원발의 형식으로 여러 건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그 중에서 최근까지 논란의 중심에 있는 개정안은 지난 2009년 4월에 정부에서 제안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입니다. 위 개정안은 2010년 4월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를 통과하였지만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서 1년 이상 발이 묶여 있습니다. 개정안의 주요 쟁점은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의 완화인데 특히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회사의 지분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에 대해서 쉽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서는 일반 지주회사 및 그 자회사가 금융업 또는 보험업을 영위하는 국내회사의 주식을 원칙적으로 소유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지주회사를 설립할 때 보유하고 있던 금융회사 지분은 2년 내에 처분해야 하며, 특별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2년을 연장할 수 있으니 최장 4년 안에 보유지분을 처분해야 합니다. 따라서 올해 상반기에 법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2007년 7월에 지주회사로 된 SK는 올해 7월까지 SK증권을 매각해야 하고, 2007년 9월에 지주회사가 된 CJ는 올해 9월까지 CJ창업투자와 삼성생명 보유지분을 처분해야 합니다. 두산도 2009년 1월에 지주회사로 전환했기 때문에 2013년까지 두산캐피탈 지분을 매각해야 할 처지에 있습니다. 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야당은 이제 와서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회사 보유를 허용할 경우 LG그룹과 같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카드사와 증권사 등 금융자회사를 매각한 경우와 형평성에 문제가 있고, 지주회사로 전환하고도 유예기간을 얻으면서 금융회사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 버텨온 특정 대기업에게 혜택을 주는 것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올 4월 임시국회에서 법 개정안 처리의 윤곽이 어느 정도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근 들어 공정거래법 집행기관으로서의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서 많은 의견들이 개진되고 있습니다. 불공정거래행위 등 사적 분쟁의 성격을 갖는 사건 보다는 카르텔이나 독과점적 시장구조의 개선과 같이 경쟁정책 본연의 업무에 좀 더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2007년 말에 설립된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이 불공정거래행위 신고사건과 가맹사업법 관련 사건의 일부를 처리하고 있지만 강제력 없는 조정의 역할만을 부여 받고 있어 공정거래위원회의 업무를 대신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준사법기관으로서 사실상 1심의 역할을 맡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사건처리절차에 있어서 객관성과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전원회의 심의단계에서 참고인 대리인의 참여가 강제적으로 제한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심의의 공개와 참여 문제에 대해 논란이 일기도 하였습니다. 실체법의 적정한 집행 못지 않게 피심인이나 이해관계인의 절차적 권리가 보장되지 않을 경우 준사법기관으로서의 공정거래위원회 결정에 대하여 신뢰를 보장 받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현행법상 공정거래위원회는 위원장과 부위원장 각 1인을 포함하여 모두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됩니다. 그 중 3인은 상임위원이고 나머지 4인은 비상임위원으로서 대통령이 전부 임명합니다. 또한 비상임위원의 경우 주로 법조인이나 학계의 전문가들이 겸직 형태로 임명되고 있어 점점 복잡 다난해지는 공정거래사건의 심리에 전념할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의 임명권한을 분산해야 한다거나 비상임위원제도를 폐지하고 전원을 상임위원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최근 권택기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는 금융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여타의 합의제 행정기관과 마찬가지로 비상임위원 4명을 국회와 경제단체 등 외부의 추천을 통해 임명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비상임위원의 추천권한 분산을 통해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다 강화하자는 취지일 것입니다.
공정거래법 시행 30년의 역사는 우리나라 경제 및 정치발전과 국제적 위상 강화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하였습니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미국이나 EU의 경쟁당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국제적 공조를 같이 하고, 경쟁법 집행의 경험과 노하우를 후발 경쟁당국과 함께 나눌 수 있을 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부족한 인력과 예산에도 불구하고 많은 노력을 보여 준 공정거래위원회, 실무적 경험과 이론적 지원을 계속해온 법조 및 경제학계, 그리고 경제적 약자의 권익보장과 조화로운 시장질서에 관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준 시민단체를 포함한 모든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까지의 진행상황을 보면 앞으로 우리나라 경쟁정책과 그 집행의 발전속도는 더욱 더 가속될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공정거래법 시행 30주년을 다시 한번 축하하며, 자유로우면서도 공정한 시장질서가 공고히 정착되어 그 혜택을 우리 모두가 받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퀴즈 하나 드리겠습니다. 지난 1981년 공정거래법 시행 이후 2010년 말까지 사업자에게 부과된 과징금 총액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정답은 3조 826억 원입니다. 그러면 단일기업 기준 최다 과징금 부과액은 얼마일까요? 지난 2009년말 시장지배적지위남용으로 퀄컴에게 부과된 2,731억 원입니다. 현재 위 퀄컴 사건은 저희 법무법인에서 공정거래위원회를 대리하여 행정소송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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