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설
법률상 원인 없이 타인의 재산 또는 노무로 인하여 이익을 얻고 이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이익을 반환해야 하는데(민법 제741조), 이를 부당이득반환이라고 합니다.
종래 통설은 이득의 유형을 구별하지 않고 부당이득의 요건을 ① 법률상 원인의 결여, ② 이득의 취득, ③ 손해의 발생, ④ 이득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로 나누어 검토해 왔습니다. 이에 비해 유형론은 각 요건을 검토함에 있어 이득의 유형(급부부당이득, 침해부당이득)에 따라 달리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유형론에 의할 때 급부부당이득이란 계약 등 법률행위를 원인으로 급부가 행하여졌으나 그 법률행위가 무효ㆍ소멸된 경우에 급부행위로 인해 발생한 이익을 말하고, 침해부당이득이란 침해자가 손실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타인의 재산적 이익이 있는 법적 지위를 침해하여 얻은 이익을 말합니다.
한편 3자 이상의 다수당사자 사이에 발생하는 부당이득의 유형은 ① 재산의 이전이 직선적으로 연속되는 소위 ‘직선연결형’과 ② 복수의 당사자 사이에서 재산의 이전이 1회로 그치는 소위 ‘삼각관계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2. 이 사건의 사실관계 및 쟁점
(1) 이 사건의 사실관계 및 청구의 내용
이 사건의 원고들은 A재건축조합의 조합원들이고, 피고는 재건축의 시공사인 B건설입니다. 원고들은 정관 및 조합원총회의 결의에 따라 A재건축조합에 대해 추가부담금 등을 납부할 의무를 부담하고, A재건축조합은 피고와 재건축사업공사계약을 체결하였고, 그에 따라 피고에게 공사대금 등을 지급할 의무를 부담합니다.
원고들은 임시총회 및 정산총회의 결의에 따른 A재건축조합의 지시에 따라 피고에게 추가부담금 등을 직접 지급하였는데, 원심의 판단에 따르면 위 임시총회 및 정산총회의 결의에는 하자가 있어 결의가 부존재하거나 무효인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피고는 A재건축조합과 공동사업주체이고, 조합 사무실 옆에 직원을 상주시키면서 분양계약의 체결, 대금수납·관리 등 제반 분양업무를 포함한 재건축조합 업무를 대행하였으며, 추가부담금 납부에 관한 위 임시총회 및 정산총회의 결의를 주도하고 그 이행을 사실상 강제하였습니다.
원고들은 시공사인 피고를 상대로 추가부담금 납부에 관한 위 임시총회 및 정산총회 결의의 부존재(또는 무효)를 주장하면서 이미 납부한 추가부담금 등의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하였습니다.
(2) 이 사건의 쟁점
① 먼저 계약의 일방당사자(원고들)가 계약 상대방(A재건축조합)의 지시 등으로 급부과정을 단축하여 계약상대방과 또 다른 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제3자(피고)에게 직접 급부한 경우(이른바 삼각관계에서의 급부가 이루어진 경우)에 ‘계약의 일방당사자(원고들)가 제3자(피고)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입니다.
② 나아가 제3자(피고)가 급부(추가부담금 등)를 수령할 때 계약의 일방당사자(원고들)가 계약상대방(A재건축조합)에 대하여 급부를 한 원인관계인 법률관계(임시총회 및 정산총회 결의)에 무효 등의 흠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경우 ‘부당이득반환청구의 허용 여부’에 관한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지 여부가 두 번째 쟁점입니다.
3. 원심의 판단
원심(서울고등법원 2006년 6월 14일 선고 2004나 27350 판결)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면서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하였습니다.
① A재건축조합에서 조합원들의 추가부담금 등 납부를 결정한 이 사건 임시총회 및 정산총회의 결의가 부존재하거나 무효이므로, 조합원인 원고들이 추가부담금 등을 납부할 법률상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A재건축조합과 피고의 추가부담금 등의 부과에 따라 이를 납부하였다.
② 따라서 원고들은 그 금액 상당의 손실을 입었고, 피고는 원고들이 납부한 금원을 공사대금 등에 충당함으로써 같은 금액 상당의 이득을 얻었으므로, 이러한 이득을 원고들에 대한 관계에서 피고가 그대로 보유하게 하는 것은 공평의 관념에 반한다.
③ 피고는 직접 또는 A재건축조합과 공동으로 원고들에게 추가부담금 등을 부과ㆍ징수하였으므로 그 이득을 원고들에게 반환할 의무가 있다(쟁점 ①).
④ 설사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피고가 임시총회 및 정산총회의 결의에 하자가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던 이상 피고는 그 이득을 원고들에게 반환할 의무가 있다(쟁점 ②).
4. 대법원의 판단과 대상 판결의 의의
(1) 대법원의 판단
그러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면서 피고의 상고를 인용해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환송하였습니다.
① 피고가 A재건축조합의 제반 업무를 대행한 것은 A재건축조합과의 사이에 체결된 재건축사업공사계약의 약정이나 사실상의 업무협조에 따른 것에 불과하므로 이를 두고 피고가 원고들과의 관계에서 직접 추가부담금 등을 부과ㆍ징수하는 법적 지위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 원고들이 피고에 대해 한 급부는 원고들의 A재건축조합에 대한 ‘추가부담금 등의 납부의무’의 이행으로서 이루어진 것임과 동시에 A재건축조합의 피고에 대한 ‘공사대금 등 지급채무’의 이행으로서도 이루어진 것이고, 다만 조합의 지시 등으로 그 급부과정을 단축해 원고들이 피고에게 직접 급부한 것으로 평가된다(삼각관계 하에서 이루어진 급부).
② 원고들이 추가부담금 등을 납부한 법률상 원인이 된 임시총회와 정산총회가 부존재 또는 무효로 되었다고 하더라도, 피고는 A재건축조합과 사이의 공사계약에 따른 공사대금 등의 변제로서 원고들로부터 추가납부금 등을 수령한 것이므로 피고가 그 급부의 수령에 대한 유효한 법률상 원인을 보유하고 있다(쟁점 ①).
③ 나아가 피고가 원고들로부터 급부를 수령함에 있어, 추가부담금 등 납부의 법률상 원인이 된 임시총회와 정산총회가 부존재하거나 무효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법률상 원인 없이 급부를 수령하였다는 이유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 없다(쟁점 ②). “이득자가 손실자의 부당한 출연 과정을 알고 있었거나 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그 이득이 손실자에 대한 관계에서 법률상 원인이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2003년 6월 13일 선고 2003다 8862 판결은 ‘손실자의 권리가 객관적으로 침해당하였을 때 그 대가의 반환을 구하는 경우(침해부당이득관계)에 관해 적용되는 것이고, 손실자가 스스로 이행한 급부의 청산을 구하는 경우(급부부당이득관계)인 이 사건에 적용될 수 없다.
(2) 대상판결의 의의
대법원은 이미 첫번째 쟁점에 관해서 “원고들이 제3자인 피고에 대하여 직접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 있다고 보면, 자기책임 하에 체결된 계약에 따른 위험부담을 제3자에게 전가 시키는 것이 되어 계약법의 기본원리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수익자인 제3자가 계약 상대방에 대하여 가지는 항변권 등을 침해하게 되어 부당하다”는 이유를 들어 이 사건과 동일한 판단을 한 적이 있습니다(대법원 2003년 12월 26일 선고 2001다 46730 판결 참조).
대상판결의 의의는 두 번째 쟁점에 관한 판단에 있습니다. 즉 대법원이 처음으로 ‘급부부당이득관계’와 ‘침해부당이득관계’를 명시적으로 구별함으로써 유형론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이득자가 손실자의 부당한 출연 과정을 알고 있었거나 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이득의 유형에 따라 부당이득의 성립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힌 데 대상판결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5. 다운로드: 대법원 2008년 9월 11일 선고 2006다 46278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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